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서 온 언어
미즈바야시 아키라 지음, 윤정임 옮김 / 1984Books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종일관 차분하고 섬세한 필체의 에세이집 <다른 곳에서 온 언어>

19세 때 만난 새로운 언어로 존재를 이전하고 확고하게 구축해가는 과정이 담겨있었다.

언어에 관한 많고 깊은 이야기

이 책은 읽을수록 읽기에 만만한 책이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온 언어>는 저자 미즈바야시 아키라(1951년~) - 작가이자 번역가, 교수님 -의 도쿄에서 프랑스어를 만나게 된 과정, 그리고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언어를 공부하는 과정, 그리고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는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흐름은 간단하고, 주제도 온통 언어에 대한 이야기지만, 분량은 결코 적지 않다. 언어와 관련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간중간 저자가 깊이 감명받은 작가, 철학가의 책의 발췌와 당시의 메모를 포함하기도 하며, 그는 열정적으로 자신이 언어를 탐구하게 된 배경을 밝힌다.

더구나, <다른 곳에서 온 언어>는 프랑스어로 쓰여서 작가연합상 및 아시아 문학상 등의 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한데, 한국어 번역으로도 그의 문체가 얼마나 아름답고 정교한 지, 몇 번이고 곱씹게 되는 문장들이 많았다. 언어에 관한 이렇게나 많고 깊은 이야기가 가능하게 된 원동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운명적인 만남 그 후

그는 대입을 한 해 앞둔 고등학생 때 이 '다른 곳에서 온 언어'인 프랑스어에 매료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새로운 언어에 온전히 자신을 내던지기에 적절한 시기는 아니다. 언어를 쉽게 숙달할 수 있는 이른 시점도 아니며, 무언가를 선택해서 매진하려면 학생 신분이었던 본인의 의지 외에도 주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선택에 확신하며, 스스로 철저히 내던질 수 있었을까? 게다가 그의 그런 노력을 지지해 주는 그의 아버지는 어떤 성정의 사람이었을까? 그의 형의 음악에서의 열정을 지지해 주고, 나아가 둘째인 그의 언어 공부를 지지해 주는 아버지의 태도는 나에게 무엇보다도 신비롭고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그 신비롭고 불가능한 지지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딱 맞는 대상을 찾아 무궁 무진한 열정을 쏟아부었고, 마침내 운명의 벽을 뛰어넘는 여러 번의 도약을 하게 된다. 그가 프랑스어를 처음 만난 것은 분명히 '운명적인 만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운명적인 만남 이후의 모든 과정이 더욱 불가해하고 경이로웠다.

음악과 언어

그는 음악과 프랑스어를 종종 교차시킨다. 프랑스어가 음성학적으로 아름다운 언어인 것도 그렇지만, 그 발음에 매료되는 것을 넘어서, 피가로의 결혼 같은 클래식 범주의 음악은 종종 그를 돕는다. 문득 음악과 언어는 끊임없는 숙달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음악을 듣고 또 들으며 감탄하듯이, 프랑스어를 계속해서 발견하고 갈고닦는다. 음악을 직접 연주하지 않아도 음악가의 정확한 연주와 기량에 감동하듯이, 언어의 깊고 정확한 사용에 감탄할 수 있다. 그의 마르지 않는 프랑스어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그래서 음악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의외로 힘들게 읽었지만, 힘들게 읽은 만큼 깊은 감동을 얻을 수 있었던 책이다.

좋은 책의 한 문단에서 수많은 것을 깨닫는 철저함과 깊이를 알게 된 만큼, 더 적게 읽고 더 깊이 생각하고 싶다는 열망이 어느 때보다 강렬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