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서유럽 - 혹은 중앙 유럽의 비극 쏜살 문고
밀란 쿤데라 지음, 장진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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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글 두 편과 각 글의 소개가 실린 민음사 쏜살문고, 짧고도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책이다.

16년 간격을 두고 발표된 <문학과 약소 민족들>과 <납치된 서유럽 - 혹은 중앙 유럽의 비극>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먼저 <문학과 약소 민족들>은 약소 민족의 생존과 위치를 명확히 할 방법을 제시하고 있고 <납치된 서유럽>에서는 강대국과의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법을 예견하고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문학의 역할을 촉구한다.

그의 글은 명백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예견하고 있을뿐더러, 약소국가들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유럽 연합의 위기 또한 예상하므로, 발표된 시점인 1983년을 생각하면 놀랄 수밖에 없는 통찰력이다. 밀란 쿤데라는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방향은 무엇일까. 그는 문학의 방향성을 강력히 피력하고 있는데, 이는 무척이나 설득력이 높다.

그의 논지의 일부로 그는 약소민족이 가진 주요한 힘으로 언어를 이야기하고 있다.

약소 민족들은 오로지 그들의 언어가 지닌 문화적 역량과 그 언어의 도움으로 생성된 가치의 독자적 특성을 통해서만 언어와 주권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23p

언어는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자신의 문화와 정신을 보존하게 한다. 언어로부터 파생되어 언어로 구체화되고 전파되고 전승되는 정신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며, 원하던 원하지 않던 다른 언어와의 관계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갖게 한다.

한편, 그는 결코 자국의 모든 것을 보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선 교육수준의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일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민족의 발목을 잡는 고루함, 무교양, 편협함 등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는 민족의 문학적 영향력을 방해할뿐더러 민족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만약 무교양이 그 문화 안에서 이해된다는 이유로 득세한다면, 결국 그 문화마저 배척되게 만드는 행위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독자적인 문화를 갖는 약소민족의 경우, 이 점을 예민하게 성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글의 논의였다면, 두 번째 글의 논의는 약소국이 강대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약소국과 강대국의 관계는 침략, 지배-피지배, 통합, 연합, 느슨한 유대와 교역 약간씩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과 러시아의 팽창의 결이 다른 점을 보여주면서 약소국이 경계할 점을 알려준다. 더 이상 이데올로기 싸움이 아닌, 유럽이 내세우는 가치와 러시아 체제의 필요 간의 대립은 40여 년 전에도 지금도 치명적인 차이점이다.



중앙 유럽은 유럽과 유럽의 다양한 풍요의 응축된 이미지, 매우 유럽적인 소(小) 유럽, 즉 최소의 공간에 최대의 다양성이라는 규칙에 따라 잉태된 민족들의 축소화된 유럽이라는 모델이고자 했다. 그런 중앙 유럽의 코앞에서 최대 공간에 최소의 다양성이라는 정반대의 규칙을 내세운 러시아에게 어떻게 중앙 유럽이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48p

그렇다면 유럽은 무구히 발전해야 마땅한지, 그 이후까지 밀란 쿤데라는 예견하고 있다. 밀란 쿤데라는 결코 낙관하지 않았다. 더 이상 문화가 공유되지 않는 세태도 우려하고 있다. 아무도 동시대의 회화를 즐기지 않고, 문예지와 저널이 사라져도 대중은 이를 알지 못하는 현상을 경계한다. 문화가 없는 상황은 논의가 개진되지 않는 공허한 상황에서의 아우성일 뿐이다.

대중 매체, 대중음악 등의 문화의 대체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루어지는 주제와 향유되고 논의되는 담론의 역량이 발전 가능한 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변주될 뿐인, 오락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으로는 개진될 수 없는 것을 자체적으로 다룰 문화의 힘이 필요하다.

치열한 논의가 필요한 글, 여기서 많은 것을 시작할 수 있는 글이었다.





중앙 유럽은 유럽과 유럽의 다양한 풍요의 응축된 이미지, 매우 유럽적인 소(小) 유럽, 즉 최소의 공간에 최대의 다양성이라는 규칙에 따라 잉태된 민족들의 축소화된 유럽이라는 모델이고자 했다. 그런 중앙 유럽의 코앞에서 최대 공간에 최소의 다양성이라는 정반대의 규칙을 내세운 러시아에게 어떻게 중앙 유럽이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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