남한은 베트남전에 파병을 했는데, 북한은 어떻게 했을까요? 당시 소위 베트콩이라고 불리던 북베트남 공산당의 지도자 호찌민은 김일성에게 병력 지원을 요청합니다. ‘남에서 저렇게 파병을 하니 우리가 못 살겠다, 너희도 우리를 지원해 다오.’ 김일성은 이 요청을 거부합니다. 북한의 안보 사정 때문에 그럴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사실 김일성과 호찌민은 매우 우호적인 관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안보 문제를 들어 파병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호찌민의 지원 요구는 계속되었고, 이에 김일성은 1967년 말에 다른 방식의 답을 주게 됩니다. ‘우리는 여력이 없어서 병력을 파병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박정희가 더 이상 베트남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막아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해, 즉 1968년부터 본격적으로 남한과의 게릴라전을 개시합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넘어온 것이 그 신호탄입니다. 그때부터 이른바 ‘무장 공비들’이 들어와 빈번하게 게릴라전을 벌입니다. 1968년 한 해에만 무려 308회에 걸친 무력 충돌이 남북 사이에 있었습니다. 이후 박정희는 ‘안보 문제’ 때문에 더 이상 베트남에 파병을 하지 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