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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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다. 불친절하고 모호하고, 문득 불쾌한 것도 같다(사실 곰곰 생각해 보면 불쾌한 건 없었다).

미묘한 상황, 독특한 심리를 그려내는 오묘한 이야기들이었다.

최고의 단편인데 - 나에게만 고역일까?

읽기가 너무 힘들어서 띠지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나는 언제나 트레버를 읽고 또 읽는다."를 보며, 그녀도 모호하고 불편한 부분이 있어서 읽고 또 읽나 보다고 곡해하고 싶었다. 단편선의 모든 단편들이 다 나랑 안 맞는 건 아닐 거라고, 여러 날 여러 번 펼쳐서 꿋꿋이 다 읽었는데,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는 한편을 꼽을까 말까 한다. 그나마도 의문이 남는다. 혹시 말년에 쓴 <마지막 이야기들>의 단편만 이렇게 모호한 걸까 싶어서 다른 단편집을 읽어보기도 했는데, 비슷하게 오묘했다.

왜 이렇게 오묘할까, 고민하며 읽고 또 읽었다. 서술 시점은 장면을 묘사하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을 넘나들며 입체적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사건은 다소 예상치 못한 맥락으로 전개되고, 끝에는 반전이 있기도, 상황이 종료되고 사건이 해결되기도 하는데 대부분이 석연치 않게 마무리된다. 강렬한 이야기들이지만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삶의 단면을 본 듯 명확히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많았다.



이상한 여인들?

처음엔 남성 작가임에도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는 게 의아하게 느껴졌다.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의 천재 제자로 인해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미스 나이팅게일, '다리아 카페에서' 우정과 사랑의 말로를 보여준 애니타와 클레어, '크레이프소스 부인', '모르는 여자',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의 올리비아와 비니콤 부인, '여자들'에서 나오는 묘령의 두 여자와 서실리아의 심리는 알듯 말듯 하다.

왜 이리 트레버의 소설 속 여성들은 이다지도 이상할까도 생각했지만, 모호한 역할이 꼭 여성에 국한되지는 않았고 명확히 이해할 수 없는 남성 인물들도 다수 등장한다. 심지어 다수의 단편에서 주인공들의 성별을 바꾸어도 윌리엄 트레버의 이야기는 생명력을 갖는다. 처음에 내가 여성에 주목했던 건 그동안 소설을 읽으면서 여성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초월 또는 거리 두기

윌리엄 트레버는 일상적인 풍경 속에 숨겨진 개개인의 사연과 다층적인 심리를 그리기 위해서 인물과도,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관련해서도 거리 두기를 한 게 아닐까 싶다. 등장인물 다수의 사연을 드러내고, 과거의 맥락을 짚어내면서도 의미를 정리하거나 결과를 해명하지 않는다. 진실한 의도가 숨겨진 대화, 종종 끊겨있는 인과관계를 그대로 두기도 한다.

바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다시 읽게 하고, 아리송하고 이상하다가도 그가 보여주는 인상과 여운을 음미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초월 내지는 거리 두기를 통해서 시대, 성별, 나이, 신분 내지는 직업을 초월한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예상외로 힘들었지만 - 느린 호흡으로 읽을 때 새로운 묘미가 살아나는 단편을 읽을 수 있었던 <마지막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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