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현대지성 클래식 4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우섭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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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쓴 죽음과 관련된 단편 세 편이 수록된 현대지성 클래식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30세 집필한 <세 죽음>, 58세에 발표한 <이반 일리치의 죽음>, 67세에 출판된 <주인과 일꾼> - 세 작품에는 톨스토이의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이 잘 드러나 있고, 선명하고 강렬한 이야기로 죽음 앞에서 명백해지는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톨스토이 - 죽음에 대한 세 편의 이야기

책의 구성은 톨스토이의 집필 순서와 달리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주인과 일꾼> - <세 죽음>의 순서이다. 책의 구성대로 읽고서 톨스토이가 죽음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생각하다 보면, 조금은 헷갈렸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제일 이야기 적으로도 재미있고 보편적으로 와닿았고, <주인과 일꾼>은 강렬하고 동화적이고, <세 죽음>은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확실히, 책의 구성대로 강렬함이 달랐다.

굳이 또 집필 순서대로 정리해 보면 <세 죽음>의 질문의 연장선에 <이반 일리치>에서의 통찰이 있고, <주인과 일꾼>의 과감하고 대담한 전개는 톨스토이가 죽음을 숙고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대문호답게, 그리고 깊은 지혜와 깨달음을 담아내는 작가답게 각각의 이야기는 힘이 있었고, 유사하면서도 약간씩 그 지점이 다르게 느껴졌다.

이반 일리치의 삶의 한 가운데에 있는 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를 이전에 읽었을 때는, 이반 일리치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당연하면서도 어리석게 느껴졌고, 죽음을 앞에 둔 심경 변화의 묘사가 인상 깊었다.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는 이반 일리치에게 훨씬 더 감정이입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내의 모습과 그 아내를 증오하는 이반 일리치를 고통스러우리만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내가 나이가 들었고, 이반 일리치가 남편 같기도, 또 나 같기도 하다는 부인할 수 없는 공통점을 깨달았고, 부부간의 상호 몰이해가 얼마나 자연스러운 과정인지조차 알아버렸다는 반증이기에, 여러 부분에서 섬뜩하기도, 속상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 모든 걸 이토록 잘 알면서도 톨스토이는 왜 그런 불화 속에서 살았는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되었고, 그만큼 현실과 이상은 괴리될 수밖에 없는 건지 절망감도 들었다.

그렇게 자기를 이해하고 불쌍히 여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그는 홀로 파멸의 문턱에서 살아가야 했다.

50p,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반 일리치의 삶 한가운데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깨달음은 외롭고 쓸쓸하다.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막막하기도 하다.



톨스토이가 전하는 지혜

세 편의 소설엔 삶과 죽음에 대한 분명한 지혜가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는 게라심이, <주인과 일꾼>에는 일꾼 니키타가, <세 죽음>에서도 마부와 나무(...)가 있다. 예전엔 게라심이 불쌍하게만 느껴졌는데, 이번엔 그가 존경스러웠고, 그에게서 깨달음을 얻었는데, 같은 맥락에서 니키타에게, 마부에게, 나무에게서도 배우고 깨달을 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 기해서 나의 삶을 조정하고, 더 가치 있는 태도로 삶을 대하는 것은 매일 수많은 선택을 바꿔야 하는 일이다. 조금씩,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향해 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죽음 앞에 섰을 때 내 삶에 보다 만족하며 의연 수 있을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다시 읽으며 훨씬 더 많이 공감하고 깨달은 것처럼,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다시 한번 읽으며 또 달리 느껴보고 싶은 책이다.






그렇게 자기를 이해하고 불쌍히 여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그는 홀로 파멸의 문턱에서 살아가야 했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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