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3가지 정도로 정리해 본다.
먼저, 내가 오랫동안 꿈꾸어 온 북카페의 이상향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적 서점의 모습과 무척 흡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읽고 토론, 세미나, 낭독을 하기도 하고, 모두가 서점 직원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어떤 책에 대해 물어봐도 "000 페이지를 좀 보세요. 거기 심리 묘사가 진짜 압권이에요!" 라고 아주 구체적인 책의 매력까지 자유롭게 공유하는 일종의 '책놀이터'와 같은 곳이다.
시장성보다 책에 대한 사랑을 진짜 동력으로 삼는 서점.
이 책에서 뜻밖에 나의 꿈과 조우할 수 있어서 참 반가웠다.
아, 코로나 이전에 매주 서점에 가서 구경하던 일상이 더 그리워진다.
두번째, 그림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인상깊었다.
폴 고갱의 <신의 아들, 예수의 탄생>(1896)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그림은 여타 성화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누가 성화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난 절대 모를 것이다.
보통 성화 속의 성모 마리아나 예수는 말끔하고 잘생긴 백인으로 그려지곤하는데 이 그림 속 성모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해산 후 헐벗은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고 있어서 신성모독으로 비판받으며 큰 파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림 속 성모는 첫 출산에 모든 힘을 써버리고 아주 인간적이고 편안한 자세로 갓난 아기를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이 그림을 다음과 같이 바라본다.
'온통 흐트러진 자세, 구겨진 시트 주름은
그녀가 견뎌낸 참혹한 고통의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이토록 흐트러지고 나와 거의 다르지 않은 몸을 가진 성모의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감동이 있었다.
그림에 대한 단순한 스토리 이상으로 캐릭터의 심리, 감정선까지 읽어내는 작가의 시선이 인상 깊었다.
세번째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느낀 것은 1페이지라는 짧은 글감을 갖고 누군가와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다는 것.
결혼 10년 차. 남편과 나는 이제 '따로 놀기 심화과정'에 들어선 것 같다.
이과 출신 프로그래머 남편과 2,30대를 출판에 몸 담아온 문과출신 아내.
평소 남편에게 호흡이 긴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 많이 힘들어 하고 때론 화장실로 도주했다. 물론 나는 화장실까지 쫓아가 집요하게 이야기를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too much talker다.
서로 다른 취미, 아이의 방해공작까지 더해지면 진지한 대화는 더욱 힘들어진다.
그런데 이 책의 한토막 짧은 이야기와 함께 트라우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생겼다.
친구 9년 + 부부 10년, 근 20년을 함께한 남편이 정말 다르게 보였다.(좋은 의미에서 ㅎ)
역시 독서는 혼자만의 사색보다 사람들과 함께 나눌때 여운이 짙어지고 생명력을 얻는다.
함께 나누기에 부담없는 한 페이지의 짧은 글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진짜 속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대화의 재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