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만세,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 - 조선어학회, 47년간의 말모이 투쟁기
이상각 지음 / 유리창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10월 9일은 한글날 567돌이었다. 이날이 뜻깊은 것은, 한글날이 다시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어 보낸 첫 날이었기 때문이다. 10월 초는 법정공휴일인 개천절인 10월 3일이 있었다. 한글날인 10월 9일 사이에 일요일이 끼게 마련인데, 이렇게 되면 쉬는 날이 많아 보인다. 정부는 다른 나라에 비해 법정공휴일이 많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식의 논리를 편 재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글날을 법정공휴일에서 배제했다. 다시 한글날이 법정공휴일로 되는 데에는, 한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드높아진 것 뿐만 아니라 한글학계 및 관련 시민단체의 주장과 더불어 경제논리가 고려되었다. 휴일이 많아져야 소비가 늘어난다는 논리였다. 다시 한글날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왠지 찜찜하다.

 

 이렇게 좋은 날을 앞두고, 한글의 소중함을 되새겨볼 수 있는 귀한 책 한권이 출간되었다. 신민육성을 위해 우리 말글을 겨레의 얼 속에서 지워버리려한 일제의 탄압과 박해를 이겨내고,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해 노력과 희생을 한 분들의 숨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이 중점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바는 우리가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예전 국사 공부를 할 때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은 수많은 독립운동 가운데 곁가지로 생각하며 넘어가곤 했다. 어렸을 때에 이 사건을 수업시간에 간단히 배우면서, 나랏말글을 연구하겠다는 사람들을 박해한 일제에 대해 자유의 억압에 대한 측면에서 미웠던 감정이 많았다. 뭐 그것까지고 그렇게 탄압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랏말글을 지키겠다는 선조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가볍게 취급하고 넘어갔었다. - 생각해보면 일제시대는  얼마되지 않은 일 아닌가. 멀리보면 백여 년전이고 가까이 보면 수십년 전의 일이다. 

 이제와서 되돌아보면, 제도권 교육하에서 점수용으로 가공된 지식을 단순섭취한 무지였기에 부끄럽다. 반면, 그렇게라도 배움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랄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 때는 기초지식을 배우는 시기였다. 차후 대학에 들어가,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 또는 사회에 나가 일을 하면서 필요한 것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연구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물론 배움은 대학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대학에서 쌓은 전문지식, 지적 능력과 교양을 바탕으로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에 그치지 않고 많은 것을 깊고 넓게 섭렵해나가는 것이 대학 후의 인생이다. 

 

 잡설이 길었는데, 그렇게 단편적으로 배우고 지나간 '조선어학회 사건'의 전면을 이 책을 통해 낱낱이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사건의 전중후의 사회적 배경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이해하기 더욱 쉬웠다.

 우선 흐름상 '조선어학회 사건'의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조악하게 언급하자면 지식인 계층이 한글에 대해 가진 당대의 인식, 맞춤법 통일에 대한 우여곡절과 치열한 논쟁, 교육정책을 통해 조선어를 말살시키려 한 일본, 조선어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교육 이외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바쳐 말모이 사업을 이끌던 주시경 선생의 안타까운 귀천, 그 혼을 받들어 조선어 교육과 사전 편찬을 위해 노력한 제자들의 고군분투, "종교를 넘어 민족 이념으로 승화된 대종교 사상"과 독립군의 무력 항쟁, 지식인들의 조선어 어문 연구, 기독교 선교사들의 한글 보급, 사회 각계에서 벌이던 문맹퇴지 및 한글보급 운동, 한글학자들의 조선어 강습회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건'의 본격적 진행단계에 있던 이야기는 '정태진의 억지 자백과 영생여학교 사건', 일제의 조선어학회 회원 체포와 고문이 동원된 심문 과정, 그들에 대한 일제의 창씨개명 요구, 모진 수감생활, 광복의 해인 1945년 초에 내려진 유죄판결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해방후 우리 말글 되살리기에 힘쓴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무지한 정치가에 의해 일어난 한글 파동(한글 간소화 정책과 이에 대한 한글학자와 각계각층의 반대 표명)이다.

 

 책을 읽으며 든 여러가지 -곁가지와 같은- 생각 중 일부만 기술해본다.

 우선, 교육을 통해 일제가 한글을 조선인들의 의식속에서 밀어내려고 한 것을 통해 국사 교육을 저만치로 밀어낸 요즘의 위정자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교육정책만으로 일반 대중의 정신을 뒤바꿀 수 있음을 보며 괜히 '교육정책'이 '백년대계'가 아님을 실감했다.

 둘째, 맞춤법 통일의 과정에서 전개된 치열한 논쟁, 한글 파동을 보면서, 한글 맞춤법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 한글 맞춤법하면 내심 한편에서는 왠지 정신적 규제와 같이 느껴진 면도 있었으나, 그런 생각은 매우 협소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셋째, 책소개에 나온대로 조선어학회 사건은 피와 땀방울이 스며든 언어독립'투쟁'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모진 고문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불굴의 정신으로 우리말글을 지켜낸 훌륭한 선조들이 자랑스러웠다.

 넷째,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세계에 자랑할 우리글, 알기 좋고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우리글, 오늘부터라도 가갸거겨를 시작합시다."  (p.149, 1928년 '글장님 없애기 운동'을 이끌던 동아일보에 실린 글)

 

 내가 개인적으로 한글의 위용을 새삼 깨닫게 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이야기하고자한다.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외조모님에 관한 이야기다.

 외조모님은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은 분이었다. 가끔씩 학교에서 배웠던 일본어 교재의 내용을 줄줄 읊으셨다. 그런 외조모님의 꼼꼼한 성격이 묻어나던 메모에는 항상 맞춤법이 틀린 한글이 씌여져있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그 글은 맞춤법은 틀렸지만, 딱 발음나는 대로 씌여져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걸 보고 픽 웃고 말았지만, 돌아보면 참 여기에도 한글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발음나는 대로 그대로 받아쓸 수 있고, 이것만 보고도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있다는 것... 잠시만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능히 쓸 수 있는 쉬운 글이라는 점, 그리고 말을 그대로 옮겨 쓸 수 있기에 소통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맞춤법을 몰라도- 소통의 효용을 다한다는 장점 등을 생각해볼 때 한글의 위력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같이 미천한 사람도 한글을 쉽게 익혀 남들의 글을 읽으며 정보, 지식, 지혜, 경험을 원하는대로 흡수할 수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글을 써서 의견을 표명하거나 생각을 가다듬고, 기억의 확장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타이핑도 편하게 하며 IT기기로 소통을 쉽게 할 수도 있고.

 이런 한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표현을 빌리자면- 단언컨대 축복이다. 

 문맹퇴치에 기여한 위대한 한글의 보급과 전수에 힘쓴 분들에게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물론 큰 공은 세종대왕과, 한글단체 및 학자들께 돌릴 수 있으리라. 

 

 이런 한글을 쓰는동안에는, 언제든 한글을 쓰는 다른 모든 사람과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대감마저도 그 뿌리는 우리말글을 지켜내고자한 모든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고 본다. 이 나라가 전후 폐허의 위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 면에서 그 노력의 모든 과정을 소홀히 다루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노력이 어두운 밤하늘에 별같이 반짝이던 그 때, 일제치하의 조선어연구회 사람들의 헌신을 그려낸 이 책이 우리의 품안에 귀중하게 안겨들게 된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카페 <책좋사>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기에 쓸 수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