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
권영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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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아이를 키우면서 드는 생각과 경험을 자기 나름대로 정리해본 철학자의 육아일기이자 에세이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 개인이 외적 세계의 가까이에서 늘상 조응해야 하는 커다란 존재 -때론 의문스럽고 때론 너무 까다로운 신비로운 대상- 와 함께 살아가면서, 나름의 조화와 합리적인 생존을 궁리하다 얻게된 사유의 부산물을 모아놓은 분투기랄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전투에도 비유할 수 있다. 아이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전두엽이 성장하지 않은 터에 세상과 맞부딪히며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생존에 기한 격한 감정을 조그만 뇌와 몸 자체로만 즉각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을 기록하여 되짚어 본다던가 나중에 따로 곰곰이 정리한다던가 누군가에게 재주껏 언어도구를 이용해서 시원하게 이야기 할 능력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조리있게 전달할 수도 없다. 자신의 내적 세계와 외부 세계를 이을 도구가 너무 부족하기에 양육자의 입장에서 힘빠지게 만들거나 당황스러움, 분노를 일으키는 행동을 한다. 계속해서 말을 듣지 않거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무작정 떼를 쓰거나, 과격한 행동 내지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그렇다. 가끔 일상의 상식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책에서는 예컨대, 틱장애를 들 수 있다).

 저자도 아이라는 존재에 대응하는 자신의 무력함을 때때로 느끼고 마는 경우가 있음을 책에서도 종종 고백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성인이라하더라도 어떠한 것의 기초도 전혀 없는 사람을 가르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말을 여러번 해줘도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모든 것이 전무한 아이를, 그리고 성장에 따라 능력이 발달해가는 아이를 전방위적으로 가르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일까. 그래서 책에서 인디언 속담에서 나왔다는 인용문구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나 혼자는 역부족이기에 가족, 학교, 사회 등 많은 이들이 함께 키워나가는 것이라 봄이 더 타당하다.

 

그 뿐인가. 양육은 여러 사람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많은 역량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나 부모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저자는 전공을 살려, 철학이라는 도구 역시 활용해나가며 아이를 키워나가고 있다. 납득되지 않는 것은 철학에 뿌리를 둔 채 다른 학문이나 사상, 생각으로 가지를 뻗어나가 아이와 아이가 만나는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일반적인 사람과 사회에 대한 연구가 이럴 때 참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치와 지성만으로는 키워낼 수 없는 게 인간이 아니던가. 인간이 기계에 가까워진 것이 아닌 다음에야.

 

 그러다보니, 책은 육아법이라기보다, 육아일기에 가까워진다. 또 육아일기라기보다 저자의 철학 에세이에 가깝게 보인다. 주관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에서 일반적인 지식을 참고하거나 대입해 살펴보고, 본인 나름의 해법이나 결론을 궁리해보는 면에서 말이다.

 

 책을 읽어나가며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이 복합적 발생하였다.

 그러나 그 중에서 걱정이 크게 드는 게 좀 마음에 걸린다. 가끔씩 책에서도 저자는 아이를 키우다 지친 면을 보여준다. 젊은 나이에 아이를 둔 경우(저자의 어머니와 장모는 아직 60대도 안되었다고. 책에서 저자와 그의 파트너가 비교적 젊은 부부라고 말한다)도 이러할 진대, 나이들면 얼마나 더 힘들까.

 카페를 돌다가 이런 글을 본 게 떠올라서 더 그럴 것이다.

 "아이가 어릴적엔 아이와 놀아주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좀 더 크면 낫겠거니 했지만 웬걸, 애가 클수록 같이 놀아 줄 때 더 힘이 빠지네요."

 아이는 더욱 에너지가 넘치는 데 비해, 아버지는 더 나이가 드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물론 아이과 같이 놀아주는 것도 일정 연령때까지의 일이겠지만.

 가끔씩 육아에 대하여 교육학이니, 수기니, 다큐멘터리니, 또 커뮤니티의 이런저런 글이니 접하면서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며 '이렇게 하면 좋을 것이다'라고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그건 어디까지나 파편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총력전에 비유할 수 있기에 나름 완벽한 준비를 했다 하더라도 부족하고 힘들고 짜증나며 감정의 통제가 어려운 때를 종종 경험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 역시 철부지 떼쟁이에 무능력자로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채 시작하였다.

 부모의 무한책임과 사랑의 품, 그리고 사회의 교육(사회화 포함)과 지적 체계 공유 및 교류 속에서 성장하여 지금에 이르렀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 나뿐 아니라 우리 윗세대, 그 윗세대 모두 그러했다.

 이를 정리해서 쉽게 말하자면 '올챙이 개구리 적 시절 모르는' 채 육아에 대해서 자기중심적으로 보려만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힘들 것 같다고 걱정하면서 육아에 대해 등을 돌리거나 피하려는 태도도 그 줄기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육아법에는 정답이 없다. 부모의 정성과 사랑, 애씀, 생각과 걱정, 그리고 아이를 키워내면서 직장과 사회 관계망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 그 과정이, 아이를 키우고 난 뒤 여러 형태로 남을 것 같다.

 한편으로 보면, 어떻게 키워야할 지 고심하면서 아이를 키워내는 동안 어느 사이 아이는 성장해 있지 않을까 한다.

 또 아이를 키우면서 잊혀졌던 나의 다른 면을 복원하고, 어릴적 발육하다 성장을 멈춘채 시들어가는 나의 또 다른 능력을 다시 발견하고 살릴 수 있다는 면에서 아이와 함께 크는 일이 바로 육아가 아닐까 한다.

 

 아이는 스스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간다. 그 누구와, 또는 환경과 교류를 통해 만들어가지만 동시에 온전히 독립적인 자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하지만 어른은 아이의 양육에 있어서 자신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온갖 육아법을 고안하고 배워나간다. 하지만 어떻게 한들 아이가 어느 방향으로 자신의 세계를 뻗어나갈 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과거와 달리 하루가 다르게 폭넓고 깊게 변화하는 현재와 미래에는 아마 그 불확실함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또 부모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일부의 연구결과가 뒷받침한다고 해서, 아이의 양육에 있어 자의적이면서도 즉흥적으로 구는 걸 당연시 여기는 태도는 너무 무책임하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내가 일방적으로 세워놓은 규칙을 때로 내가 어기면서 일관성 없게 행동하게 되기도 하고, 감정적이 되기 쉬운데 진정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육아의 여려 면을 함께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사이에, 각자 나름의 방법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 이 서평은 네이버 카페 <책좋사>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기에 쓸 수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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