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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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관통하는 본격 대하소설 3부작의 대미, <우리 슬픔의 거울>

전작의 등장인물이 재 등장하며, 연속성이 부여된 새로운 이야기로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악마 같은 플롯

몰입해서 소설 속으로 도피하고 싶어 하는 독자로서, '악마 같은 플롯' 만큼 끌리는 수식어도 없다. 1장과 2장만 읽어도, 이 책의 '악마 같은 플롯'에 빠져버리게 된다. 결정적인 순간에 한 장이 마무리되고, 다음 장에 또 다른 인물 이야기가 나오며, 또 결정적인 순간에 장이 넘어간다. 끊는 맛과 교차되는 이야기로 이 소설은 정신없이 독자를 끌어들인다.

차례를 보면, 1940년 4월 6일, 2달 후인 1940년 6월 6일, 일주일 후인 1940년 6월 13일과 에필로그, 감사의 말로 구성되어 있다. 1940년 6월 14일에 파리 함락, 1940년 6월 22일에 프랑스 항복 선언이 있으므로, 프랑스 파리가 배경인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의 프랑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에필로그는 1940년 7월 27일의 이야기도, 1941년의 이야기도, 1961년의 이야기도 나오고, 감사의 말에 실화인 부분과 참조한 부분을 열거하면서, 이 소설은 정말이지 완벽히 아름답게 갈무리된다.



전쟁 속 개인

'옷을 벗어 달라는 제안을 받은 교사'라는 종잡을 수 없는 사적인 이야기는 이미 죽은 엄마와, 수상한 명함, 오만한 귀부인, 모든 걸 방관하며 달관한 귀부인의 딸로 흘러간다. 예상치 못하게 발발한 전쟁은 뒷거래를 즐기는 군인, 쓸데없이 우직한 수학교사 출신의 징집병, 돈 가방을 든 헌병을 끌어드리며, 변호사, 참모부, 신부로 탈바꿈하는 데지레라는 가공할 인물의 무대가 되어준다. 애초에 이상한 제안을 받은 교사는 지금 전쟁이 문제가 아니다. 폭격 소리와 순식간에 시체가 뒹구는 한가운데서 뇌가 액체가 되어버린 듯한 경험을 하고, 그토록 원하던 갓난아이를 셋이나 수레에 싣고 순식간에 걸인이 되지만, 전쟁은 그녀를 비껴가는 것 같다.

지나간 과거가 아닌 현재도 계속 중인 전쟁, 전쟁 속 개인들의 이야기는 의외로 깊이 들어갈수록 전쟁과 관계가 없는 듯한 게 신기하다. 전쟁은 어그러뜨리고, 망가뜨리고, 뒤틀리게 하고 파괴하지만, 전쟁 전에 이미 어그러지고 망가지고 뒤틀리고 파괴된 것들이 있다. 전쟁 직전에 많은 것을 잃고 사라진 삶과, 사라진 삶의 무게를 지고 전쟁을 치르는 삶, 그리고 그 이후의 삶도 이어진다. '이번에도 상황이 모든 이를 화해시켜 주었다'(611p, 에필로그)는 담담하면서 아이러니하다. 전쟁도 개인이 만들어낸다는 것, 그리고 많은 이들의 삶은 이미 충분히 슬프고 가혹하다는 것을 정신없이 몰입도를 높이는 소설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다.



슬픔 - 고통의 거울

무엇이 거울일지 계속 생각하며 읽었다. 아무래도 전쟁이 거울인 것 같지만, 슬픔은 여기저기에 있었다. 옮긴이의 말에서 원제가 '우리 고통들의 거울(Miroir de nos peines)'라는 걸 알았지만, 왜 고통이 슬픔으로 바뀌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아서 좀 아쉽다. 고통과 슬픔, 비슷한 듯 다르다. 하지만 고통에 가까운 슬픔, 슬픈 많은 사건들 속에서 유독 고통스러운 것들을 찾게 된다. 그 고통을 비추는 거울이 비극의 핵심이 아닐까?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먼저 나오고, 결국은 울면서 이해하게 되고, 놀랍게 갈무리되고, 감동과 놀라움과 충격을 연쇄적으로 받을 수 있는 정말이지 사랑해 마지않을 소설이었다.

21세기의 발자크, 피에르 르메트르의 신작을 읽어볼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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