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빨강 창비청소년문학 27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초여름 밤 갑자기 옆방에서 아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

 

[헙]

좋으냐?

 

예.

 

훗, 벌써 서시를 읊조릴 나이가 되었구나,  

그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맥없이 쓸쓸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몇 년 전 그날 이후, 아이가 시를 읽는 걸 더 이상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욘석, 박 성우 시인의 <난 빨강>을 무심한듯 던져주었더니 침대에 앉아 꽤 골똘히 읽는다.

그러다가 부엌의 엄마에게 한 소리 지른다. "이거 무슨 시가 이래?"

 

ㅋㅋㅋ 긍정적인 반응이다.

보통은 제 맘에 안 드는 책은 처음 몇 장 읽는 시늉만 하다가(엄마한테 잘 보이고 싶을 때)  

이내 던져버리는데 이건 끝까지 붙들고 앉았다.

나 역시 안 읽어보긴 마찬가지여서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 방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손에 집히는 대로 한 장을 확 펼쳐 들었는데..... 어이쿠. 깜짝이야.
 

그새 컴퓨터 앞으로 옮겨앉은 아들녀석과 눈이 딱 마주친 어미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색한 폭소를 쏟고 말았다.

푸하하하 으헐헐헐 무언의 공감.


은밀한 면도

 

박성우

 

거시기에 털이 난다

징그럽게 털이 난다

듬성듬성 털이 난다

곱슬곱슬 털이 난다

 

슈퍼에서

일회용 면도기를 샀다

 

터, 터, 털을 밀다가 비, 비, 비었다

아 아 아파서 말도 안 나온다

피 피 피만 핑글핑글 나온다

쓰 쓰 쓰라려서 눈물만 핑핑 쏠린다

 

 


어려서는 왜 엄마가 나를 이해 못하시는지, 왜 내 맘도 몰라주고 그렇게 일방적이신지,  

섭섭했는데

내가 지나온 과정인데도 나 역시 아이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해 실수가 잦다.

시인은 어쩜 이렇게 쪽집게처럼 그들 생각을 고스란히 보여주시는지. 신기하다.

 

출근길에 동행하며 몇 번이나 웃음을 뿜었는지 모르겠다.

퇴근 후엔 오랜만에 늦은 시간 까페에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자랑하듯 보여주었더니  

다들 웃음이 터졌다.

그래.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막막한' 연두 같고, '발랑까진' 빨강 같은 시절이 있었지.

아무래도 이 시집은 사춘기 자녀를 둔 어른에게 더 필요한 시집인 것 같다.

재치있고, 즐거우면서도, 어른된 도리로 미안해지고, 함께 가슴아파지는 시편들이 줄줄이 있다.

그만큼 아이들의 생활과 밀착된 나름 생계형 시들이다.

 

아이에게 어떤 시가 가장 재밌었냐고 넌지시 물었지만 예상했던 대로 별 대답을 안 한다.

훗.  '사춘기인가?'

 


보름달

 

박성우

 

엄마, 사다리를 내려줘

내가 빠진 우물은 너무 깊은 우물이야

 

차고 깜깜한 이 우물 밖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나는 지금 기나긴 사다리의 끝을 붙들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말 창비시선 313
이정록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홍어

 

이 정록

 

욕쟁이 목포홍어집

마흔 넘은 큰아들

골수암 나이만도 십사년이다

양쪽 다리 세 번 톱질했다

새우눈으로 웃는다

 

개업한 지 십팔년하고 십년

막걸리는 끓어오르고 홍어는 삭는다

부글부글,을 벌써 배웅한

저 늙은네는 곰삭은 젓갈이다

 

겨우 세 번 갔을 뿐인데

단골 내 남자 왔다고 홍어좆을 내온다

남세스럽게 잠자리에 이만한 게 없다며

꽃잎 한 점 넣어준다

 

서른여섯 뜨건 젖가슴에

동사한 신랑 묻은 뒤로는

밤늦도록 홍어좆만 주물럭거렸다고

만만한 게 홍어좆밖에 없었다고

얼음 막걸리를 젓는다

 

얼어죽은 남편과 아픈 큰애와

박복한 이년을 합치면

그게 바로 내 인생의 삼합이라고

 

우리집 큰놈은 이제

쓸모도 없는 거시기만 남았다고

두 다리보다도 그게 더 길다고

막걸리 거품처럼 웃는다

 

 

 

 

엄니의 남자

 

이 정록

 

