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라는 인물은 지루할 틈이 없는, 전방위적으로 어리석고 가엾은 인물이다. 그의 가여운 운명은 당연히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도 지루하지 않다. 발자크의 아버지가 농부에서 부르주아(시민)으로 탈바꿈 한 과정, 어머니의 소시민적인 만행들, 그의 어린 시절의 황폐하고 불우했던 환경은 다른 인물이었으면 어쩌면 배경으로 충분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발자크에겐 이런 배경에 비중을 많이 둘 수는 없다. 결코 어머니를 떨쳐낼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를 몇 페이지 이상 조망하기에 그의 삶에서는 조망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의 결핍과 성격은 어린 시절에 형성되었더라도,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심하게 왜곡되고 부풀려졌다.
가족들을 경악시킨 첫사랑은 국경을 넘는, 당대와 후대의 전 세계 사람들을 망연자실하게 한 마지막 사랑의 작은 전조에 불과했고, 첫 번째 사업 실패는 그 뒤의 수많은 실패에 비하면 어린아이의 장난 수준이었다. 그는 분명 위대한 소설을 썼지만, 위대한 소설은 그가 쓴 졸작들에 비하면 몇 편 되지도 않았다. 그는 극장을 구하고 관중을 채우고, 표가 다 매진되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면서 희곡을 열정적으로 엉망으로 쓰고, 궁지에 몰려서야 마지못해 걸작을 썼다. 글 쓰는 일에 국한하지 않고, 인쇄소, 신문출판, 주식, 부동산, 고물상 등 온갖 일을 헤집고 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그중에서도 평범하지도 고귀하지도 않은 사랑을 하면서도 시간을 열심히 허비했다. 그러면서도 신은 창조에 6일밖에 안 걸렸는데, 자신은 창작을 15년 동안이나 했다며 불평(548p) 했다.
그는 마법을 통해서만 갚을 수 있는 액수(493p)의 빚을 지고서는 무엇이든지 적당한 정도라는 것을 벗어나(197p), 어떠한 실패를 통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505p) 어리석음으로 안락한 삶을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