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열린책들 세계문학 289
에밀리 브론테 지음, 전승희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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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고전. 사실 이 책을 읽느라 꽤나 품이 들었다. 원래 이렇게 길었나? 그리고 이렇게 재미있었나?

고전은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읽은 적이 없는 책이라고도 한다. <폭풍의 언덕>은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 위 저택을 배경으로,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좋아하는데, 캐서린이 다른 남자랑 결혼하게 되고, 히스클리프의 집착적인 사랑으로 캐서린이 저택의 귀신이 되어 떠도는 이야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간단 명료하지 않은가? 옛날엔 이 정도로 책을 읽었음.)



고전은 정말이지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매료될 포인트가 너무나 많다.

v 몇 줄로 스포일러를 할 수 없다. 줄거리를 다 찾아보고 읽어도 읽는 재미가 가득해야 고전이다.

v 읽으면서 내내 - 아, 너무 재미있어! 도대체 어떻게 될까? 무슨 생각일까? 너무 궁금해! 새로운 책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이름만 들어도 줄거리가 생각날 듯한 고전?

v 우리의 매력 터지는 캐서린 언쇼, 캐시 - 이 사랑 많고, 열정적이고, 활기차고, 예쁘기까지 한 아가씨.

v 히스클리프, 묘비에 정확한 나이도 성도 기입할 수 없는 악마 같은 복수의 화신이자 집념의 사나이.

v (그리고, 나머지 희생양들... ㅎㅎㅎ) *힌들리 언쇼도 나름 강력하고, 어리석은 남매 *에드거 린턴과 *이저벨라 린턴도 할 이야기가 산더미지만, 희생양 타이틀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고딕소설적인 요소✨

폭풍의 언덕은 고딕 소설의 특징을 약간 포함한다. 고딕소설의 전성기 살짝 지나 그 영향력이 남은 시기의 소설기도 하고, 어두운 분위기와 배경, 극단적인 감정과 초자연적인 요소와 같은 고딕 소설의 요소가 있다. 한때 고딕 소설의 요소들을 좋아하는지 확인해보려고 여러 고딕 소설을 읽어본 적도 있지만, <폭풍의 언덕> 정도의 완성도가 있어야 고딕 소설의 요소가 재미있게 느껴진다. 폭풍의 언덕은 심리적 깊이나 복잡한 서사구조, 사회적 비판도 담고 있는 명백히 완성도 높은 소설이다. 즉, 폭풍의 언덕을 두고 고딕 소설을 논하는 건 고전에서 장르적 요소가 좋다고 장르 소설을 다 좋아할 수 없는 이치와 같겠지만,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으면서 이런 독창적인 시각과 문체, 요소들은 어렵지 않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한다.

✨다시 읽기 포인트 ✨

이번에 특히 재미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유모이자 하녀 엘런 딘을 비판적으로 읽어보았기 때문이다.

엘런은 빌런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는데(빌런은 아니다), 자기 고집과 소신대로 행동하다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일을 키우면서도 전하지 말아야 할 것을 냉큼 전하기도 하며 드라마적 요소를 제대로 담당해준다. 그러면서도 모든 이를 끝까지 살펴봐주며, 이야기를 전하는 진정한 화자이자 중재자, 갈등 촉발자, 거침없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편견도 가진 입체적인 인물이다. (엘런에 비해 조지프나 질라는 얼마나 무책임하고 단순한지.)

이런 절대적인 화자인 엘런과 거리감을 두며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를 파악해 보고 싶었다. 히스클리프는 과연 악마 같은 영혼의 소유자인지, 만약에 엘런이 헤어턴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다르게 끝맺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외에도, 어린 캐시의 어줍잖은 동정심과 허약한 어린 린턴의 가스라이팅을 분석해보고, 히스클리프의 복수의 결과에 대해서 곱씹는 것도 재미있었다. 히스클리프가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마지막 히스클리프의 모습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물론 고딕적인 요소라 재미는 있지만) 아쉽기도 했다.



✨✨✨

틈틈이 전투적으로 읽으면서 고단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조금도 건너뛸 마음이 들지 않았고, 읽는 내내 제대로 읽어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언제든지 읽을 수 있는 게 또 고전이지만, 그래서 자꾸 미루지만, 좋은 기회에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p. 530

온 세상이,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했고 나는 그녀 를 잃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을 죄다 모아 놓은 끔 찍한 전시장이란 말야!


온 세상이,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했고 나는 그녀 를 잃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을 죄다 모아 놓은 끔 찍한 전시장이란 말야! - 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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