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7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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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술적 사실주의 ✨


거침없는 책이다. 표현의 자유를 말하려면,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비유에 눈을 돌릴 틈이 없다. 공중의 부유하는 다리를 건너듯 날아다니며 읽고, 놀라고 감탄하다가 독하고 생경한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가 황홀함을 맛본다. 영화의 장르를 생각해 보면, 무시무시한 여러 종족들이 활개치며 변신하는 판타지 장르, 마술적 사실주의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슬람을 잘 모른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슬람을 모독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기가 힘들다. 그런데, 아무래도 모독하고 있는 건 이슬람뿐이 아닌 것 같은데-


✨ 멋진 문장들! ✨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구절들이 나온다. 처음 내가 빠져버린 문장들, 📑p. 55 인용 - ‘신에 대한 분노 덕분에 다시 하루 더 버틸 수 있었는데, 분노가 수그러들자 이번에는 무서운 허탈감과 소외감이 밀려왔고, 자기가 텅 빈 허공을 향해 말했음을, 그곳에는 아무도 없음을 깨달았고, 자신이 이토록 어리석게 느껴지기는 평생 처음이었고, 그는 그 공허를 향해 호소했다.’ - ✍️ 절박한 기도, 기도밖에 할 수 없을 때의 분노에 가까운 감정과 공허함.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p. 55 인용 - ‘ ‘(알라시여,) 그곳에 계시옵소서, 빌어먹을, 제발 있으시란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제 아무것도 못 느껴도 상관없음을 깨달았다.’ - ✍️ 더 이상 기도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과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신을 찾을 수도, 신의 임재를 느낄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단독자가 되고 싶으면 그러면 되지 않을까.



✨ 현란한 스토리 ✨


나를 사로잡는 문장들 사이로 이야기는 거침없이 전개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두 사람, 한 사람은 광채 나는 얼굴의 신의 후광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천사가 되고, 한 사람은 완벽한 영국인을 꿈꾸다가 뿔 달린 염소 괴물로 변하는 악마가 된다. 괴물로의 신체 변이는 점차적으로 진행되는데, 끔찍한 꿈과 환상은 현실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중간중간의 통찰이 너무나 현실에 맞닿아 있고 통렬하기에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


📑p. 74

“그것 봐라. 세상은 네 힘으로 살아가는 거야. 내가 너를 어른으로 만들어준 거다.” 그러나 어떤 어른으로? 그것만은 아버지들도 모른다. 적어도 미리 알지는 못하고, 알았을 때는 이미 늦기 마련이다.


📑p. 90

백인이 되려고 평생 발버둥을 치다가 갑자기 인도인이 되고 싶어 하시네. 그것 봐,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잖아. 아직은 살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이때 참차는 얼굴이 붉어지고 점점 당황하는 자신을 느꼈다. 인도, 그것이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p. 179

신의 우체부 노릇도 재미있는 건 아니라네, 친구.

그러나그러나그러나: 이 장면에도 신은 나오지 않는다.

내가 누구의 우체부였는지는 아무도 모를걸.


📑p. 246-247

‘여긴 영국이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었다. 어떻게 영국일 수 있으랴. 영국처럼 온건하고 상식적인 나라의 경찰차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태연히 자행될 수 있단 말이냐? (중략) 나는 지성인이었는데, 그렇게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많은 것들이 풍자되고 비난된다. 말도 안 되게 희화화되고 난도질당하며, 길고 긴 문장으로, 나뉘고 조합된 새로운 단어로, 지적 유희와 말초적 자극을 섞어서 서술된다. 성경, 코란, 신화, 상징들은 불쑥 불쑥 튀어나오며, 무엇이든 손쉽게 전복시키는 압도적이고 아찔한 전개를 선사한다.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도, 푹 빠져서 읽게 되는 마력이 있는 책이다. 인도가 이상한 걸까, 영국이 이상한 걸까, 묘사된 종교가 이상한 걸까, 또 이상한 것들이 너무 많은데? 뭘 말하려고 하는 걸까? 그런데 뭘 말하려는지가 중요할까? 이미 말해야 할 것들을 이렇게 많이 말하고 있는데!?


✨ 어쨌든, 소설! ✨


나의 지식이 부족해서 모든 왜곡들을 알아챌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지식이 많다면 모독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분개할 여지가 더 많았겠지만, 모든 것을 알면서도 초탈했다면 유희의 경지를 넓혀줄 책이다. 어쨌든 이건 소설이니깐 말이다.

강렬하게 마무리된 1권의 마지막.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2권은 1권보다 약간 얇다. 더 많이 밑줄 그으며 읽어나가야 할 듯. 천사와 악마, 그들의 이야기는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 지! 살만 루슈디의 마술 같은 시, 그 끝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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