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오백년사 메디치 WEA 총서 4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임란이후 해양강국일본이란 존재가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한반도는 대륙에대해서 교섭력을 가지게 됐다니? 이는 한민족의활동영역을 사실상 한반도로 국한시켜 생각하는 반도사관처럼 보인다.고구려나 발해,고려가 대륙정세변동과 관련이 없었나? 일본의 침략사관적 시각이 엿보인다면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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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nard 2015-06-16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는 한반도의 국가(고구려 발해 제외?)들이 중원 한족 국가들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에 압도되어 종속된 채로 전혀 교섭력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말은 역사적 사실의 고의적인 외면 내지는 사실왜곡처럼 들리며 이는 일본의 침략사관적 관점을 지닌 학자들의 일본의 對한반도 역할론의 단골메뉴과 유사하다.
한반도국가들의 대륙(여기선 저자가 말하는 중원의 漢족)에 대한 교섭력은 한반도에 존속했던 국가들 자신의 역량과 중원의 국가들의 분열-통합상태 및 북방민족의 세력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 바다 건너 섬나라의 역량 따위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일본에 의한 대륙 경략의 증거로 오인되곤 하는, 삼국사기나 중국의 사서들 그리고 광개토태왕비에서 언급되는 倭를 현재의 일본으로 동일하게 간주해 생각하는 것은 사실 왜(倭)라는 존재에 약간의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는 후에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큐슈와 혼슈 일부지역을 점령하긴 하지만 애초에 한반도와 중국 일부지역에 거주하던 종족(?)으로 보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일설에선 왜와 가야를 동일세력으로 보기도 하나 정확히는 서로다른 세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으며 후에 백제에 의해 지배되는 세력으로 봐야 할 것 같다. 蛇足이긴 하지만 간혹 역사지식이 부족한 어떤 사람들은 백제라고 하면 전라도지역을 떠올리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백제의 초기강역은 경기도와 황해도 중심이었고(만주건국설도 있슴) 후기백제의 중심지는 현재의 충청도 지역이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호남도 그 강역이었고 일설에서는 일본의 서부와 중부지역, 나아가 중국과 대만의 일부 지역까지도 백제의 강역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조선과 일본의 국력이 역전되는 상황이 전개되긴 하였지만 임란 이후로도 일본은 대륙에서의 국가간 흥망성쇠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거나 교섭력을 미칠 역량은 별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물론 조선을 놓고 명과 분할론을 거론하기는 하였으나 이는 제한적이었고 명,조선과 일본의 국력 수준 차이상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또 저자가 주장하는 대륙 해양 세력간 균형을 이용한 조선의 협상력이라 함은 어불성설인 게 이는 일본의 교섭력이지 조선의 교섭력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이 그러한데도 임란 이후에야 비로소 한반도국가(우리)가 대륙국(명,청,러)에 대한 교섭력이 생겨났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게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노릇이다.
교섭력이 생겨났는데 왜 후금(청)에 무릅꿇고 속국에 가까운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대명의리만 부르짖고 일본에 원병을 청하지 않아서? 서로 총칼을 겨누고 골육을 산하에 뿌린 지가 한세대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설사 그리했더라도 일본이 그만한 역량을 갖추었었다고 보는지? 설사 원병이 왔더라도 그게 과연 청에게 사대하는 것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리라 보는 겐지? 왜 일인들이 내심 바라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현실적인 사고인 양 포장해서 주장하는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이 20만의 대병을 바다 건너로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였기에 대륙과 해양 세력간의 힘의 균형이 비로소 새로이 이뤄지고 조선이 이를 지렛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중국의 남북조 간의 세력균형을 추구하고 수,당과 겨뤘던 高句麗나 당에 대해 대등한 외교관계를 추구했던 渤海, 거란을 격파하고 여진정벌을 행했던 高麗가 중원과 북방민족의 세력에 대해 교섭력이 없었다고 보는 건 실로 사실에 부합되지 못하는 논리 전개가 아닐까?)
조선이 일본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외교적 이점이 새로이 생겨 났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조선의 입장에선 청이나 일본 모두 적성국이며 조선이 양자간 균형을 유도할 역량이나 의지도 부족했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일본은 청에게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위협을 줄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한 수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일본은 에도막부 시절 임란 때보다 군사력이 후퇴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임)
일본의 역량을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저자가 12세기 고려의 여진정벌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 지 궁금하다. 일본보다 수세기 전에 17만의 대병을 동원해 북방을 공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일부사학자들은 17만대군을 동원해 겨우 함흥평야 언저리에서 공방을 벌이다 그 좁은 땅에 9성을 쌓고도 지키지 못해 여진에게 다시 내줄 정도로 고려를 형편없이 허약한 나라로 보고 있지만?-이건 너무나 엄청난 넌센스 아닌가?-17만명으로 수십리의 함흥평야조차 지키지 못하다니 아니 그 일대에 十萬이 넘는 大兵이 주둔할만한 공간이 있기나 한 것인가?) 高麗는 왜 대륙(중원의 漢족)에 대해선 전혀 교섭력을 갖고 있을 수 없다고 본 것일까? 왜 17세기에 들어서야 朝鮮이 강력한 日本의 등장으로 비로소 대륙과 거래할 수 있는 협상력을 갖추게 됐다고 본 걸까? 참으로 이해가 안 가는 논지라 아니 할 수 없다.
참고로 추언하자면 일본이 1910년대 조선을 병탄한 이후로도 대륙을 전면적으로 침공할 역량을 구축한 것은 1930년대나 되어서야 가능했다는 점은 풍신수길의 대륙경영 운운이 얼마나 가소로운 망상 수준이었는가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희망사항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사실 일본이 대륙을 침략할 수 있는 역량을 구축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조선을 침략병탄하고 식량과 인적물적자원을 수탈함으로 생겨났다는 점을 상기하여 볼 때 저들이 왜 저리도 집요하게 독도침탈을 시도하고 침략전쟁을 부인하는지 그 의도를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일제의 조선침공의 1차적 목적은 자원과 식량 수탈이었다.조선의 지하자원과 토지,식량 수탈로 일본의 산업자본주의적 경제성장과 인구증가가 가능했으며 중국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의 기본적 역량 축적이 이뤄졌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가 곧바로 대륙국가들에 대한 일본의 우위를 의미하게 된 것이라 보긴 어렵다. 1890년대~1900년대의 일본의 국력이 청이나 러시아의 그것 보다 앞선 것은 아니었다. 사실 러일전쟁의 승리는 내전상황에 있던 러시아의 사정과 서구열강(특히 영국)의 재정적지원과 외교적추인에 힘입은 바가 컸으며 일본 단독의 국력으로 승리한 건 아니었다.)
역사 전공도 아닌日文學을 전공한 저자가 일본의 대외침략사에 대한 논문으로 일인들에게 극찬을 받고 학술상까지 수상했다는 점에 대해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日人들의 시각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것 까지는 좋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시각에 내재된 심리와 의도를 우리 시각으로 분석하고 걸러내어 저술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나만의 것일까?
저자는 나름 충분한 학술적 분석와 균형적인 시각으로 주제를 다루었다고 자평할 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학위를 따고 연구한 학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친일본적인 경향은 그들이 연구하고 분석하는 자료가 대부분 일인의 손을 거친 것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기본적으로 일본의 가치관과 시각이 녹아든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이러한 글들을 접할 때는 무비판적인 추종이나 수용을 할 게 아니라 보다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독서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