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창비시선 313
이정록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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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

 

이 정록

 

욕쟁이 목포홍어집

마흔 넘은 큰아들

골수암 나이만도 십사년이다

양쪽 다리 세 번 톱질했다

새우눈으로 웃는다

 

개업한 지 십팔년하고 십년

막걸리는 끓어오르고 홍어는 삭는다

부글부글,을 벌써 배웅한

저 늙은네는 곰삭은 젓갈이다

 

겨우 세 번 갔을 뿐인데

단골 내 남자 왔다고 홍어좆을 내온다

남세스럽게 잠자리에 이만한 게 없다며

꽃잎 한 점 넣어준다

 

서른여섯 뜨건 젖가슴에

동사한 신랑 묻은 뒤로는

밤늦도록 홍어좆만 주물럭거렸다고

만만한 게 홍어좆밖에 없었다고

얼음 막걸리를 젓는다

 

얼어죽은 남편과 아픈 큰애와

박복한 이년을 합치면

그게 바로 내 인생의 삼합이라고

 

우리집 큰놈은 이제

쓸모도 없는 거시기만 남았다고

두 다리보다도 그게 더 길다고

막걸리 거품처럼 웃는다

 

 

 

 

엄니의 남자

 

이 정록

 

엄니와 밤늦게 뽕짝을 듣는다

얼마나 감돌았는지 끊일 듯 에일 듯 신파연명조다

마른 젖 보채듯 엄니 일으켜 블루스라는 걸 춘다

허리께에 닿는 삼베 뭉치 머리칼, 선산에 짜다 만 수의라도 있는가

엄니의 궁둥이와 산도가 선산 쪽으로 쏠린다

이태 전만 해도 젖가슴이 착 붙어서

이게 모자(母子)다 싶었는데 가오리연만한 허공이 생긴다

어색할 땐 호통이 제일이라, 아버지한테 배운 대로 헛기침 놓는다

"엄니, 저한티 남자를 느껴유? 워째 자꾸 엉치를 뺀대유?"

"미친놈, 남정네는 무슨? 허리가 꼬부라져서 그런 겨"

자개농 쪽으로 팔베개 당겼다 놓았다 썰물 키질소리

"가상키는 허다만, 큰애 니가 암만 힘써도

아버지 자리는 어림도 읎어야"

신파연명조로 온통 풀벌레 운다

 

 

 

 

이백

 

이 정록

 

  원고지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사학년 때다 뭘 써도

좋다 원고지 다섯 장만 채워와라! 다락방에 올라 두근두

근, 처음으로 원고지라는 걸 펼쳐보니 (10X20)이라 쓰여

있는 게 아닌가? 그럼 답은 200! 구구단을 뗀 지 두어 달,

뭐든 곱하던 때인지라 원고지 칸마다 200이란 숫자를 가

득 써냈다 너 같은 놈은 교사생활 삼십년, 개교 이래 처음

이라고 교문 밖 초롱산 꼭대기까지 소문이 쫙 퍼졌다 그로

부터 십오년, 나는 작가가 되었다 지금도 글이 콱 막힐 때

마다, 그 붉은 우물에서 두레박을 타고 이백이 솟아오른다

그때 나는, 이백과 같은 길을 걸어갈 거라는 막연한 운명

을 또박또박 적어넣었던 게 아닐까?

 

모처럼 얼굴에 난 주름 좀 펴보자고 마스크 팩을 붙이고 침대에 누웠다.
멀뚱멀뚱 누워만 있자면 또 고되겠기에, 점심 시간 빗속에 모셔온 시집을 펴들었다.
시집 겉장에 쓰인 추천의 말에 '홍어'라는 시가 나온다.


홍어 좋아하시는 이웃님 생각이 나 제일 먼저 찾아 펼친다는 게 그만 한 장이 모자라
31쪽 '작명의 즐거움'이라는 시에 눈길이 먼저 가고 말았는데... 흐흥, 크크쿠, 쿠쿡, 쿠쿠쿡,
얼굴에 뒤집어 쓴 하얀 거죽 말릴까 봐 웃음을 참고 참고 또 참아보다가 그만 폭발,
기어이 눈물을 찔끔거릴 때까지 파안대소를 하고야 말았다.


어이쿠야... 남들이 들을까 남세스럽다.
가시나가 한밤중에 웃음소리가 그게 뭐다냐.
어릴적 언니의 지청구와 꿀밤이 날아올 것만 같은데 한 번 터진 웃음은 좀체 멈출 줄을 모른다.

'홍어'의 앞 뒤로 줄 선 시들에 담긴 시인의 능청스러움에
눈가 주름이 모르긴 해도 일 센티는 더 길어지고 말았는데
어찌된 게 마음의 주름은 엄마가 풀 빳빳하게 먹인 하얀 광목천처럼
오랜만에 꼬슬꼬슬 봄볕을 쪼인 기분이다.

재밌는 양반이다.
음담패설과 시적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묘한 시어의 놀음.
문제의 그 '홍어'를 먹다가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킥킥킥
삼합에 이르러서 칵 목이 막히고 말았다.....

아, 그래, 바로 이건데!!!
무릎을 친다.
이 바보가 어려서 원어연극을 한답시고 (지금 다시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긴 하지만)
심각한 비극일지라도 코믹한 요소 역시 섞어 줘야 함을 이해 못해 시종일관 진지 모드,
그나마 몇 명 안 되는 고마운 관객을 한 시간 넘게 비극적으로 고문한 적이 있다. 몹쓸것!

그의 시는 그걸 잘 아는 것 같다.
불행을 한없이 가볍게 공깃돌 다루듯 하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은 뒷맛을 남긴다.
 

내가 워낙 순진해(흐흐)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 요오오오상한 대목도 많지만,
그동안 내 삶이 어찌나 은유와는 담 쌓은 직설과 직유의 세계에 머물렀는지
맨입에 고구마 먹듯 팍팍하니 잘 안 넘어가는 시들도 또 있다.
시간을 두고 차차 마음의 눈을 맑게 부셔야 할 것만 같다.


이제 시집의 절반 정도를 음미한 것 같다.
지하철에서까지 대책 없이 낄낄, 깔깔, 내쳐 몰아 읽다가 어느 순간 책장을 탁 덮어버렸다.
이렇게 재밌는 걸 한꺼번에 다 읽어버리면 아까울 것 같아서
두고 두고 아껴 읽어야지, 다람쥐가 도토리 쟁이듯 가방 속에 쏙 집어넣었다.
히잇. 포.만.감.

 
아이고야, 
그나저나 이제 개그콘서트 같은 건 밍밍하고 무슴슴해서 못 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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