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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1
페터 한트케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평점 :
정말이지 이 책 때문에 나의 읽기 일정은 엉망이 되었고, 책이고 뭐고- 혼란스러움이 차올랐고, 나의 읽기 능력을 의심하며 좌절했다. 어쨌든 다 읽었지만, 난 이 책을 읽은 걸까? 하지만 읽든 말든, 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람.
소설의 배경 '탁스함'은 도대체 어디일까, 잘츠부르크 근처라고 하는데, 찾아보고 싶었지만 막 읽기 시작할 때는 그냥 넘어갔었다. (하지만 이런 게으름은 아주 다행이었는데, 실재 존재하는 도시는 아니었다. 다만, 페터 한트케의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는 곳이라고 한다.) 탁스함이 어딘가 존재하는 곳이라 생각하며,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듯한 소설의 첫 머리를 읽는데, 그려질 듯 말 듯 한 설명과 갑자기 등장하는 '탁스함의 약사' 부분에서 길을 잃고, 소설 첫 머리를 한 다섯 번은 읽은 것 같다. 뭐라는 거지? 그래서 어떤 곳이고, 약사는 왜 갑자기? 여기서 나는 눈치를 챘어야 했다. 이 책은 사실 평범한 날, 보통의 제정신으로는 읽을 수 없는 책이다.
하지만, 어느 날 새벽 나는 이 책과 주파수가 딱 맞았고- 내리 두 장을 읽고 '탁스함의 약사'에게 푹 빠졌었다. 그리고, 또 다른 날 이어서 뒷부분을 읽으려고 했지만, 몇 날 며칠 동안 책만 펼치면 길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연거푸 했다. 그런 날은 화가 났고, 해설을 읽으며 심신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아. 정말 호락호락한 책이 아니었다. 어느 날 새벽, 그날은 참 잘 읽혔는데, 그렇게 딱 맞아들어가기가 참 어려운 책이다.
페터 한트케의 작품들은 짧아서, 몇 편을 읽어 보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짧은 산문과 짧은 중편의 소설은 순식간에 읽으며 매료될 수 있었다. 그리고 페터 한트케의 대표작인 <관객모독>은 몇 페이지 보다가, 그 악명을 만나본 것만으로 되었다며 덮었고, 몇 편은 들려오는 악명에 시도도 하지 않았다. 가장 공들여 읽은 이번 책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는 해설에서 인용하고 있는 악평(굳이 옮겨 오지는 않겠다.)을 읽고서 웃음을 터뜨리며 정말이지 이해 안 되는 부분들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려버려야 했지만, 읽는 맛이 없지 않았다.
이 책의 해설의 제목은 <일상적 존재 방식의 부정과 다른 사람 되기>인데, 페터 한트케의 일관된 주제의식은 <자아 탐색>, <정체성 추구>라고 한다. 도대체 일상적 존재방식을 부정하고 다른 사람이 되면서 어떻게 자아를 찾고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건지, 거기서부터 이 책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책인 걸 암시한다. 그런데 또 묘하게 읽고 있다 보면, 이러한 비일상적 존재야말로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나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묘한 탐험으로 정신을 데려다 놓고, 갑자기 후려치거나 마구 구타하는 식이다. 이 정도면 좋아해야 하는 걸까?
탁스함의 약사는 계속해서 버섯을 찾고 있다. 어엿한 약사면서 버섯으로 약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한번 먹어보겠다고, 곰팡이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는 귀향 후 최종적으로 버섯에 대한 책을 완성하려고 하고(148p), 심지어 그 책이 크게 화제가 될 것(161p)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버섯과 더불어 여러 상황에 대한 후각에 대한 묘사도 이어진다. 효능을 알 수 없는 버섯과, 후각적인 자극으로 소설의 환상적인 분위기는 가중된다.
먹어보기 전에는 맛도 효능도 모르는 이름 모를 버섯처럼, 읽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소설이다. 버섯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많이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작가가 버섯을 실제로 먹어본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에 대한 해설도 더 자세히 모든 문장을 해설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설가와 작가가 갑론을박하더라도 독자는 나름대로 느낄 수밖에 없다.
맛보고 알고 싶고 힘들지만 읽고 싶은 책이었다. 언제든 원할 때 이 책을 펼쳐서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기쁘다. 걷고 또 걷고, 환상적으로 존재하고 싶을 때마다 펼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