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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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에라스무스 |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우신예찬>은 시종일관 우습다. 재미에 푹 빠져서 읽으며 맞장구 칠 수 있는 책이다. 우신은 ‘어리석음의 신’인데, 아버지는 부와 재물의 신, 어머니는 ‘생기발랄’ 요정이다. 유모 ‘만취’와 ‘무지’의 손에서 자랐고, ‘자아도취’, ‘아부’, ‘망각’, ‘태만’, ‘쾌락’, ‘경솔’, ‘방탕’, ‘광란’, ‘깊은 잠’이라는 아주 충직한 가솔들을 두고 있다. 우신은 열심히 자화자찬하며 자신이야 말로 최고의 신임을 설파하고 있다.


우신예찬의 전개방식 : 해학 - 풍자 - 역설

우신은 먼저 개인적인 영역에서 남녀관계, 우정, 결혼 등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해학으로 유쾌하게 풀어나가며 일반 대중의 마음을 얻는다. 내가 없었으면, 누가 결혼을 했겠소, 어떻게 사랑을 하겠소, 바로 내가 있어야 생명을 잉태하는 것 아니겠소! 실소가 나오기도 하고, 깔깔 웃기기도 하는데,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부조리와 어리석음, 억지로 하는 인내와 마땅이 용인해야 하는 것들의 긴장을 완화시킨다. 그러고는 슬슬 사회 풍자에 시동을 건다.

하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한 진실을 왜 내가 말해서는 안 됩니까?

p. 93

우신은 현자는 사람이 아니라며, 지긋지긋하다고 한다. 이어서 선생, 시인, 저술가, 법률가, 철학자, 신학자, 귀족 등을 신나게 풍자하는데, 당시의 우스운 세태를 효과적으로 비웃는다. 좋은 광기로 사냥꾼과 건축가, 화학자, 노름꾼을 한꺼번에 비약하며(120~123p), 귀족들의 특권의식에 빠진 사냥과 적당한 선 없이 재산을 탕진하는 건축가, 허황된 희망에 실험을 거듭하는 화학자, 바보같은 노름꾼을 풍자하는데, 이는 그 시대의 여러 폐단을 드러내고 있다.



해학과 풍자를 넘어, 에라스무스는 마침내 성경이 우신을 칭송하는 역설적인 예를 들면서, 신학자의 면모도 드러낸다. 아슬아슬 하지만 자신의 영역에서 꼭 비판해야 할 점을 드러내는 용기로 보인다. 해학과 풍자의 멋진 막을 내리는 셈이다. 나는 우신이고 여자여서 그러려니 감안해 달라며, 술취한 자의 이야기를 다 기억하는 사람은 질색인 것 처럼 자신의 말을 다 기억할 거냐고, 질색하며 퇴장하는 우신은 끝까지 웃기다. 쏙 빠져들어서 속이 시원해지는 연설이다.


이 책의 첫 출간도 특이한데, 친구들에게 보인 연설문을 친구들이 출판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읽다 보면 얼마나 돌려 읽고, 널리 읽히고 싶었는지 짐작이 간다. 웃기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문득 문득 우신이야 말로 진짜 최고 신이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대중이 열광할 만한 연설이지 않을까? 선풍적인 인기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코미디다.

좋은 책, 좋은 번역, 완벽한 구성

<우신예찬>을 이만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로는 ‘현대지성 클래식시리즈’의 좋은 번역과 수 많은 각주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이다. 장도 절도 없는 연설문에 적절히 장을 나누어 일일이 제목을 붙인 수고로움에도 감사하고 싶다. 다른 판본의 우신예찬을 읽어보면 비교가 되는데, 수많은 그리스어 비유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그시대 지성인들을 향한 연설문의 거침없는 유희를 현 시대에서 온전히 느끼기려면 많은 도움이 필요한게 사실이다.

즐겁게 읽을 수 있어서 신났던 책, 비판이되 우아하고 모든 실상을 폭로하되 듣는이가 거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되어 놀랍고도 유쾌한 읽기였다.

* 출판사 지원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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