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심리 수업 365 1일 1페이지 시리즈
정여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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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험 있는가?

특별한 사람과의 만남, 특별한 이벤트도 아닌 별거 아닌 소소한 일과일 뿐인데 그게 무척 기대되는 마음으로 잠드는 경험.

내일 오전에 혼자 느긋하게 마실 커피.

내일 계속해서 읽으려고 책갈피를 끼워놓은 책.

아들은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어린이집에 못가다가 한참만에 등원하게 되니 일요일 밤이면 어린이집 가서 친구들과 놀 생각에 설레며 기분좋게 잠에 든다.

이 책이 내게 좀 그랬다.

처음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마음이 아프거나 힐링이 필요해서가 아니였다.

어느정도 주기를 갖고 심리학 관련된 책을 읽는데요. 일종의 마음에 대한 '종합검진' 비슷한 것.

꼭 몸이 아프지 않더라도 종합검진을 받는 것처럼 성숙한 어른이라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마음을 성실하게 돌아볼 책임,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마음의 생채기는 없는지 살필 수 있는 마음챙김의 도구로 심리학 책이 안성맞춤인 것 같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3가지 정도로 정리해 본다.

먼저, 내가 오랫동안 꿈꾸어 온 북카페의 이상향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적 서점의 모습과 무척 흡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읽고 토론, 세미나, 낭독을 하기도 하고, 모두가 서점 직원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어떤 책에 대해 물어봐도 "000 페이지를 좀 보세요. 거기 심리 묘사가 진짜 압권이에요!" 라고 아주 구체적인 책의 매력까지 자유롭게 공유하는 일종의 '책놀이터'와 같은 곳이다.

시장성보다 책에 대한 사랑을 진짜 동력으로 삼는 서점.

이 책에서 뜻밖에 나의 꿈과 조우할 수 있어서 참 반가웠다.

아, 코로나 이전에 매주 서점에 가서 구경하던 일상이 더 그리워진다.

두번째, 그림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인상깊었다.

폴 고갱의 <신의 아들, 예수의 탄생>(1896)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그림은 여타 성화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누가 성화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난 절대 모를 것이다.

보통 성화 속의 성모 마리아나 예수는 말끔하고 잘생긴 백인으로 그려지곤하는데 이 그림 속 성모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해산 후 헐벗은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고 있어서 신성모독으로 비판받으며 큰 파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림 속 성모는 첫 출산에 모든 힘을 써버리고 아주 인간적이고 편안한 자세로 갓난 아기를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이 그림을 다음과 같이 바라본다.

'온통 흐트러진 자세, 구겨진 시트 주름은

그녀가 견뎌낸 참혹한 고통의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이토록 흐트러지고 나와 거의 다르지 않은 몸을 가진 성모의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감동이 있었다.

그림에 대한 단순한 스토리 이상으로 캐릭터의 심리, 감정선까지 읽어내는 작가의 시선이 인상 깊었다.

세번째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느낀 것은 1페이지라는 짧은 글감을 갖고 누군가와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다는 것.

결혼 10년 차. 남편과 나는 이제 '따로 놀기 심화과정'에 들어선 것 같다.

이과 출신 프로그래머 남편과 2,30대를 출판에 몸 담아온 문과출신 아내.

평소 남편에게 호흡이 긴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 많이 힘들어 하고 때론 화장실로 도주했다. 물론 나는 화장실까지 쫓아가 집요하게 이야기를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too much talker다.

서로 다른 취미, 아이의 방해공작까지 더해지면 진지한 대화는 더욱 힘들어진다.

그런데 이 책의 한토막 짧은 이야기와 함께 트라우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생겼다.

친구 9년 + 부부 10년, 근 20년을 함께한 남편이 정말 다르게 보였다.(좋은 의미에서 ㅎ)

역시 독서는 혼자만의 사색보다 사람들과 함께 나눌때 여운이 짙어지고 생명력을 얻는다.

함께 나누기에 부담없는 한 페이지의 짧은 글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진짜 속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대화의 재료가 되었다.

좋은 글은 마치

가랑비에 옷을 적시듯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삶을 조금씩 바꿔놓는 것 같다.


* 영상리뷰 : https://youtu.be/wFqdjEf-V_Y


이 세상 모든 모난 돌들이여. 억지로 우리 자신을 동글동글하게 깎아내지 말자.
당신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를.
나의 가파름과 울퉁불퉁함이야말로 ‘나를 끝내 나답게 만드는 그 무엇‘이므로. - P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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