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잘하는 아이는 없다
조수경 지음 / 행복에너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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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유치원, 시간이 짧을만큼 빡빡한 영어수학등의 학원뺑뺑이, 첼로 바이올린 등의 비싼 음악레슨..
아이가 어릴 때부터 말그대로 '빡시게' 영어, 수학, 논술, 예체능 등을 배워주지 않으면 다른 아이보다 뒤쳐질 것이라는 두려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든 많은 사교육과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교육프로그램들은
나같은 미취학 아동을 둔 초보엄마의 눈과 귀를 어질어질하도록 만든다.
게다가 그렇게 비싼 돈을 들여 공들인 것들에 대해,
문제점과 폐해에 대한 지적도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는 현실은
도대체 비싸더라도 저걸 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건지 혼란만 가중시킨다.

아이의 방문학습 상담을 하러 온 선생님은,
요즘은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의 교육을 좌우한다고 했다.
내게도 가만히 듣기만 하지 말고 이 책을, 이 교재를 구입하라는 말이다.
그래야만 좋은 엄마가 되는 것 같은,
그 책을 사주지 않으면 아이게 대한 죄책감까지 들게 만드는 요즘 현실이다.

요즘 '좋은 부모'의 조건은
아이를 키우면서 얼마나 올바른 인성을 심어줄 수 있는가 보다는
아이의 교육비로 얼마를 내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한 척도가 되어버린 듯 하다.

그런데 여기, 실패하지 않는 자식교육의 비결로 '엄마의 사랑'을 들고 나온 사람이 있다.
온 가족이 함께 뛰면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직업군인의 아내로 여기저기 이사를 하면서,
빠듯한 살림과 잦은 환경변화에도 아이 둘을 훌륭히 키워낸 엄마,
아내로, 엄마로 집안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바쁘게 살아온 엄마.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부모도 물론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이가 자라는 데 있어서 부모의 경제력보다 더 중요한 것,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 아이 편이 되어주는 것,
가정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 아이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나가는 것...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의 마음가짐 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해준다.
육아전문가도 아니고, 교육자도 아닌 평범한 아줌마의 자녀교육에 대한 단상.
아이는 마음을 듬뿍 담아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담으로 들려준다.


책을 훑어보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구절은
"자기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잘 아는 사람은 다름 아닌 부모다"라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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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녀석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엄마는 한눈에 알아본다.
그러니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언지, 어떤 것을 좋아하지 않는지 엄마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어느 과목을 잘하는지, 어느 과목에 약한지,
그래서 자기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식교육을 남에게 맡겨버린다. 그것도 아주 어려서부터.
유아원, 놀이방, 유치원은 기본이고 학교에 가서도 바로 미술, 음악, 태권도, 바둑 등등
엄마 이외에 내 아이의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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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에서 커지는 아기의 작은 움직임도 온몸으로 느끼던 그때처럼 온 신경을 써서 아이를 관찰하고, 소통하고, 그리고 마침내 그 아이의 특성에 맞는 나만의 교육방법, 엄마만의 교육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 p.65 <장님 코끼리 만지기 中>


엄마들 모임에 가면 방학동안 어떤 걸 했고, 요즘은 어떤 걸 배우는지,
앞으로 어떤 학원에 등록할 것인지가 이야기의 주요 화두다.
주위 엄마들의 조언은 정보도 되고 도움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아직 공부보다 놀기 좋아하는 아이가 저 스케쥴을 다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또 한편으로은 저렇게 다 따라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만 뒤쳐질까봐 겁도 난다.
다른 아이는 다 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왜 못해, 이런 오기도 살짝 생긴다.
"영어랑 수학은 얼른 해줘. 아이가 하나인데 왜 아직 그런 것도 안해줘."라는 지인의 말에
내가 너무 무심한 부모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학원을 여러군데 다니지 않으면 무능력하고 관심없는 부모가 되어버리는 현실.
나는 아이 학원을 더 추가해야하나 고민도 잠시 했었다.

올초에, 원어민 영어강사가 수업하는 학원에 테스트를 받으러 가자는 친구엄마의 권유에 별생각없이 따라 나섰다가, 낯선 외국인을 보고 겁을 먹은 아이가 10분만에 울며 뛰쳐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몇개월동안 원에서 새로 시작하는 영어프로그램을 싫어했다.
단지 테스트였을 뿐이라도, 우리 아이가 낯선 환경을 싫어한다는 걸 아는 내가 중간에서 끊을 수도 있었건만, 다른 사람도 간다는데... 라는 가벼운 생각이 내 아이를 영어거부감에 빠져들게 했다는 자책감은 한동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했다.
다른 사람을 기준삼아 쫓아가다가는 내 아이의 마음과 상태를 살피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내 아이에게 다른 사람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는 엄마의 확고함을 보여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내 아이의 교육에 나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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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교육에 실패하는 원인에는 엄마의 지나친 욕심과 리드 때문인 경우가 많다. 아이는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엄마의 욕심과 강요에 끌려가다가 결국 성적도 오르지 않고 부모와 지식간 사이마저 망치게 된다. ... 엄마의 역할이란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게끔 자연스럽게 뒤에서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삶이란 목표를 향해 곧바로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다. 종이배처럼 물결 따라 바람에 흔들리며 여기저기 부딪혀 가며 흘러가는 것이다. .. 우리 아이들의 무대는 항상 처음부터 화려할 수는 없다. 아이가 성장이 늦는다고 성적이 부진하다고 초조해하거나 조급해져서 온갖 단방 처방을 내려서는 안된다. - p.55 <추운 지방의 나무가 더 단단하다 中>


