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 - 이 시대를 사는 40대 여성들을 위한 위로 공감 에세이
한혜진 지음 / 체인지업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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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앓다가  나를 앓았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많은 부분에서 공감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 시대를 사는 40대 여성들을 위한 위로 공감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린 것처럼

책 내용은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느라 정작 나는 없어지고 노는 사람으로 치부되어지는

주위의 시선을 아파하는 경력단절녀의 아우성을  적나라하게 그려주었다.

그래서  때로는 분노가, 때로는 안쓰러움이 내내 마음을 적셨다.



 

 여자니까 여자라서  정숙하게 살고 남편 내조 잘하고 아이 잘 키우고

이 낡은 멘트로 여자를 가둔다. 여자는 예뻐야 하고 날씬해야 하고

직장을 그만 두고 아이를 키운다면 아주 잘 키워야 한다.

저자는 엄마가 된  여자는 몸매는 이미 글렀으니 아이라도? 잘 키워랴 한다고 능력을 증명하라고 윽박질러대는 이 사회가 무섭다고 느낀다.

여자는 능력이 있다 해도  육아와 가사가 우선이라 한다,

남자는 돈 벌어오는 게 마땅한 일이고 맞벌이를 한다 해도 일이나 가정일 모두 잘해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강요받는 것이 엄청난 무게로 짓눌러 온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한번 아기 기저귀를 갈아치우는  

일을 하는 직업이 겨우 손에 익을라치면

가까운 친정 엄마조차

이제 그만 놀고 일거리를 찾으라고 은근 슬쩍 눈치를  주는 게 우리 현실이다.

아기를 키우는 건 일이 아닌가?

아기를 키우는  일이 그렇게 무가치한 것인가?


아무리 직장을 찾으려 해도 아기를 업고 할 수는 없다.

저자가 아기를 업고 설겆이 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봤을 때

"아이고, 딱해라!" 하면서 에둘러 안된다고 한 구인식당 여주인의 말처럼

아이를 기르는 엄마는 이 사회에서

그저 아이나 데리고 노는 여자, 아이나 잘 키우지 뭐하러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집에서 놀면서  

아이 키우는 여자쯤으로  전락하고야 만다.


그 옛날 시집살이와 가난과 일복에 치여 살았던 우리네 어머니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대대 손손 물려지는 말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너는 나처럼 절대로 나처럼 살지 마라고 했을까.

우리 어머니들의 설움과 시집살이의 고통과

나는 없고

오로지  여자로서의 인생을 강요당하는 인생을 살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한 어머니들의 슬픔이 느껴진다.   


급기야는 간단한 후기 작성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일자리를 찾았다가

보이스 피싱조직에다가 통장과 비밀번호까지 주어서

경찰서에 불려다니는 등 곤욕을 치르는 저자는 일에 미친 걸까?

아니면 아기를 키우는 위대한 일의 사명감이 제로라서 그랬을까?

남편도 가족들도 아이키우는 일을 개무시하면서

집에서 놀면서 집안꼴이 이게 뭐내고 힐난할 때

나도모르게 주먹이 쥐어지고 열이 오르고 부아가 나기도 했다.

어쩌면 지친 아내를 위로하지는 못할 망정 주중에는 그리도 아이가  궁금해 하다가도

주말만 되면 쉬어야한다는

남편의 이중적인 태도에도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서러움이 느껴진다.

드디어 마흔을 앓는 여자는

그저 남들처럼 그렇게 살기에는

나의 가치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저절로 살아지는 대로 살지 않고

의도적으로 살기로 작정을 하며

인생도 효과적으로 살 수 있기를 희망하는 시간을 만들 만큼 성숙해진다.

    



​   일부러 살기로 했다.

저절로 사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인생을 만들어가기로 한 저자의

심리변화에 박수를 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나이대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자아분화 과정까지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저자는 이제 이성적인 사고로 자기 인생을 만들고자 한다. 

나라는 그릇을 만들어가는 결정적인 시기는 언제일까? 50은 넘어야 진짜 자아가 많은 편이고 그 이전에는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행동하며 관계에 의존하고 불안하고 신경질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저자는 스테레오 타입에 갇히지 않으려고 쓰고 생각하고 공부하며 노력하는데 그 시도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수학을 잘하는 여학생에게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문제를 풀게 하면 점수가 낮아지는 데 이 현상을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울 때 대부분 기억을 따라서 내 부모가 나에게 준 사랑과 억압을 그대로 물려주는 경향은 어쩔 수 없는 대물림 현상이랄까? 그래도 부모에게 느끼던 원한과 분노를 아이에게 쏟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부모와의 관계가 나의 성격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걸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지 싶다.  내가 부모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아이에게 들려주고 그 멋진 예언이 아이의 귀에 못이 닳도록 말해주기, 이건 예언이든 태몽이든 꿈이든 좋은 말들을 다 해줄 수 있다. 부모의 예언은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말씀처럼 위대하다.  

 "얘야 넌 잘 된다더라."

" 너는 부자가 된다더라."

 "태몽에 넌 왕자와 만난다더라."

이런 어른들의 말은 아이의 인생에 태풍이 불고 파도가 칠 때마다 격려사가 된다.

 "일어나라, 어서  일어나! 너는 잘된다고 했어, 다시 시도해 봐!, 넌 잘할 수 있어!"

"엄마, 왜 공주들은 툭하면 픽픽 쓰러져?

그리고 왜 왕자가 나타나야 살아나고, 그리고 바로 결혼을 해 ?" 

저자의 따님이 한 말처럼

우리에게는 자신을 지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내 인생을 기운빠지게 하고 만나면 재수 없는 그런 인간들은 거를 때가 되었다.

내 인생을 알뜰살뜰하게 챙겨야 한다. 꽃퍼럼 가꾸고 정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툭하면 쓰러지고 왕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올 때까지 누워있는 공주들에게 꼭 전해주어야 할 말이다.

마흔을 앓고 난 후 세상을 알게 되고 나를 알게 되고 독자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다.  

​마흔을 앓기보다는 마흔을 지나가면서 수많은 공부와 깨달음 을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

여자라는 변명이나 구질구질한 위로를 청하기보다는 일어서서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말로 내게는 들린다.  마흔 뿐만 아니라 마흔을 앓듯 삶에 지치고 힘든 모든 이 땅의 여성들에게 주는 열렬한 격려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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