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일지 열린책들 세계문학 285
다니엘 디포 지음, 서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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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1971년)의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대니얼 디포의 또 다른 고전 <전염병 일지>(1722년)

익명의 런던 시민이 남긴 기록처럼 보이는 색다른 책이었다.

공포의 재난상황

1664년 말부터 1665년의 런던 페스트는 7만-10만 명이 사망했했다. 페스트가 처음 유럽 전역을 휩쓴 것은 이보다 300여 년 전이었던 1347년(사망자 수 2500만)이었고, 그 사이에도 잉글랜드에서 여러 번의 페스트 상황이 있었다. 다시금 재현되는 극복하지 못한 전염병을 마주한 사람들의 공포, <전염병 일지>의 화자는 이런 상황에서 훗날 다른 시기에 또 있을지 전염병 상황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하며 여러 상황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발효된 행동지침, 지역별 사망자 수 등을 제시한다. 소설로 읽히기보다는 르포르타주와 같다. 이 책의 지향점에 몰입하다 보면 무척이나 긴박하게 읽히고, 시대를 뛰어넘는 유의미한 책이기도 하다.

COVID19도 치료제와 백신이 없고, 감염자 수와 사망자가 증가하기만 할 때 모두 공포를 느꼈지만, 여러 번의 재앙이 기록된 페스트의 재유행도 치료법이 여전히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마주했을 때 공포가 심했을 것 같다. 더구나 살이 검게 되고, 종기가 부풀어 오르고, 터져서 피를 흘리고, 억지로 종기를 건드리는 고통스러운 치료 등은 처참한 광경이었다.



시대적 차이, 보편적인 신앙

유사한 공포에 공감하면서도, 300년도 더 된 이야기는 당연히 시대적인 격차가 있었다. 더불어 그 당시 영국의 신앙도 다른 요소였다. 사람들은 공포 속에서 무서운 기세로 감염되고, 너무 금방 죽었다. 그리고 극한의 상황에서의 교회는 자치 행정의 역할과 고유한 종교적 역할을 위태로이 수행하지만, 맹신과 미신 또는 광기로도 변질되었다. 더구나 의학적인 지식도 합의도 완전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분별없고 경솔한 행동이 더 혼란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또한 주택 봉쇄, 도시 간의 통행금지, 나라 간의 무역 중지가 불완전하게 추진되었고, 미흡한 방법으로 인해 많은 병폐가 있었기에, 오히려 원론적인 고찰을 해볼 수 있었다. 격리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떻게 실시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부당하게 발생하는 문제들은 무엇인지가 논의되었으며, 특히 주택 봉쇄의 불합리함에 대해서는 다각도의 비판이 이어졌다.

정보 공유가 너무도 활발한 현대와는 달리, 개개인의 판단과 가구 또는 지역별 대처 방안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내는 원칙과 그 과정에서 잃지 말아야 할 연민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점이 이 책의 최대 강점이 아닐까 싶다.

잃지 말아야 할 연민

몰입해서 읽다 보니 문득 페스트도 COVID19도 떠나서 읽히기도 했다. 사스와 메르스도 있었다시피, 앞으로 또 다른 감염병이 발생한다면, 감염 원인도 치료법도 모른 채, 무서운 속도로 사람들이 거리에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면 과 같은 상상으로 이어지는 미래로 연결되는 고전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전염병 일지>의 화자는 감정을 배제하고, 종교적 색채도 최대한 줄인 채, 양심과 연민의 마음, 감사와 겸손을 미덕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자세로 위기에 대처하고 연대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담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순경​ 우리도 살아야 하니 어쩔 수가 없지 않소.

뭐라! 이런 재난의 시기에 연민을 거둔다는 거요?

189p, 전염병 일지

런던을 떠나 인근 지역을 떠난 한 무리의 사람들에 대한 내용은 어떤 방랑기보다 흥미진진했다. 한 자루의 장총만을 가지고 상당수의 병력을 과시해 원하는 바를 얻기도 하고, 피난지의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불편을 자처하고 신의를 얻어내는 과정은 독특하고도 감명 깊었다.


처음에 읽기 시작했을 때는 적잖이 당황스러운 책이었지만, 의외로 빠짐없이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감정적인 요소도 긴 드라마도 없기에 과도한 감정 소모도 없이 읽을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뭐라! 이런 재난의 시기에 연민을 거둔다는 거요?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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