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류행 - 건축과 풍경의 내밀한 대화
백진 지음 / 효형출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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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그림과 사진 가운데 갖가지 풍경이 펼쳐진 것을 볼 때면 그 부분을 하루에도 몇번이고 다시 볼 때가 있었다. 자연과 인공물이 조화를 이룬 그 풍경 속에 내 마음이 녹아들었다.

 사진의 경우에는 언젠가 한번은 저 곳에 가보리라, 그리고 모든 것을 세세히 살펴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은 그럴 수 없었다. 대개 어딘가의 풍경사진을 참고했겠지만 그대로 베낀 것도 아니었고, 삽화를 그린 작가 특유의 (기억에 남는 분은 계용묵씨였나?) 그림체에서 나오는 특유의 감성이 과연 실제풍경에서 나올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원래의 풍경이 있다면 2차적으로 가공한 느낌은 아닐지라도 그만의 감성과 구조, 배열, 구성물 따위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은 분명했다.

 어느 덧 나이가 들어 어릴때의 풍부한 감성은 잊혀졌지만, 여러가지 풍경 그 자체에 대해서는 항상 목이 마르다. 집 밖으로만 나가더라도 풍경은 펼쳐지지만 자주 보던 것에서 별다른 자극을 얻을 수는 없다. 내가 이사를 간 뒤 1년 후에 다시 찾아온다면 그 때는 그리움의 풍경으로 남으리라.

 

 풍경에 대한 갈망과 안온한 현실에 안주하는 타성에 결국 책이나 교양프로그램, 블로그 여행기 같은 간접자료 외에는 달리 풍경을 감상하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음이 아쉽긴 하다.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버무려진 그런 것을 벗어나 보고 싶은 것, 다른 사람은 별로 눈길을 주지 않더라도 나는 눈길이 가는 것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살아숨쉬는 시공간의 모든 것을 원하는대로 마음껏 보고 싶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간접자료를 최대한 활용할 뿐이다. 그렇더라도 책이 주는 장점은 있지 않은가.

 대표적인 장점이,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것, 내가 놓치는 것, 내가 모르던 것을 다 알려주는 것이리라.

 건축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 생각을 바탕으로 풍경에 대해 들려주는 이 이야기들이 바로 그러했다. 

 

 책에서, 저자를 따라 나는 그가 유학하거나 여행했던 곳과 길을 이리저리 또 반복해서 오고간다.

 일본의 가쓰라 궁과 가시와에 있는 쓰보니와, 프랑스 베르사유 궁, 습하고 더운 플로리다, 예루살렘 구도심의 광장과 '통곡의 벽', 펜실베이니아 주 스테이트 칼리지, 인도 바라나시의 바자르 뒷골목과 갠지스 강, 김제 만경평야, 저자의 고향 전남 장흥, 그리스, 필라델피아, 캄파돌리오 광장, 그랜드캐니언, 여의도 공원...

 뿐만 아니라 저자가 책이나 인터넷, TV 등 다른 간접 자료를 통해 생각 속에서 넘어가본 시공간 -아라비아 사막 등이 그것으로 추측됨-도 있다. 

 

 저자는 일본 환경철학자 와쓰지 데쓰로의 『풍토』에서 영감을 얻어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책은 내가 생각하던, 풍경에 대한 묘사나 그것에 대한 향수, 감정을 중점으로 기술하지 않는다. 

 대신, 세계 여러 곳('나라'라기보다)의 자연과 인간의 상호결합상태(저자의 말에 따르자면 '교감' 또는 '관계')를 '풍경'으로 바꾸어 이야기하고, 그 속에 핀 문화와 역사, 건축, 생태 등을 '은유의 풍경'으로 돌려말한다. 그리고 그에 대하여 자신의 지식, 경험 따위를 적절히 녹이면서 흐르는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책의 특징탓에, 엄격하게 보자면, 특정한 주제로 무엇을 말하려는 게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자신의 책에 대해 말하는 바도 이러한 점을 잘 드러내준다. 굳이 말하자면, 건축과 지구의 여러가지 환경 위에서 '친환경과 지속가능성' 대한 저자의 고민과 사유의 낱알이 책 전체에 흐르는 핵심메시지라고 할까나.

 이와 같이 언뜻보면 책에서 건져낼 수 있는 중심 주제는 "주위환경과 친하거나 주위환경을 적절히 살릴 수 없는 생활 양태, 건축, 문화는 좋지 않다."는 것 정도로 보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저자는 '풍경'이라는 말로, 자연 속에 녹아들어 있는 사람과 서로간의 교감을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관계성을 깊이 사유해볼 것을 권하는 게 아닐까.

 사람은 그가 놓인 환경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개는 환경을 단지 '집'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실상 환경은 '집'이 아니라 '공기'가 아닐까. 인간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본다면, 밀착하거나 의존하는 정도를 넘어 인간은 환경 속의 구성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환경에 철저히 지배되지 않고서 적절히 개발하며 어느 정도 독립적인 생체활동을 이어나가는 특이한 종이긴 하나, 환경을 완벽히 거스를 수 없고 오히려 그러고 있다고 착각하며 그러길 애쓰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역풍을 맞기도 하고.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환경문제도, 주거형태에 대한 고민도, 삶의 철학도, 그리고 타자와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정도도 달라질 것이다.

 각자 책을 읽고서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가질 수 있겠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무게를 느낀 생각은 이런 것이다.

 우리 삶의 총체적 활동을 개별적 주체나 객체가 아닌, '관계성'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생각을 짜는 것이 우리의 앞에 던져진 숙제가 아닐까 한다.

 

 

 

 

  # 이 서평은 네이버 북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로 쓸 수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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