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헌법 - 결정적 순간, 헌법 탄생 리얼 다큐
김진배 지음 / 폴리티쿠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한 나라의 가장 기본이 되는 법이자, 최상위의 법이라 불리는 헌법. 그만큼 중요한 기틀이 되는 근본 질서를 너무나 가벼이 생각해온 것은 일반 대중에게는 잘 와닿지 않아서였으리라. 이 책의 머리말에 따르면 아직도 헌법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 무관심이나 냉소, 빈정거림의 태도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통탄할 일이다. 과연 이 원인은 무얼까?

 저자는, 헌법을 멋대로 개조하고 주무르며 장식에 지나지 않게 만든 헌법 가치 파괴자들의 문제로 돌린다.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건국헌법으로 등장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씨, 국내 최초 군부독재정권을 수립하여 종신집권을 노린 육군장군 박정희씨, 국민을 집단 살육하며 군부장성으로 뒤이어 정권을 잡은 전두환씨다. 책은 이 가운데 첫단추를 잘못 끼운 이승만 정권을 겨냥하고 씌여졌다. 

 

 1948년 5월 31일, 제헌의원들에 의해 추대된 73세의 제헌국회 임시의장 이승만. 하루빨리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의 제정과 발효를 염원하던 것은 그도 같은 마음이었으나, 정작 그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당시 헌법 초안자들인 유진오, 행정연구회, 권승렬은 상당 부분 독일과 프랑스, 일본 등 대륙법계 국가의 헌법을 비교검토하여 제헌헌법의 초안을 마련하였다(유진오 박사의 경우 당시로서는 오래된 미국 법제에 대한 연구를 했다고는 하나). 이 초안들이 헌법기초위원회의 심의에서 검토되는 동안 그 경과에 촉각을 기울이던 이승만이 크게 문제시하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은 단 하나, 정부조직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는 다수의 제헌의회의원들과 헌법연구자들이 채택한 내각책임제를 미국식 대통령제로 바꾸려고 하였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느냐, 주권자를 국민으로 지칭하느냐 인민으로 지칭하느냐, 영토조항을 어떻게 할것이냐, 친일파 처벌을 위한 소급입법에 대한 헌법부칙, 여성문제, 경제적 민주주의 등에 대하여 제헌국회의 헌법심의에서 공방이나 발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승만은 조급해졌다. 미군정 당국과 약속한 8월 15일까지 정권을 이양받고, 가을에 있을 유엔총회에서 남한만이라도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승인을 받으려는 심산에서였다. 8월 15일까지 한달 남짓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국회의장 자격으로 헌법조문 심의 사회를 주도하며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국가의 근본법이라 할 헌법의 제정에 있어 졸속이라 할만큼 그 과정은 거칠고 조급했다. 이를 통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자는 다름아닌 이승만 자신이었다. 정치조직에 있어서는 소위 '한국식 대통령제'가 채택된 제헌헌법에 기초하여, 제헌국회가 간접선거 방식으로 선출한 대통령이 이승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될 당시에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이승만이었으나, 이후 재선의 가망성은 없었다. 이에 그는 제헌헌법의 제정시에 드러냈던 그의 노골적인 야욕을 야만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바로 1952년에 있었던 5·26 부산정치파동이다. 민족분단의 상처를 낸 6·25 전쟁으로 부산을 임시수도로 하여 정부조직이 옮겨갔다. 여기서 그는 비교적 평온한 상태에서 비상계엄을 발하여 그의 수족처럼 부리던 헌병과 육군 수사요원들, 경찰조직과 청년단을 동원하여 "야당의원들을 국제공산당의 혐의로 잡아 가두었다" 이후 다수의 반이승만 세력이 다음 정부조직을 의원내각제로 바꾸려고 기도하던 것을 무력화하고서는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켜 본인이 재선될 수 있는 길(대통령 직선제)을 텄다. 당시 그의 나이 76세. 나이가 들어도 권력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이  5·26 부산정치파동을 전후하여 물밑과 물위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던 숱한 사건을 책은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머리말이나 부록 등을 제외한 본문이 400페이지 안쪽인 이 책의 상당분량(230페이지 가량)이 '이야기 두 자리 - 헌법의 수난'인데, 바로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게 그 사건이다.

 

 책의 후반부인 '이야기 세 자리 - 제헌 2년의 풍경'에서는 앞의 내용인 '이야기 한 자리 - 헌법의 탄생'과 위 '이야기 두 자리'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부기하였다. 

 그리고 '이야기 네 자리 - 헌법의 현장'에서는, 한 노인의 야욕으로 제헌헌법부터 헌법을 휴지로 만들어버린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그 후로 이어진 헌법 오욕의 역사에 대한 평가를 기록하였다. 더불어 저자가 헌법 현장이라 할 수 있는 쌍용차 사태, 용산참사현장, 제주강정마을 사태의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보고 생각한 현장기록을 첨부하였다.

 부록으로는 헌법의 주인에 대해 저자가 쓴 1965년의 글(기사?), 이 책의 등장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 제헌헌법 전문을 만만치 않은 분량으로 수록하였다. 

 

 명목적 헌법, 장식적 헌법, 독재자의 소도구로 불려지고, 제·개정에 있어 주권자와 유리되었다는 평가, 추상성·개방성에 대한 비판 등 온갖 욕을 먹고 있는 게, 국내법 가운데 가장 존귀하다는 한국 헌법임은 무척 아이러니한 느낌을 준다. 

 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제헌헌법 성립과정, 즉 헌법탄생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무척이나 답답함을 느꼈다. 한편, 오늘날과 같이 민주화와 정보화가 많이 진전을 이루어 개체별로 한 인간일 뿐인 위정자들의 추악한 움직임을 잘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더불어 이 기틀을 다지는 데 몸과 마음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김구 선생 등 건국의 지도자들, 4·19혁명과 5·18 광주항쟁, 6·10 민주항쟁 등의 영웅들 등)에 대한 감사와 존경심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러나, 누군가 역사를 알지 못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민주화와 정보화가 진전되었다하더라도 언제 어느사이 불순한 세력이 헌법을 망가뜨릴 지는 모를 일이다. 헌법에서 대중이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정치권에서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자기네 이념과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자기네들에게 좋을대로 뜯어고치려는 그 악발상에 경악할 따름이다. 그 주도세력이 누구고 어떻게 잔존하면서 교묘하게 헌법의 개정과 운용에 있어서 입김을 발휘할 지에 대해서도 헌법의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헌법의 역사를 공부해야하는 것, 반세기 넘은 헌법의 시대를 살아온 저자가 "국회속기록과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생생하게 재연"시킨 이 책의 속편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 참고로, 이 책은 헌법 이론과 학설, 정치권과 언론의 관점에 따른 주장, 흥미 위주의 내용에서 벗어나 저자 나름으로 그려본 헌법 이야기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카페 <책좋사>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기에 쓸 수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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