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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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한 장 마음을 다해 읽었다. 사실 멈출 수가 없었고, 소설 속 여러 명의 인물들과 상황에 공감하며, 생각해 보지 못한 곳, 생각해 보지 못한 방향에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완독 후에 감상도 잘 쓰고 싶은데, 아마, 안 될 것 같다. 반전과 반전, 미스터리가 풀리는 방식 그리고 결말까지 완벽했기에, 모든 걸 스포일러 하면서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이 책은 후일담 없이도 책 안의 내용만으로 완벽한 책이기도 하다.

짧은 감상을 남겨야 한다면, 다 읽었을 때의 께름한 감정 없이, 쾌감과 함께 묵직한 생각 덩어리들을 한가득 가질 수 있었던 책, 이라고 해야겠다.



가까운 듯 다른 대만

이 책이 한국 소설이었다면, 이만큼 환호하진 못했을 것 같다. 대만이라는 가까운 듯 다른 적당한 거리감이 이 소설에 더 몰입하게 했다. 변호사, 학원 선생이라는 직업, 학창 시절의 이야기들, 가족 관계, 이웃 간의 관계 등 소설 속 여러 일상적인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여러 요소들의 이질감에 훨씬 민감했을 것 같다. 다른 나라라는 약간의 거리감으로 이질적인 요소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훨씬 집중할 수 있었다.

참, 대만의 배경이 흐릿하고 궁금해서,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 한 편을 보았는데, 주제는 전혀 달랐지만 대만의 분위기가 선명하게 느껴져서 이 책을 읽으면서 종종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 그런데 주제는?

소설의 중심이 되는 사건과 이야기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는 무척이나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다뤄야 하지만 감히 다룰 수 없었던,

제대로 다루기가 그토록 힘들었던

사건들과 감정들을 더할 나위 없이 잘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요 주제를 뭐라고 해야 할까가 좀 의문이다. 책 소개 ‘성폭력 피해자의 진실성을 다루는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책 소개에 완전히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피해자의 진실성'을 다뤘다고 보지 않는다. 넓게 ‘성폭력’이라고 하기에도 아쉬운,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청소년 문제도, 가정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만연한 사회문제라고 하기에도 탐탁지 않다. 남녀가 대립되는 구도도 아니다.


 


일례로, 소설에서 지엽적인 사건으로 나오는 사건 중에, 미성년과 관계를 맺어 합의금을 물게 된 이제 막 성년이 되는 남학생 이야기가 나온다. 미성년 소녀의 엄마는 벌써 몇 번이나 다른 남자들에게 합의금을 요구한 전력이 있었다. 악의가 있다면 엄마에게만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 이 사건에서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정해져 있는 걸까? 당사자는 몇 명인가? 상처를 받은 사람은? 충격을 받은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던 걸까? 합의금으로 일단락이 될 것 같았던, 소설에서 비중도 크지 않았던 이 사건조차 다각도에서 생각하게 했다.

하나둘씩 비밀이 드러나면서

이 소설의 백미는, ‘비밀’이 드러나면서 애초에 잘못 놓인 많은 것들을 차근차근 해체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잘못 놓여 있는지 꼼꼼히 세어봐야 한다. 사실, 이 정도로 잘못 만들어졌다면 전부 부수고 새로 만드는 게 맞겠는데, 세상 일을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상처받은 사람들은 힘들게 무언가라도 제대로 놓고 싶어 할 뿐인데, 어디에 무엇을 놓아야 할지, 그걸 대체 누가 알려줄 수 있을까. 삶이 그렇게 무한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철저히 해체해 나가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 여러 번 충격을 받았고 여러 번 좌절했다. 하지만 난 이 소설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디가 어떻게 왜 부서졌는지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부서진 곳을 같이 공유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결말이 전혀 께름칙하지도 않았고 아쉬움도 없었는데, 모두가 그럴지 궁금하다. 그리고 얼마나 공유된 시선을 가질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띠지에 있었던, “우샤오러의 모든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에 완전히 공감했다.

나도, 꼭 다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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