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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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과 대기근을 겪고 있던 1789년의 프랑스.

삼부회 소집으로 계층의 결집과 충돌이 불거지고, 무장한 왕실 친위대가 광장을 둘러쌌다.

뒤숭숭하고 혼란스러운 시기. 이런 시기의 가난한 민중은 어떤 모습일까?

7월 14일의 바스티유 함락은 민중이 혁명을 시작했다는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다.

상징이 된 이날의 현장을 에리크 뷔야르는 <7월 14일>에서 독특하게 옮겨 놓았다.


 

사건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법

술술 읽히는 책이다. 주인공도 책 전체에 이어지는 감정선도 없었다. 처음에는 소설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 같아서 익숙하게 시작했는데, 끝까지 배경만을 설명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택을 보여주었다가, 길거리를 보여주고, 군중을 따라서 여기로 들어갔다가 저기로 들어가고, 뛰어가는 한 사람을 쫓기도 했다. 동생을 찾는 부부 이야기, 남편을 찾는 부인의 이야기를 읽다가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뚝 끊겼다. 손이 피투성이가 되면서 사슬을 내리쳐 도개교를 내린 이는 왜 잊혔을까? 자꾸만 다른 이야기로 건너갔다. 중간중간에 대비되는 사회상의 기술은 담백했다.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혁명이었다. 일찌감치 붙잡혀 처형된 민중도 혁명이었다. 판자를 건너다가 추락한 사람도 혁명이었다. 이런 식의 사건의 기록, 현장의 기억은 파편적이고 완전하다.

소설이 그리는 현장의 모습

소설은 흥분한 군중의 산발적인 습격, 약탈, 무기를 얻기 위해 여기로, 저기로, 몰려다니고, 바스티유로 향해 대포를 쏘고 도개교를 내려 왕권의 상징인 감옥을 함락하는 과정을 그리기에 과연 적합할까? 소설의 장면 묘사는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세밀했다. 영화라면, 당시의 복식을 입은 배우들의 생생한 표정과 억양, 소음을 재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 어린 나이에 떠나보내야 했던 그들의 아이, 일상인 고생과 짧은 행복은 알려줄 수 없다. 그들의 양말은 누가 뜨개질 했는지, 외투는 어디서 구입했는지 일일이 알려줄 수 없다. 에리크 뷔야르는 소설이라는 장르로 모든 장면을 넓게, 또는 좁게, 길게 또는 짧게 자유자재로 기술하며,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재현했다.

14세 아이의 팔이 관통되고, 총상 입은 12세의 아이가 판자에 옮겨진다. 수많은 단역들의 이름을 적어 넣고, 감정을 치열하게 묘사하더라도, 불현듯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건들로 인해 시시각각 군중이 더욱더 흥분하듯이, 독자들도 군중 속에 섞여들어가 같이 흥분되어 간다.



잔상과 사명감

현장감을 느끼며,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고,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통찰을 담은 묘사는 내레이션으로 기능하며 감정을 고조시킨다. 문득, 잠시 어지러운 마음이 든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에리크 뷔야르는 “그들과 아이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75p)고 했다. “이런 광경을 상상해 봐야 한다”(78p)고 했다. 애끓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그는 “모르는 것을 글로 옮겨야만 한다”(90p)고도 했다.

아무리 사실을 수집하고, 철저히 정열적으로 기술해도 눈에 본 모든 잔상을 떨칠 수 없고, 기술해낼 수 없다. 에리크 뷔야르는 최선을 다한다. 모든 걸 다 알아도 부족하지만, 결코 모든 걸 전달할 수 없다. 독자는 최선의 결과물을 샅샅이 읽으며 더욱 허기를 느낀다. 아마도, 허기까지 의도된 최선일 것이다.

보이는 것과 상상해야 하는 것, 모르지만 알아야 할 것 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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