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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선택한 길에서 뒤돌아보지 마라 - 자신의 재능을 사회적 약자에게 기부한 데이비드 부소 이야기
필리퍼 틴데일 지음, 오희천 옮김 / 포이에마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난한 집>이라는 제목으로 작문 숙제를 내줬다. 부잣집 아이가 이렇게 썼다. “무척 가난한 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은 얼마나 가난했는지 모두가 가난했습니다. 가정부도 가난하고, 집사도 가난하고, 정원사도 가난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어느 영어 참고서에서 읽은 이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모든 사람은 자기 경험으로 만들어진 창틀로만 건너편을 본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사람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이 성경에 있다.(신15:11) 구약성경을 보면 인간의 가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꽤나 괜찮은 장치들을 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이 그치지 않는다고 한 것은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도 가난을 나라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을 비참하게 하고, 비굴하게도 만들고, 때로는 부도덕하게도 만드는 가난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의 게으름과 정신상태의 문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부조리한 사회의 잘못된 구조가 문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사회 전반의 의식 문제라고도 한다. 무엇이 진짜 문제일까? 사람마다 각자 자기가 가진 창틀로만 이 문제를 보려고 하기 때문에 이 질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가 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더 비참해져 간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래 동안 이 질문을 붙잡고 씨름하는 사이에 가난 자체를 붙잡고 씨름한 사람이 있다. 바로 ‘데이비드 부소’(David Bussau)라는 사람이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에 자기 인생의 거의 절반 이상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산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살아야한다고 하는 특별한 사명으로 시작했던 것도 아니다. 아주 우연히, 엄청난 폭풍이 지나간 도시의 폐허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돕기 위해서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자고 시작했던 일이었고, 자기가 사는 나라의 한쪽 구석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것이 그의 인생 나머지와 연결되었다. 표지에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그의 이야기(The David Bussau Story)다.
부소는 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한 점도 없었고 어머니도 그들을 떠났다. 그래서 그는 영원히 떠나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 이야기(시27:10)에 큰 감동을 받았다. 어쩌면 그는 평생 동안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살았는지도 모른다.
옛날 고아원 생활이 다 그렇듯이 부소의 고아원 생활은 힘들었다. 그는 그곳에서 온갖 일을 다 해봤고 그 과정에서 죽을 뻔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있고 나서 그는 새 부모님을 만났다. 부소라는 성(姓)은 그렇게 새 부모를 통해서 얻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끝까지 좋을 수는 없어서 결국 데이비드는 부소 가문을 떠나게 된다.
부소의 행적을 생각하면 그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의 출신을 생각하면 그가 세상에 공헌할만한 어떤 배경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 학벌을 생각해도 고등학교 중퇴가 그의 학벌 전부다. 다만 그는 독립심이 있었고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한 면이다. 그래서 가게 하나를 내면 얼마 안돼서 그것을 몇 개로 확장하는 재주를 일찍부터 발휘했다. 이 재능이 나중에는 가난에 묻혀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여정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물질이든지 학벌이든지 부소가 가진 것은 없었지만 그는 바르게 사고할 줄 아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을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고아원 시절에도 그는 모든 일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부소에게 좋은 기술과 재능을 소유하게 했다. 그는 또 돈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돈이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로 이 발견은 그로 하여금 저축하는 습관으로 움직이게 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서 그는 사람이 가진 소유욕이라고 하는 것이 끝이 없다는 것도 발견했다. 돈을 얼마나 벌어야 충분히 벌었다고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고, 결국은 자유를 준다고 생각했던 재물이 사람을 포로로 만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견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묻기 시작했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재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의 이야기에서 종교로써의 기독교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지만 부소가 발견하고 실천한 삶의 방식은 철저하게 기독교적이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가 예수님의 죽으신 목적(고후5:15)에 맞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의 인생 여정을 바울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바울이 사람을 복음으로 살리기 위해서 자기 인생 전체를 바쳤다면 부소는 사람을 경제적으로 존엄하게 하기 위해서 인생을 바쳤다. 그 과정에서 그가 직면해야 했던 위험을 보면 바울이 감당했던 위험(고후11:23-28)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가 만난 위험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그들의 사회적 존엄성을 높여줘야 한다는 그의 열망을 막지는 못했다.
생각해보면 그의 소액 대출 사업이 빈민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때 사람들이 그를 백자장자로 여겼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약한 사람들 앞에서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든지 그들의 돈을 빌리는 사람들이든지 그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했고, 계발 사업에서 사람들을 지휘할 때도 먼저 본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가 가진 아이디어나 경험의 결과물들을 기꺼이 다른 사람들과 나눴다. 자기를 챙기거나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살 생각은 조금도 없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은퇴할 때는 모두가 아쉬워한 사람이다.
그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지만 일을 사람보다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의 관심은 항상 사람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뿐만 아니라 동료들을 계발하고 발전시키는 데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나이 어린 딸이 미혼모가 되었을 때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문제를 처리하는지 보고 싶어 했다. 이럴 때 보통 사람은 감춰진 자기 모습을 본능적으로 드러내기 마련인데 부소는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던 이 사건을 통해서 나는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발견했다.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부소의 그런 인격을 높이 샀을 것 같다. 믿음에 대한 구호는 있고 실천은 없는 이 시대에 그의 사고와 삶, 그리고 그의 인격은 오늘을 사는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따라 살아야하는가를 배우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자기 창틀로 가난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난과 사람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 책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들은 모두 부소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고 도움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다. 부소의 친화력이나 인간관계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한 권의 책에 담아낼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쓴 ‘필리퍼 틴데일’(Phiippa Tyndale)은 일목요연하게 그들의 역할을 잡아냈다. 그러면서도 부소의 이야기에서 그들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부소가 걸었던 긴 여정을 흐트러짐 없이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와 같은 저자의 집중력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