엄니와 밤늦게 뽕짝을 듣는다

얼마나 감돌았는지 끊일 듯 에일 듯 신파연명조다

마른 젖 보채듯 엄니 일으켜 블루스라는 걸 춘다

허리께에 닿는 삼베 뭉치 머리칼, 선산에 짜다 만 수의라도 있는가

엄니의 궁둥이와 산도가 선산 쪽으로 쏠린다

이태 전만 해도 젖가슴이 착 붙어서

이게 모자(母子)다 싶었는데 가오리연만한 허공이 생긴다

어색할 땐 호통이 제일이라, 아버지한테 배운 대로 헛기침 놓는다

"엄니, 저한티 남자를 느껴유? 워째 자꾸 엉치를 뺀대유?"

"미친놈, 남정네는 무슨? 허리가 꼬부라져서 그런 겨"

자개농 쪽으로 팔베개 당겼다 놓았다 썰물 키질소리

"가상키는 허다만, 큰애 니가 암만 힘써도

아버지 자리는 어림도 읎어야"

신파연명조로 온통 풀벌레 운다

 

 

 

 

이백

 

이 정록

 

  원고지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사학년 때다 뭘 써도

좋다 원고지 다섯 장만 채워와라! 다락방에 올라 두근두

근, 처음으로 원고지라는 걸 펼쳐보니 (10X20)이라 쓰여

있는 게 아닌가? 그럼 답은 200! 구구단을 뗀 지 두어 달,

뭐든 곱하던 때인지라 원고지 칸마다 200이란 숫자를 가

득 써냈다 너 같은 놈은 교사생활 삼십년, 개교 이래 처음

이라고 교문 밖 초롱산 꼭대기까지 소문이 쫙 퍼졌다 그로

부터 십오년, 나는 작가가 되었다 지금도 글이 콱 막힐 때

마다, 그 붉은 우물에서 두레박을 타고 이백이 솟아오른다

그때 나는, 이백과 같은 길을 걸어갈 거라는 막연한 운명

을 또박또박 적어넣었던 게 아닐까?

 

모처럼 얼굴에 난 주름 좀 펴보자고 마스크 팩을 붙이고 침대에 누웠다.
멀뚱멀뚱 누워만 있자면 또 고되겠기에, 점심 시간 빗속에 모셔온 시집을 펴들었다.
시집 겉장에 쓰인 추천의 말에 '홍어'라는 시가 나온다.


홍어 좋아하시는 이웃님 생각이 나 제일 먼저 찾아 펼친다는 게 그만 한 장이 모자라
31쪽 '작명의 즐거움'이라는 시에 눈길이 먼저 가고 말았는데... 흐흥, 크크쿠, 쿠쿡, 쿠쿠쿡,
얼굴에 뒤집어 쓴 하얀 거죽 말릴까 봐 웃음을 참고 참고 또 참아보다가 그만 폭발,
기어이 눈물을 찔끔거릴 때까지 파안대소를 하고야 말았다.


어이쿠야... 남들이 들을까 남세스럽다.
가시나가 한밤중에 웃음소리가 그게 뭐다냐.
어릴적 언니의 지청구와 꿀밤이 날아올 것만 같은데 한 번 터진 웃음은 좀체 멈출 줄을 모른다.

'홍어'의 앞 뒤로 줄 선 시들에 담긴 시인의 능청스러움에
눈가 주름이 모르긴 해도 일 센티는 더 길어지고 말았는데
어찌된 게 마음의 주름은 엄마가 풀 빳빳하게 먹인 하얀 광목천처럼
오랜만에 꼬슬꼬슬 봄볕을 쪼인 기분이다.

재밌는 양반이다.
음담패설과 시적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묘한 시어의 놀음.
문제의 그 '홍어'를 먹다가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킥킥킥
삼합에 이르러서 칵 목이 막히고 말았다.....

아, 그래, 바로 이건데!!!
무릎을 친다.
이 바보가 어려서 원어연극을 한답시고 (지금 다시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긴 하지만)
심각한 비극일지라도 코믹한 요소 역시 섞어 줘야 함을 이해 못해 시종일관 진지 모드,
그나마 몇 명 안 되는 고마운 관객을 한 시간 넘게 비극적으로 고문한 적이 있다. 몹쓸것!

그의 시는 그걸 잘 아는 것 같다.
불행을 한없이 가볍게 공깃돌 다루듯 하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은 뒷맛을 남긴다.
 

