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마지막 한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2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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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끝에 무어가 마지막 한숨을 딱 한 번 내쉬는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오산! '한숨'은 수십 번 변주되면서 파란만장하고 기상천외한 인도를 삼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보여주는 완전히 살만 루슈디스러운, 믿거나 말거나 진실한 소설이었다.



인도를 관통하는 가족사

맨 첫 장에 가계도가 있는 책은, 작정하고 봐야 한다. 이 책은 참 여백도 없다. 왜 따옴표가 줄바꿈도 없이 줄 안에 있는 건지, 해설 분량 전까지 674페이지인데, 꽉꽉 들어찬 글자는 은근한 압박이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이 책은 참 쉽다. <악마의 시>는 혼란스러운 상황과 천사와 악마의 비유에 외줄을 타는 느낌이지만, <무어의 마지막 한숨>은 한 명의 화자가 자신의 가족사를 가지런히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맥락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다만 인도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영국인을 전지전능하고 대자대비하다고 믿는(41p) 시절에서부터, 평등사상과 분리독립, 급변하는 인도, 봄베이 연쇄 폭발 그 이후까지 가족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후추 무역을 하는 이 집안의 흥망성쇠는 이런 역사적 굴곡에 따라 순응할 만도 한데, 이들은 다르다. 예술로 승화시킨 이 가족의 천재 화가는 틈만 나면 가족의 치부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그려내고 신을 모독하고자 춤을 추며 유명세를 얻는다. 여러 혈통과 종교가 등장하고, 많은 이들이 등장하며 얽히고설킨다. 대단히 모성적인 나라인 인도(216p)이기에, 집안의 여자들의 화끈한 캐릭터는 이야기를 주도한다. 외할머니, 할머니, 어머니도 상상 초월, 그다음에 등장하는 여자도 만만치 않다.

과연 정상일까?

우리 가족은 이런저런 고난을 많이 겪었다. 대체 이런 가족이 어디 있을까? 과연 정상일까? 인간은 다 그럴까?

67p

이야기는 늘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고, 상상 그 이상으로 재미있는데, 밤에 펼치면 새벽 세 시는 기본으로 넘겼다. 이만큼 파란만장한 가족도 없고, 이렇게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오는 걸 믿으라는 건지, 그게 좀 의문이지만, 대놓고 못 믿겠으면 믿지 말라는 데 믿을 수밖에.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인도의 한 가족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복잡스럽고 잡스럽고, 신성하고 신성모독적인 문명의 한 조각을 맛볼 수 있다. 어찌나 편협하고 관용적인지, 모질고 사랑이 넘치는지, 읽다 보면 인도의 매력은 참 끝도 없다.

가족사를 그린 몇몇 장편 소설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개개인의 가정사는 의외로 항상 기상천외하다. 그러고 보면 개성의 내로라하는 상인인 외할아버지는 금을 숨겨오고, 동향 개성에 많은 땅을 가지고 과수원을 하신 외할머니는 비단을 지고 내려와서 일가를 꾸린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놓을 걸 그랬다. '정상일까?', '인간은 다 그럴까?'라는 질문의 답은 바로 다음 쪽에 있다.

인간은 원래 그렇다. 늘 그렇진 않지만 잠재적 가능성은 있다. 이 또한 우리의 참모습이다.

68p




역시나 해박한 마술적인 글

그런데, 문득, 살만 루슈디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하신 김진준 번역가님은 살만 루슈디의 두 배 이상으로 박학다식하지 않으실까? 두 가지 언어로 이 모든 걸 아신다는 건데, 그럼 얼마나 똑똑하신 거지? 역사를 관통하면서 찰떡같은 찰진 비유와 해박한 지식이 줄줄이 꿰어 나오는 글은 익숙해지면 가독성은 물론이고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은둔생활 6년 만에 세상에 선보인 소설 <무어의 마지막 한숨>은 인도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느껴진다. 물론 인도도 노발대발하며, 인도가 이렇게 정신없지 않다고, 무슨 소리를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애정과 경외, 안타까움과 그리움, 끝없는 사랑이 분명히 있었다. 나도 그 사랑을 느끼며, 인도에 대한 이해가 조금 깊어졌다고 하고 싶다.





역시나 풍성했던 소설, 끝없이 빨려 들어가 울고 웃고, 사랑하게 되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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