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3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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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3부 중간까지만 읽어도 참 좋았을 걸 그랬나? 멋진 소설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이야기는 3부 끝에서, 에필로그에서 새로운 문제를 마구 던져주며 <속죄>를 곱씹게 했다.

퍼즐 같은 전개

1부는 열네 개의 챕터로 시점이 모두 동일하지 않다. 주요인물들의 시점으로 그들의 심리 깊숙이 들어가기도 하고,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사건이 묘사되기도 한다. 배경과 심리 묘사가 세밀하며, 여러 관점의 서술이 퍼즐을 맞추듯 맞아들어간다. 13살의 브라이어니, 브라이어니와 나이 차이가 있는 대학생 언니 세실리아, 세실리아와 같은 나이로 이들 자매와 자라고, 이들 가문의 후원을 받아 교육을 받은 로빈, 그리고 자매의 엄마인 에밀리의 관점은 각기 다르게 와닿는다.

방학을 맞아 에밀리와 브라우니만 있던 저택에 가족들이 모이고 큰 오빠의 친구, 이모와 이모부의 이혼으로 친척 언니와 동생까지 모인 상황, 셰익스피어 같은 희곡 작가가 되려는 브라이어니는 갓 완성된 각본으로 가족 공연을 하려고 한다. 연극 연습에 달뜬 13살 아이의 부산스러움과 저녁식사 준비에 활기찬 저택은 사소한 몇개의 해프닝이 벌어진다. 해프닝이라고 할 수 없는, 경찰이 출두하고 범인이 잡히는 하나의 사건을 제외하면, 산발적인 에피소드가 있는 소란한 날 저녁이었다.

여러 인물의 깊은 심리, 여름날의 찌는 듯한 더위와 활기, 모두에게 버거운 일상의 소용돌이에 푹 빠져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듯한 1부, 그 끝에 사건이 터지고, 갑자기 2부는 전쟁 한가운데에서 시작한다.

전쟁 vs. 속죄

내가 <속죄>의 영화 <어톤먼트>에 기억이 희미한 건 아마 전쟁신 때문인 것 같다. 전쟁이라면 치를 떨고 싫었다. 전쟁영화는 말할 것도 없이 최악의 영화. 도대체 어디서부터 슬퍼해서 뭘 기뻐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쟁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건이고, 모든 것을 전쟁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개개인의 인생이 있다. 전쟁 속으로 개인이 속죄할 일을 던져버릴 수 있을까?

됭케르크 철수작전의 행렬 속, 전쟁 전 일을 떠올리며,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되새기는 전개는 모든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아무 죄 없는 주민들이 미사일을 맞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가운데 용서와 복수, 기다림과 희망 사이의 외줄 타기는 더없이 위태로웠다. 3부는 일종의 속죄랍시고 간호사가 되기로 한 것 같은 인상(307p)의 간호사의 시점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2부에 비해서 3부는 다소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불안을 잊기 위한 노동, 복종을 통한 자유, 자신을 혹사시키는 와중에 느끼는 해방감, 그리고 평행세계?


 


 


카페에서 속죄 중 / 집에서 속죄 중 / 갑자기 속죄 중 / 빵 사서 속죄 중? ~

하나의 소설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

3부를 끝까지 읽고, 또다시 달라지는 판도를 따라잡으며 에필로그를 읽다 보면 이 소설이 과연 하나의 소설인지,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속죄의 베일이 몇 번씩 벗겨지는지 차라리 참담한 심정이 된다. 이 책이 왜 걸작인지, 왜 마스터피스인지, 왜 소설이 최고인지를 실감한다. 몇 번씩 바뀌는 시점에 몰입해가며 극적이고 효율적이고, 그래서 획기적이며 아름다운 서술에 넋을 읽고 읽다가, 소설 그 자체에 매료되는 이야기이다.



빠르게 읽었는데, 한동안 다른 이야기를 읽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다시 처음부터, 또 처음부터 <속죄>를 몇 번이고 읽으며 매료되고 또 매료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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