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 생리학 인간 생리학
루이 후아르트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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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웃기다. 고상하게 읽어나가다가 풉, 그러다 크크크킄 웃게 되는 책이다.

동시대 사람들이 읽었으면 더 웃겼을 텐데, 그 시절의 파리가 왠지 멋져 보여서 조금 덜 웃기다.

장르가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풍자만화, 은근히 중독적이었다.

산책 어디까지 해봤니?

산책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점심 먹고 하는 산책, 강아지와 하는 산책, 운동 삼아 하는 산책, 요즘 산책도 종류가 다양하다. 책을 읽기 전엔 산책으로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지 몰랐는데, 루이 후아루트는 온갖 산책을 찾아낸다. 산책자들을 유심히 보다가, 산책한다고 하고 바로 앉을 곳을 찾는 이를 짚어낸다. 이들은 25보 정도 걷다가 벤치를 발견하면 앉는다고, 이들의 산책은 조금 가다 앉는 게 관건(46p)이라고 한다. 멜론을 사러 가는 산책자도 찾아낸다. 개를 데리고 나와서 자기는 안 걷고 개를 훈련시키고 "아, 오늘 산책 잘했다." 하는 산책자를 말한다. 수많은 산책자들을 자세히 묘사하며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는데 읽을수록 그 맛이 있다.



무궁무진한 풍자거리

‘산책자’라는 하나의 주제만을 파고드는데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고 다채로울 수 있을까? 여러 분류의 산책자를 찾고, 제대로 된 산책이 하지 않는 자를 지적하고, 완벽한 산책자를 치켜세운다. 직업별로 분류하기도 하고, 군인 산책자를 칭송하기도 한다. 산책자와 대비해서 무위도식자, 외지 구경꾼, 부랑자를 묘사한다. 범위를 넓혀 장소와 거리를 이야기하고, 산책하면서 벌어지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이야기한다. 산책에서 있을 수 있는 수많은 일을 이리저리 배치해서 산책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다. 물론, 온갖 것들을 풍자하면서 말이다. 사실 산책과 조금만 관련이 있으면 된다. 원하는 것은 뭐든지 풍자할 수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산책자 생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만 말이다!

산책이 데려다준 풍자의 묘미

<산책자 생리학>을 읽으면서 풍자의 묘미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산책자 생리학>에서 말하는 완벽한 산책을 꿈꾸며 세심하게 산책을 하다가, 얼마 전까지 공사를 해서 새로 깔린 길을 걸었다. 아스팔트인지 우레탄인지로 된 바로 옆길은 한층 더 울퉁불퉁 한데, 그쪽이 아닌 멀쩡한 보도블록들을 새로 바꾸다니, 작년에 한 일이라는 게, 이런 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 이런 걸 더 맛깔나게 풍자해야 하는데, 아쉬웠다. 루이 후아르트의 논조라면 위트와 통찰을 곁들여 맛깔나게 말해주었을 텐데. 가볍고도 자유롭게, 실랄하면서도 유쾌하게!

만평이란 게, 참 재미있는데 잊고 있었다. 프랑스나 영국에서는 여전히 풍자가 언론의 하나의 논지로 득세하고 있다. 하나의 견해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모독이나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과는 다르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언론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신랄하면서도 우아한 풍자와 이에 관대하면서도 휘둘리지 않는 성숙함이 공존하는 사회야말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가 아닐까?


산책에 대해 성찰하고, 파리를 느끼고, 풍자를 배웠던 <산책자 생리학>

아무래도 다른 생리학 시리즈도 더 읽어봐야겠다.

그러면 나도 풍자를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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