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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수저 - 윤대녕 맛 산문집
윤대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몇 해 전인가. 어느 날 나는 어두운 방에서 혼자 저녁을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되었다. 그것은 내게 하나의 놀라운 발견이자 충격이었다. 어깨너머로 훔쳐보니 반찬이 고작 깻잎
장아찌와 배추김치뿐인 초라하기 짝이 없는 밥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냉수 한 그릇.
"어째서 이런 저녁을 드시고 계십니까, 어머니."
내가 묻자 어머니는 낯선 사내에게 앞가슴을 들킨 처녀처럼 냉큼 얼굴을 감추고 돌아앉았다.
그러고는 변명조로 말했다.
"늙은 여자가 혼자 먹는 밥상은 다 이런 거란다. 어느 어미가 저 혼자 배불리 먹겠다고 따로 밥상을 차린다더냐. 그저 밥 한 그릇과 짠지 한 가지면 되지."
그날 느꼈던 막다른 슬픔과 충격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생략)
소설가 윤대녕이 쓴 '맛'에 관한 산문집의 마지막 장, 작가의 말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직 우리 세대에도 이런 전통적인 정서의 '어머니'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과히 낯설지는 않은 풍경이다. 같이 살 적엔 이런 상차림의 엄마에게 자주 성을 내곤 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어떻게 드시는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먹고살기의 고단함을 핑계로 자주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있다.
작가가 쓴 '맛'에 대한 산문이니 그야말로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숨어 있던 미각까지
생생히 일깨우고 간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생선회 같은...)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침이 잔뜩 고여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그 뛰어난 문장력이 육류에 대한 흥미를
앗아가기도 했다. 식도락을 위해 희생되는 가축들, 동물들의 이야기를 읽고난 후로는 그렇게
열광하던 내장 들어간 고릿한 해장국도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도 입덧하는 여자처럼 역한
누린내를 풍기고 만다. 뭐, 그래봤자 일시적인 현상이겠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손맛이 좋은 여자로 살고 싶다.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장아찌 같은 각종
저장식품으로 장독대를 가득 채우고, 별 특별할 것 없는 텃밭의 채소 두어 가지로도 밥 한 그릇
뚝딱 비울 맛깔스런 밥상을 차려내는 여자, 어머니로 살고 싶다.
그런데, 이 책만 읽으면, 소설가가 꽤나 속 편한 직업처럼 보인다. 키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