내가 워낙 순진해(흐흐)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 요오오오상한 대목도 많지만,
그동안 내 삶이 어찌나 은유와는 담 쌓은 직설과 직유의 세계에 머물렀는지
맨입에 고구마 먹듯 팍팍하니 잘 안 넘어가는 시들도 또 있다.
시간을 두고 차차 마음의 눈을 맑게 부셔야 할 것만 같다.


이제 시집의 절반 정도를 음미한 것 같다.
지하철에서까지 대책 없이 낄낄, 깔깔, 내쳐 몰아 읽다가 어느 순간 책장을 탁 덮어버렸다.
이렇게 재밌는 걸 한꺼번에 다 읽어버리면 아까울 것 같아서
두고 두고 아껴 읽어야지, 다람쥐가 도토리 쟁이듯 가방 속에 쏙 집어넣었다.
히잇. 포.만.감.

 
아이고야, 
그나저나 이제 개그콘서트 같은 건 밍밍하고 무슴슴해서 못 보게 생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섬을 걷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떠나는 섬 여행
강제윤 지음 / 홍익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어제는 꽃이 피는가 싶더니 오늘은 또 눈이 내린다. 제법 많은 눈이 쌓인다 했더니 햇볕이 나자 눈은 흔적도 없다. 삶 또한 그러하다. 돌이켜 보면 삶이 내 소망대로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삶에는 실패나 성공 따위란 없는 것이다. 성공한 삶도 없고 실패한 삶도 없다. 서로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삶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누구도 삶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누구도 삶의 판관일 수 없다. 어제는 어제의 삶을 살았고 오늘은 오늘의 삶을 산다. 너는 너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 전부다. 나는 늘 삶에 대해 서툴다. 그렇다고 내 삶이 실수투성이인 것을 책망할 생각은 없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처음 살아보는 삶이 아닌가.

 

  온전한 걷기란 단지 다리 근육의 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잠들어 있는 생각을 깨우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정신의 운동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이 늘 무겁거나 가볍기만 하겠는가. 무겁기만 하다면 가라앉아 버릴 것이고 가볍기만 하다면 날아가 버릴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추가 있기 때문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며 균형을 잡아 주는 균형추. 마냥 마음의 오고감에 휘둘리며 살 이유가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섬을 꿈꾸면서도 섬에 붙들려 섬으로 가지 못했다. 한 섬을 버린 뒤에야 나는 비로소 모든 섬으로 간다. 내가 섬으로 가는 것은 걷기 위해서다. 움직이기 위해서다. 움직이는 존재, 동물이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서다.

                                                                      - 본문 중에서 발췌 -

 

 

 

 

 

정말 오랫동안 활자 위를 걸었다.

시인의 여정을 따라 장장 한 달여는 걸은 것 같다.

내가 워낙 더디 읽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한 걸음 한 걸음 옮겨놓기가 쓸쓸해지는 책이어서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가 실제로 섬을 걸었던 기간은 이것의 열 배, 스무 배, 그 이상은 될 것이다.

그가 이야기한 섬이 어느 섬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섬을 찾고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방식이 마음에 진하게 와닿았고

그가 그리는 갯내 나는 삶의 풍경, 짭쪼름한 마음의 무늬들이 참으로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안에 자리잡은 '섬에 대한 관념'을 변화시킨 것이 고마운 일이다.

이 책을 읽는 중간 나 역시 섬에 다녀왔다. 

그섬에 머무는 동안 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었다면

부끄럽지만 그건 순전히 시인을 닮고 싶었던 내 어설픈 따라하기의 결과였을 것이다.

 

바다는 섬의 희망이고 절망이다.

육지로 가는 뱃길을 열어 주는 통로인 동시에 단절이다.

라는 책의 한 구절에 놀랐다.

최근에 하고 있던 생각과 같아서였다.

 

그래, 누군가의 선언처럼 우리 모두는 하나의 섬이다.

그 섬을 둘러싼 바다를

희망이고 통로로 만드는 것도

절망이고 단절로 만드는 것도

다 섬이 마음 먹기 나름인 것이다.

비록 거센 폭풍우가 앞을 영영 열어주지 않을 것처럼 보이더라도

분명 그 바다에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

다만 감추고 있을 뿐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찾아나서리라.

뚜벅 뚜벅.

물 위를 걸어야 한다 해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녀와 산책하는 낭만제주
임우석 지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어쩌다 보니 며칠 새에 여행기를 두 권 연달아 읽게 되었다.

