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렐류드 - 찬란한 추억의 정원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이 수많은 꽃 이름을 가르쳐줬는데, 여전히 하나도 몰라. 그렇지만 날씨가 유난히 화창하고 따뜻한 날에 화사한 색채를 보면, 정말 신기하지, 당신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아.
“제라늄, 마리골드, 버베나.”
그럼 마치 이 세 단어가 사라진 아름다운 언어에서 남은 전부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그날 기억해?
-딜 피클, p.15


prelude (전주곡). 본래 모음곡 등에 도입 역할을 하는 소품을 가리켰지만, 오늘날에는 독립된 소곡(小曲)을 일컫는 용어로 쓰이는 이 단어가 단편집의 제목이다. 그리고 아주 미묘한 감정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나 있는 표제작의 제목이기도 하다. 도입 역할을 했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하나의 작품이 되는 전주곡.
16편의 단편은 개별 작품으로도 독립적이면서 관통하는 주제들이 있어 그 다음 작품의 내용을 유추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표제작인 프렐류드.
아침부터 밤까지 스탠리 버넬 일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시 근교로 이사하는 버넬 일가의 모습은 여러 화자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정한 플롯이 없이 어떤 생각, 이미지를 통해 인물들의 내면을 유추할 뿐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겉으로 보기엔 화목한 집안이지만, 가족 관계는 어딘지 모르게 아슬아슬하다. 어느 가정이 안 그렇겠냐마는… 아이들에게 너무 냉정한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리를 두는 린다 버넬,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와 나누는 성관계 그리고 후에 찾아올 임신이 두렵다. 벌써 아이가 셋인데… 정원을 가꾸고 아이를 낳고 또 낳고 그렇게 살아갈 자신의 삶을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


커다란 나방 두 마리가 창문으로 들어와 램프 불빛을 빙빙 돌았다. ‘늦게 전에 날아가. 다시 날아가.’ p.106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면서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엄마와 아내라는 프레임에 답답함을 느끼는 린다의 삶. 갈등과 갈망 사이에서 조용히 지르는 린다의 비명이 들리는 듯 했다. 그래서일까? 불빛을 보고 날아든 나방을 보고 ‘늦게 전에 날아가’라고 외친 린다의 속사람의 말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진 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유일하게 질투했던 글솜씨를 지닌, 20세기 문학에서 자주 간과되지만 진정한 천재였던 작가라고 평가되어지는 맨스필드. 프렐류드는 버지니아 울프 부부의 출판사 호가스 프레스의 두 번째 단행본으로 선택되었지만 출간 당시 평론가들에게 무시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21세기에 와서는 단편문학의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준 작품이자 모더니즘의 정수로 여겨진다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단편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단편소설의 여왕 캐서린 맨스필드. 그녀의 글을 읽지 않았다면 읽어보시라 권한다.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묘사가 돋보이는, 인물들의 내적 묘사가 살아있는 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코호북스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