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출간된 지 10년 정도 된 책으로, 어마어마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를 얻은 책이다. 스티븐 핑커는 하버드 대학교수이자 심리학자로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이후에 <지금 다시 계몽>도 대중의 관심을 받았고, 10권 이상의 책의 공저자로 저술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신뢰할 만한, 세계적인 석학인데, 그의 책에 대한 비판은 무엇을 얼마나 공격하고 있는 걸까?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는 역사학, 고고학, 동아시아학 등 분야의 학자들이 '나의 역할'(62p)을 하려고 하며, 관련 분야에 진흙투성이 부츠를 신고 식탁 위에 발을 뻗어 올려놓는 예의 없는 행위(280p)를 비판한다. 공저자 17인은 어조는 조금씩 다른데, 다소 격앙된 어조도 있지만, 한결같이 신사적이다. 스티븐 핑커의 책은 '복잡성의 정수를 뽑아내고 자신의 전문 분야 밖의 것들에 관해 써야 한다’는 점에서 쓰기보다 비판하기가 훨씬 더 쉽다(293p)는 것을 인정하는 비판은 존중이 선행되어 있다. 하지만, 존중 후, 각 분야의 비판은 날카롭고 가차없다.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반박의 수위는 아주 높다. 읽다 보면 스티븐 핑커의 명성은 산산히 무너진다. 각 장의 저자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스티븐 핑커의 논리가 간과한 부분을 조망하며, 스티븐 핑커가 낙관주의와 서구 중심적 관점으로, 과거 중에 '쓸모 있는 과거(usable past)'(232p)만 취사선택하고 과장된 서사를 펼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티븐 핑커의 주장 전부는 유효한 통계 없이 허물어지며(247p), 과거의 제대로된 증거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가 무시하고 부인한 전 세계인의 기억(392p)으로 폐기되어야 마땅하다는 점을 피력한다.
스티븐 핑커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진단으로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 언급되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가용성 휴리스틱: 머릿속에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사례들에 의존해 판단을 내리는 것). 역사서가 알고 보면 서구 중심적인 편협한 관점으로 과거와 현재의 짜깁기한 증거로 채운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반박은 치명적이다. 악한 천사는 분명한 어조로 스티븐 핑커가 가리키는 방향 자체가 대중이 좋아 할 만한 과장된 서사일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All or Nothing?
그렇다면,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안 보면 그만이지, 뭐가 문제일까? 이미 파기된 책일까? 하지만 막상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통쾌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역사는 발전하고 있다(내지는 폭력은 감소하고 있다)'라는 메시지는 빈번히 변주된다. 세계를 보는 관점은 다소 무지하거나, 조금 낙관적이기 쉽고, 언제나 정확하고 객관적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일반 독자로서 균형을 잡으려면 하나의 주장에 호도되지 말아야 하며, 적어도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와 검증이 필요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같은 책을 읽으면서 예민한 사고를 하며, 비약과 미심쩍은 부분을 간파하며 독서하고 싶다.
반박서로서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는 모든 장이 치열하다. 쉽고 통쾌하기 보다 진중한 논리와 비장함이 있다. 특히, 각 장의 결론은 비판의 내용이 집약되어 있으면서, 건설적인 질문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에, 감탄하며 읽었다. 모든 내용은 깊이 생각하고 싶었고, 폭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믿음은 위험하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폭력이 감소한 진일보한 사회에 쉽게 호응하는 것은 폭력을 체험한 동시대인의 경험을 무시 또는 간과하며, 자각도 방비도 할 수 없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