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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 - 식탁 위에 놓인 인류 역사 이야기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한세희 옮김 / 탐나는책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커피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다 실패한 적이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도 역사는 별개로 그리 흥미롭지 않을 수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커피와 음악을 에세이 형식으로 콜라보 시킨 조희창 작가의 <베토벤의 커피>라는 책은 달랐다. 자칫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두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통섭해서 오히려 흥미롭게 풀어내었다. 나는 그 책에서 커피를 들었고 음악을 마셨다.
<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 역시 음식과 세계사의 멋진 콜라보레이션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이어가는 음식의 등장과 진화가 맛있는 음식을 멈추지 못하듯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풍성한 뷔페 또는 코스요리처럼 세계사의 다양한 흐름을 훑어보는 풍미를 즐길 수 있었다.
서문부터 친절하게 전체 코스 메뉴를 소개해 준다.
1막 약 1만 년 전의 농업 혁명, 곡물과 토기의 출현
2막 15~16세기의 대항해 시대, 대서양을 통한 음식의 교류
3막 18세기 후반 이후의 산업혁명, 부패를 막는 기술의 등장
4막 20세기 후반 이후의 하이테크 혁명, 차가운 식품의 지구 순환
요리 세계사의 큰 맥락을 잡아주고 대표하는 식재료를 소개하는 방식이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쥐여주는 것 같다.
같은 '밀'이라는 재료로 유럽에서는 빵의 형태로, 중국에서는 면과 만두의 형태로 소비하는 차이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민족마다 가진 고유의 특성에 따라 똑같은 재료일지라도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했다. 또 다른 민족의 음식을 수용한 듯 보여도 자신만의 색을 입혀 재창조, 진화시키는 과정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줄곧 증명해냈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가 대륙의 생태계와 식탁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과정에서, 설탕 생산을 위해 사람까지도 돈을 끌어모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 값싸게 사고 비싸게 되파는 장면은 달콤한 설탕과 대조적으로 몹시 씁쓸한 음식 세계사의 단면이었다.
또 미식에 취해가는 인간은 동물을 체계적으로 착취하고, 화학비료와 요리 가전들로 우리의 식탁은 더욱 풍요로워지지만 그만큼 자연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인간은 고립되었다.
생명과 자원을 갈아팔고 인간의 손에 남는 건 결국 먹지 못할 황금과 돈일뿐이다.
'부패'와 싸워온 인류. 결국 그 한계를 극복했지만 그것이 우리가 항상 뛰어넘어야 할 허들이 아닌 어쩌면 안전선이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해본다.
끊임없이 착취하는 인간을 위해 이 봄에도 여전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내어주는 자연이 애달프다.
착잡한 마음으로 책을 덮으며 폭넓고 현명한 인간애를 지닌 사람들에 의해 꾸려질 음식 세계사의 밝은 미래를 꿈꿔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