 

임우석이 찍고 쓴 <그녀와 산책하는, 낭만 제주, 링거스그룹>과

이우일이 찍고 쓰고 그리기까지 한 <이우일, 카리브 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 예담>이다. (이하, 카리브해 데낄라)

 

출판된 건 이우일의 책이 2006년 7월이고, 임우석의 책이 2009년 5월인데

내가 읽은 건 임우석의 책이 먼저고, 이우일의 책이 그 나중이다.

세상에 나온 책에 선배와 후배가 따로 있고, 형 동생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선호도에는 선과 후가 있으니 참 재밌는 일이다.

 

 

 

우선 두 책의 공통점을 꼽자면,

 

 

첫째, 둘 다 내가 가 본 곳에 대한 기록이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곳이고 나와 여행한 시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 새로이 발견한 살고 싶은 섬, 제주도와

내겐 늘 전생의 인연처럼 각별한 애틋함이 있는 땅 멕시코와 쿠바!

 

둘째, 홀로 여행이 아닌 가족과의 여행의 기록이다.

낭만 제주는 저자가 (지금은 부인이 된) 여자친구와 3년여를 오고 간 제주의 기록이고

카리브해 데낄라는 저자가 부인, 딸과 함께 한 달여를 머물다 온 지구 반대편의 기록이다.

 

셋째, 각 꼭지의 마지막에는 앞서 언급한 여행과 관련한 간단한 Tip을 싣고 있다.

 

넷째, 프롤로그는 각기 저자 자신이 썼지만, 에필로그는 모두 그들의 여인들에게 맡겼다는 것. 

 

누가 누구에게서 영감을 받았는지 어쨌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그렇다. 

 

 

 

하지만, 차이점은 있다.

 

 

낭만제주에는 '그녀'가 주로 돌봐주고 아껴주고 배려해줘야 하는 대상으로 그려지지만,

카리브해 데낄라에서 '그녀'는 보다 적극적으로 화자로 개입하고 있다는 거.

역시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하는 '그녀'가 <아내의 독백>이라는 형식으로 만화를 그려

중간 중간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이우일의 '작은 그녀' 까지 귀엽고 앙증맞은 그림일기로 한몫 하고 있다.

꽤나 풋풋하고 사랑스럽다.

 

낭만제주의 화자는 보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반면

카리브해 데낄라의 화자는 좀 더 중립적이고 차분했다.

공식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한 사람의 혹은 한 가족의 사적인 여행의 기록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지 않은 게 어디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 두 책의 어투는 그걸 구별짓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그 여행지에 대해, 그 여행에 대해,

화자가 '감정'을 절제하고 '적당한 거리'를 둘 줄 아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인 것 같다.

내게는 카리브해 데낄라 스타일이 읽기에 마음이 편했다.

 

낭만제주에는 내가 아는 제주의 역사보다 내가 세세히 모르고 있는 제주의 모습이 더 많았다.

아마도 책에 나온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쟁이'인 저자의 관심사 때문인 것 같다.

다음에 제주에 갈 때는 그곳의 자연과 사람 이상으로

역사적 배경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선행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반면, 카리브해 데낄라에는 내가 모르는 멕시코와 쿠바보다는  

내가 아는 멕시코와 쿠바가 더 많이 나온다.

다녀온 지가 몇 년 지난 터라 나는 그리움으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겼다.

내가 두려워했던 문제에 똑같이 두려워하고, 내가 아파하던 문제에 똑같이 아픔을 느끼는 화자가

그것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화자가 나는 고마웠다.

내가 정 준 것들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가 느껴져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마무리에 있었다.

 

낭만 제주, 읽으면서 이렇게나 호, 불호가 오락가락하게 만드는 책은 또 처음이다.

처음 책을 잡았을 때 주위에 소문을 냈었다.

이 책 너무 닭살이야~ 알레르기 있는 사람은 안 보는 게 좋을걸~

훗. 그래도 읽다 보니 내 주변 남자들에게서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볼 수 없는  

애정표현만 있는 게 아니라

역사를 좋아한다는 저자 덕분에 조금 다른 시각의 제주를 볼 수 있어서  

그 정도는 봐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용납 안 되는 건 무성의한 교정교열 편집.

종종 주어와 목적격과 동사의 관계가 아리송해지는 문장의 출현이야

이 세상 모든 책의 저자가 완벽한 문장가일 수야 없으니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간다 쳐도

도무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오자와 탈자, 그리고 편집 실수.  ㅡ.ㅡ

마치, 요즘 한창인 제주 다시 보기 붐에 편승하고자 후다닥 해치운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그때마다 불편한 마음으로 "아으, 진짜!! (>.<)" 를 외치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인터넷 서점에서 인기 참 좋다.

