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양장본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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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희망의 사유가 담긴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 읽을 때 마다 힘들었다. 아주 조금만 읽어도 강렬했다. 어느 날은 손이 덜덜 떨렸고, 문득 울음이 터졌다. 가슴이 저릿하다 화가나고 슬퍼서, 아니면 영문을 모른 채 눈물을 흘릴 책이다.

실재하는 지옥

사실 ‘슬픔과 희망의 사유’라는 평이한 수식어는 이 책에 어울리지 않다. 영혼을 파괴하는 혐오스러운 범죄 때문에 분노하게 되고, 읽기조차 힘들게 느껴지는 실재하는 지옥을 배경으로, 기저의 무관심, 역사적 망각, 폄하, 인종주의, 전쟁, 약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폐해가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제목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는 어떤 글의 한 구절이었는데, 의외의 맥락에서 나온다. (📖87p) 누구의 슬픔을 어떻게 껴안은 건지 그 구절을 읽기 전엔 그토록 처절하게 와닿지 않았다. 나의 슬픔에 몸을 가눌 수 없지만, 그들의 슬픔을 알기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그들의 행동을 나의 고통으로 껴안는 건 절절히 비통하다.



다양한 현장의 처절한 고발

작가 이브 엔슬러가 여러 지면에 실었던 글은 다양한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편지, 일기, 독백, 시, 때로는 전형적이지 않은 생생한 글로 직접적이고 처절한 목소리를 가감없이 낸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의미 없는 존재로의 전락’(📖277p)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재했고,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어디에나 삶이 있고, 사랑이 있는데, 지금 누군가는 처절하게 망가지고 있다.

가정의 보호, 국가의 보호, 국제사회의 보호, 인간으로서의 보호를 상실한 다수의 사건은 인간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그 자체를 고민하게 한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

그렇다면 인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토록 강렬한 책을 읽고 그냥 덮고 잊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우선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목과 인식의 지경을 넓히는 말랑함이 아니라, 역사적 망각의 대가가 무엇인지, 이기심과 권력의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땅한 관심과 의무로서의 다정함을 지녀야 한다.

마지막 세포 하나까지 소진해 병적 폭력 현실과 증오를 끝내기 위해 사력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173p). 그렇게 열정적으로 자신을 소모할 수는 없다면, 마지막 글에 작가의 또다른 제안이 있다. 작가 이브 엔슬러는 스스로 이름을 버리고 “V”가 되었다. “V”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인간적이다. 누구나 문화와 사회를 떠나서, 다정함을 입은 “V” 종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옥을 보고 v종족이 되는 것은 판타지로의 도피일까? 도피라기 보다는 너무나 큰 간극을 메울 유일한 처방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기대보다 훨씬 강렬하고 충격적이었던 책.




*신청도서/출판사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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