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하트 - Wild Heart
존 엘드리지 지음 / 포이에마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경험 1 :

몽골의 황량한 사막을 건너오면서 만난 남자가 있었다. 작은 지프에 물건을 잔뜩 싣고 러시아에서 울란바토르로 가는 그를 바얀얼기에서 만났다. 그렇게 만난 자동차 ‘다라까’(주인)는 바얀얼기에서 울란바토르까지 1,800km의 여행에서 나와 아내를 싼 값에 책임져주기로 했다. 짐짝처럼 자동차에 끼여서 길도 없이 삭막한 광야를 가는데 꼬박 5박6일 걸렸다. 그러는 동안에 다라까는 끊임없이 술을 마셔댔다. 울란바토르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독하다고 소문난 러시아산 보드카 두 박스가 비워졌다. 그렇게 오던 여행 중간에 그가 나에게 보드카를 한 잔 권했다. “나는 술을 안 마신다”고 그랬더니 “남자가 술을 안마시고 어떻게 남자라고 할 수 있느냐?”고 했다. 순간 머릿속에 쑥 지나가는 질문 하나. 술만 잘 마시면 남잔가? 술하고 남자하고 무슨 상관이지?...

경험 2 :

우리는 남자를 어떤 모양으로 생각하는지 궁금해져서 물었다. 어떤 이가 귀띔해주기를 우리나라는 남자의 남자 됨을 호탕함에서 찾는다고 그런다. “그럼 호탕함이 뭐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것은 호색과 방탕”이라고... 허허 웃음이 났다. 호탕함의 진정한 의미는 소심함의 반대쪽에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호색과 방탕도 그럴 듯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과거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색을 밝히고 방탕하게 살았는가? 피는 못 속이는 건지 지금도 입만 벌리면 여성편력을 과시하는 남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내 기억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은 색시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경험 3 :

그런 때에 비하면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옛날 어른들처럼 주색잡기로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작정하는 남자들도 많이 있고,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중요한 무엇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주방에서 아내의 일을 돕는 남자들을 나무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쪽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것 자체에 원한을 품은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세상의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것이 순전히 사회화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키우기를 그렇게 키웠기 때문이라고... 만약에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나처럼 아무것도 모른 사람은 자식을 키우는데 보통 신경 써야 하는 게 아니다. 자칫 잘못해서 아이를 망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가능하면 주관적 편견으로 아이에게 다가가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애초부터 장난감 같은 것은 백해무익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접촉을 금지시켰지만 성적인 견해가 덧입혀진 것들은 더더욱 멀리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커가면서 자기들이 남자인 것을 배워왔다. 폭력적인 성향을 배울까봐 일부러 보여주지도 않았던 무기류들을 좋아하고, 보자기 하나 어깨에 걸치고 소파 높은 곳에서 자유낙하를 연습하며 자기가 슈퍼맨임을 자랑했다. 아빠하고 나란히 서서 “누구 오줌발이 더 센가?” 내기하자고 달려들 때는 그런 모습을 어디서 배워왔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식한 교육학자들이 내뱉은 씨도 안 먹히는 헛소리에 속은 것을 알았다. 우리 집 아이들은 처음부터 남자였던 것이다.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이 남자들의 남성성을 망치고 있다”고 하는 저자의 인용을 처음에 읽었을 때 그 말의 의미를 몰라서 한참이나 생각해야 했지만 책읽기의 과정에서 줄곧 이 책은 내가 앞에서 말한 이야기들을 생각나게 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남자는 이래야 한다”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상당한 왜곡들을 드러내고 그것이 어떻게 바로잡아져야 하는지를 자기 얘기를 섞어서 실감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와일드 하트』라고 하는 제목 속에 충분히 들어있다. 남자는 처음부터 남자로서의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것은 거친 모험을 좋아하고, 영웅이 되고 싶어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얼마 동안은 저자가 영화에서나 보는 거친 남자를 남자 됨의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이 사람이 너무 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고 글의 방향이 곧 하나님의 의도를 향하여 맞춰진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마음도 편해졌다.

저자도 책에서 줄곧 하는 얘기지만 모든 아들은 아버지를 통해서 남성을 배우도록 되어 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아버지 경험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사회적 통계로도 나와 있다. 아들들에게 아버지는 거의가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자 혐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는 심할 경우에 죽이고 싶다는 분노로 표현되기도 하고 그것이 때로는 아들의 인생을 비참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불쑥불쑥 아버지의 모습을 연출해내는 자신의 모습을 자주 보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를 통해서 남성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저자는 세상의 남자들이 두려움과 거짓에 갇혀 있다고 한다. 두려움이라고 함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사회와 사람들의 판단에 대한 두려움이지만 그것들의 대부분은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전통에서 출발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남자들은 거칠고 강한 척하면서 자기를 거짓으로 포장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통해서 남성을 배운다는 원리는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통해서 남자로 자라는 아들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서 다음 걸음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참 남자가 진정으로 싸워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싸움의 진짜 목표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남성성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처럼 진리(영화에서는 자유라는 최고 선)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와 내 아들들을 생각했다. 내 경우를 생각해 보면 저자가 지적했던 것처럼 지금까지 오면서 두려움에 지배받은 것이 사실이다. 무엇을 하든지 잘하지 못할까봐 걱정했고,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는 나의 본 모습을 들킬까봐 겁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거절로 다가오지는 않을까 꽤나 걱정을 하면서 살았다. 왜 그랬느냐는 물음에 굳이 대답을 찾자면... 그것은 기질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자라온 과정의 환경문제이기도 하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도 빼놓을 수 없는 큰 덩어리로 작용했다. 그렇게 해서 이제는 아버지가 되었다. 우리 아들들은 장차 어떤 모양으로 조각될까?

우리 아들들은 아직도 아빠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빠는 뭐든지 다 하고 뭐든지 다 아는 아빠로 여기는 아이들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나의 감정표현, 나의 말투 하나하나가 아이들을 만들어가는 정과 끌이라고 하는 사실이었다. 이 아이들을 하나님이 바라시는 진정한 남성으로 키우기 위해서 용기를 북돋우고, 함께 모험하며, 때로는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담담함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새삼스럽게 아버지로서 가져야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용기를 남용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법을 연습시켜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조심해야 하는가도 생각하게 됐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 표지가 너무 허름해서 웃음이 나왔다. 요즘에도 이렇게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나 싶어서... 하지만 표지의 허름함이 책의 내용을 허름하게 취급하게 하지는 못했다. 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또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내가 서있는 자리를 여러 방향에서 생각하게 한 책읽기라고 여길 만큼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중간 중간에 삽입해 놓은 산(山) 사진은 또 하나의 메시지로 다가왔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행동할 것을 전하는... 나에게는 고든 맥도널드가 쓴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가?> 이후로 만난 남자의 남자 됨을 묵상하기에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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