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자들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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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부분 약 200페이지 정도는 한자리에서 앉아서 읽었는데, 읽기를 너무 채근해 좀 어지러웠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자극이 계속되는 바람에 신경 쇠약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앞 부분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한 시간 좀 더 걸린 마지막 200페이지! 도저히 과속을 멈출 수가 없었다. 초집중+바들바들+제발+너무 재밌어!

 

효율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지난한 과정을 그리는 가장 화끈한 방법

존 그리샴의 필력은 놀랍도록 효율적이다. 모든 상황을 압축해서 보여주는데, 장황한 서술이나 감상적인 묘사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순식간에 살풍경한 교도소의 분위기나, 험악한 갱단의 범죄현장, 심지어 미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오그라드는 갑툭튀 로맨스 한 장면까지 완벽히 생생히 그려낸다. 몇 단어의 형용사나, 짧은 수식어구가 많은 역할을 한다. 뉘앙스는, 완벽한 범죄 수사물이다.

그런데 신나는 어조 때문에 과소평가될 수 있는 반전은, 이 이야기가 완벽히 지난한 과정을 담고 있다는데 있다. <수호자들>은 장기수 석방에 관한 내용이다. '수호자단'의 행동파 변호사인 주인공은 10년 이상, 또는 20년 이상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감옥에 갇혀있는 의뢰인을 맡는다. 주인공은 여러 주를 넘나드는 장거리 운전을 해가며, 6명 정도의 의뢰인을 면회하고, 기존의 증거를 갈아치울 새로운 증거를 수집한다. 겨우 구제 청원 준비를 마쳐 신청서를 제출하더라도, 판사와 검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몇 달씩 시간을 끈다. 숨 막힐 듯 자극적인 소설 밑에 흐르는 무고한 수감자들의 부당한 처지는 지독히도 고독해 보인다.

다수의 등장인물! 복잡하지만 깔끔한 관계

초반에는 한 장 한 장 공들여 읽었다. 주인공이 맡은 6개의 사건 중 비중 있게 다뤄지는 사건이 한 건이 아니기 때문에, 마인드 맵처럼 요상한 거미를 몇 마리 그리며, 스쳐 지나갈 법 한 인물들의 이름을 써넣었다. 부인, 두 번째 남편, 세 번째 남편, 보안관, 경찰관, 증인 1, 증인 2.. <수호자들>은 집요하기 때문에, 결코 한 명도 허투루 대하지 않았다. 몇 번은 써넣지 않은 이름을 찾아 앞으로 돌아갔다. 범죄가 일어난 주와 수감 중인 주가 다르고, 주인공은 중간에 의뢰인 후보자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어머니도 찾아뵌다.

작가 존 그리샴은 독자를 살뜰히 고려해 친구와 어머니에겐 맡고 있는 사건들을 요약해서 알려주기에, 의외로 내용을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았다. 물론 가닥을 잡고 마음 놓고 읽으려는 200페이지가 넘어갔을 때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놀래켜주는 묘기 같은 전개로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500페이지의 길어 보이는 소설, 흩어질 것 같은 주의력이 어느새 모아지고, 오리무중인 듯, 막힌 듯했던 사건들이 기어이 결말을 맞았을 때 감탄이 절로 나왔다. 깔끔하게, 그리고 수호자들2편이 나와도 놀랍지 않게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은 어우, 멋지다.



전에도 말했죠.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씌우는 건 식은 죽 먹기이지만 무죄를 밝혀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요.

128p

불가능에 가까운 밸런스로 48개 장에 여러 개의 사건들을 배열해 무고한 장기수의 분노와 좌절, <수호자들>의 사명의식과 숭고한 노력을 유쾌하고도 효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존 그리샴이 괜히 흥행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건, 또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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