<삶이란 종이배처럼 여기저기 부딪혀 가며 흘러가는 것.. 처음부터 화려할 수는 없다..>
11월생이라 또래보다 가위질도, 그림도 서툰 아이는 친구들과 비교가 되었다.
'크면 다 똑같아질거야. 어쩜 우리 아이가 더 잘할 수도 있을걸? 그러니 서두르지 말자..'
어쩌면 다른 것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는 성장발달의 차이는,
준비되지 않은 아이에게 안달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럴 때는 나 스스로에게 위안하는 수 밖에 없다.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저자의 확신과 결과를 보니 힘이 생긴다.
간혹 아이가 늦되어서 속상해지려고 할 때, "삶이란 종이배와 같다"는 저자의 말을 떠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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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그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늘 잊고 산다. 실력이 없는 내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대학에 갈 실력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다른 아이와 부모들에게는 큰 상처와 불이익을 주는 일임에도 우리는 늘 제욕심만 챙기려 한다. 내 자식 잘되자고 남의 자식 못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느님도 부처님도 그 어느 신도 들어주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기보다는 다만 아이가 무탈하게 시험을 준비하고 마치기를, 결과와 관계없이 즐겁에 시험을 준비하기를 기원했다. 지나친 시험부담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지 않기를 빌었다. 자기 실력에 맞는 대학, 자기 적성에 맞는 학과에 진학해서 즐겁고 보람있는 학창시절을 보내게 해달라고 빌었다.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수험생이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자연스럽게 나 자신도 평화로워지고 여유로워졌다. - p.279 <욕심과 정성은 다른 것이다 中>


우리 아이가 대학입시를 치를 때쯤, 나도 저런 기도를 할 수 있을까.
만약 이 책을 보지 못했다면, 나도 아이 마음의 안녕을 기원하기 보다
운이 좋기를, 떨어지지 말기를 애면글면 빌었을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우리 아이도 엄마의 그런 모습이 더 불안하고 부담스러웠겠지.
내가 그 입장에 닥치더라도 필시 그러했을 것이기에,
아이에 대한 정성과 욕심은 어떻게 달리 생각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이었다.

지금도 고3, 대입의 부담감이 생생히 느껴지고 이 글에 마치 내가 고3이라도 된 냥 울컥하고 목이 메이는 걸 보면, 역시 한국사회에서 대입시험은 중요하고, 그만큼 부담스러운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대입. 인생의 첫 고비에서 승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기에 더 초조할 것이다.
나 역시 대입하나로 인생이 갈릴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시험 잘쳐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가 아니라,
실수하지 말고 준비한만큼, 건강히 준비하라고 말할 줄 아는 엄마가 되자.
시험 점수에 연연하는 엄마보다 차분함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엄마가 아이를 빛나게 한다.
성적표를 받아올 때 몇 등을 했느냐 보다, 지난 번 보다 얼마나 잘했는지 아이의 노력에 더 중점을 두고 칭찬해주는 저자의 태도는 미취학아동의 부모인 내게도 가슴에 새겨놓을만하다.



공감하고 감탄하는 가운데 책은 대체로 쉽게쉽게 읽혀진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이기 위해 밥과 반찬을 쟁반에 담아 엘리베이터에서도 먹여주었다는 것이나, 통금시간을 지키느라 과회식과 직장의 워크샵까지 따라가는 것을 불사하며 집에서 재웠다는 것 등의 몇몇 에피소드는 나에겐 극성스럽단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시간이면 '항상' 집에서 간식을 만들어 기다리고,
도시락마다 메모를 써서 도시락 편지를 나누는 정성도
감탄스럽긴 했지만 정작 내가 따라한다면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지키면서
엄마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던 그 마음만은 정말 본받고 싶다.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 노력하다보면
아이들도 어느샌가 반듯하게 잘 커주리라 믿게된다.

자녀와 함께 했던 엄마표 맞춤 서포트에 푹 빠져 읽었던 책이다.
성공했던, 그리고 자랑할만한 에피소드 외에도
자녀를 키우며 고민했던 것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느꼈던 점들을 가감없이 내보이는 모습은 많은 문제에 부딪히고 오류를 수정하며 살아내는 우리네 인생을 보는 듯 사실성이 느껴져서 더 와닿았다.
아직 느껴보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 미리 생각해볼 수 있고,
육아와 교육의 방법에 대해 촉박하고 급하게만 생각하는 젊은 부모들에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가히 부모 지침서가 될 만하다.

나도 저자처럼, 결과보다 과정에 더 치중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의 사랑'이라는 중심을 잘 잡아야겠지.
눈높이를 맞춘 긍정적인 소통과 기다림으로
내 아이에게도 변치 않는 엄마의 사랑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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