아~ 그런데 나는 정말 정말 바른 교정교열 만큼은  

책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믿는 고집쟁이인 것이다.

내용이 아무리 유달라도 그것이 빠져 있으면 내겐 얕고 가벼운 책일 뿐 '착한 책'이 될 수 없다.

 

카리브해 데낄라, 책장을 거의 다 덮을 때쯤 딱 한 개의 오자를 발견했다.

또, 폭과 너비를 다른 낱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두 군데, 잘못 사용되었다.

아마도 폭과 길이였겠지.

그리고, 그쪽 여행기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스페인어를 모르는 데서 오는 오류들...

영어식 표기로 쿠바의 지명을 발음하는 건 전혀 낭만적이지도 쿠바답지도 않다.

어떤 건 스페인어 그대로, 어떤 건 영어 식의 추정 발음으로.

쓰는 김에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금세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3년 전이니 그동안 1쇄 이후를 찍었다면 누군가가 알려줘 수정되지 않았을까? 

출판사에 연락하거나 저자와의 접촉을 시도해 볼까 생각 중이다.

 

책 하날 가지고 뭐 그리 골머리 아프게 보냐고?

나한테 책은 그런 존재다.

첫사랑의 그녀처럼 완전했으면 하는 무엇. ㅋㅋ

 

 

아!!!!!!!!!!!!!!!!!!!!

어쨌거나 이 두 권의 책때문에 며칠간이 후다닥 흘렀다.

오래된 여행의 추억으로 가슴 한켠에 또 집채만 한 파도가 출렁이고

돌아오지 못할 시간에 대한 아쉬움으로 망막이 흐려진다.

 

 ps.

낭만 제주

여인은 있으나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뚝뚝이들이 읽으면  

한 가닥 힌트를 얻을지 모르겠다.

단 이미 뚝뚝이 남자친구를 두고 있는 처자라면  

읽고 나서 한없이 비교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할 것.

카리브해 데낄라

저자의 안정된 글도 글이지만,  

카리브해의 정열을 한껏 고조시키는 원색의 일러스트 또한 일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의 수저 - 윤대녕 맛 산문집
윤대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몇 해 전인가. 어느 날 나는 어두운 방에서 혼자 저녁을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되었다. 그것은 내게 하나의 놀라운 발견이자 충격이었다. 어깨너머로 훔쳐보니 반찬이 고작 깻잎
장아찌와 배추김치뿐인 초라하기 짝이 없는 밥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냉수 한 그릇.
  "어째서 이런 저녁을 드시고 계십니까, 어머니."
내가 묻자 어머니는 낯선 사내에게 앞가슴을 들킨 처녀처럼 냉큼 얼굴을 감추고 돌아앉았다.
그러고는 변명조로 말했다.
  "늙은 여자가 혼자 먹는 밥상은 다 이런 거란다. 어느 어미가 저 혼자 배불리 먹겠다고 따로 밥상을 차린다더냐. 그저 밥 한 그릇과 짠지 한 가지면 되지."
  그날 느꼈던 막다른 슬픔과 충격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생략)


 소설가 윤대녕이 쓴 '맛'에 관한 산문집의 마지막 장, 작가의 말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직 우리 세대에도 이런 전통적인 정서의 '어머니'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과히 낯설지는 않은 풍경이다. 같이 살 적엔 이런 상차림의 엄마에게 자주 성을 내곤 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어떻게 드시는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먹고살기의 고단함을 핑계로 자주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있다.

 작가가 쓴 '맛'에 대한 산문이니 그야말로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숨어 있던 미각까지

생생히 일깨우고 간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생선회 같은...)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침이 잔뜩 고여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그 뛰어난 문장력이 육류에 대한 흥미를

앗아가기도 했다. 식도락을 위해 희생되는 가축들, 동물들의 이야기를 읽고난 후로는 그렇게

열광하던 내장 들어간 고릿한 해장국도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도 입덧하는 여자처럼 역한

누린내를 풍기고 만다. 뭐, 그래봤자 일시적인 현상이겠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손맛이 좋은 여자로 살고 싶다.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장아찌 같은 각종

저장식품으로 장독대를 가득 채우고, 별 특별할 것 없는 텃밭의 채소 두어 가지로도 밥 한 그릇

뚝딱 비울 맛깔스런 밥상을 차려내는 여자, 어머니로 살고 싶다.

 그런데, 이 책만 읽으면, 소설가가 꽤나 속 편한 직업처럼 보인다. 키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