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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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쓸쓸한 소설이다. 소재도, 인물도, 서술 방식이나 문체도 무척 쓸쓸하다. 양장 책이 볼수록 마음에 드는데 책 디자인조차 쓸쓸하게 느껴진다.

병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종종 보았지만, <죽은 자로 하여금>은 배경이 병원이지만 의사는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원무 행정과 직원들이 주인공이고, 주변인물로 간호사나 원장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병원을 방문하지만 병원이 근무지가 아닌 듯, 익숙한 공간의 이면의 이야기이며, 의외로 일반 회사와 유사한 문제들이 나오기에, 독자는 배경과 스토리에서 몇 번의 교차점을 찾을 수 있다.



사실 나는 동시대의 한국 소설을 기피했는데, 현실 반영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껴져서였다. 몇 년 전 아이가 완치판정을 받기 까지 여러번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요즘은 친한 친구가 아이의 갑작스런 중병으로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겪은 어제와 친구의 오늘을 소설로 읽는 것은 날 것 그대로의 파렴치함 또는 신물나는 느낌의 어디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하는 일은 이해의 폭을 넓히고, 치유의 길을 제공하는 것임을 경험하기에, 점점 더 용감하게 읽고 있다. 세계문학은 인간 보편의 이해를 넓힌다면, 동시대의 한국 문학은 바로 우리 사회와 주변의 이해를 넓힌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사회 곳곳이 단절된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통합할 실마리는 아마도 문학에 있을 것이다.

<죽은 자로 하여금>에서 나오는 제약회사의 리베이트나, 투약실수가 무마되는 사건, 허울 뿐인 요양병원 사업은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문득 신문의 사회면을 읽는 듯한 느낌 마저 들었다. 의료비를 체납하는 장기 환자, 환자 유치와 흑자 경영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역 병원의 고충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이다. <죽은 자로 하여금>은 이곳에서 고뇌하는 주인공을 찾아낸다.




주인공 무주 역시 정형성을 입고 있는 인물이다. 전직장에서 문제가 붉어지자 조용히 사직하면서 지방으로 이전하고, 아내는 서울에서의 직업을 포기하고 함께 간다. 무주는 전직장과 유사한 대형 병원에 취직하고, 그 곳에서 만난 흥미로운 인물이 이 소설의 중심 사건을 만든다. 하지만 전직장과 유사한 듯 다른 문제는 여기에도 존재하고, 모양을 달리하여 재생한다. 어딜 가나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우리사회를 그대로를 보여주는 듯 하다.

사건 중간에 아내와 대화를 하지 않게 되고, 아내는 친정 방문이 많아지고, 외주 일을 하는 등,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익숙한 상황들도 무척이나 와닿았다. 아이가 생겼을 때 느끼는 벅찬 감정과 책임감 등의 정서도 익숙한 한국의 정서였다. 이를 문자로 읽으면, 의외로 기괴하게 느껴지고 반성도 된다. 제목 <죽은 자로 하여금>은 예상치 못하게 성경 구절에서 따온 문구였는데, 교회의 접근성은 의외로 좋지만, 신실한 믿음 또는 종교 생활이 실생활과 쉽게 유리되는 우리 사회의 종교도 그대로 와닿았다.


무주의 서술이 쓸쓸하게 이어지는 데다가, 무주가 워낙에 퉁명스러운 탓에 정말이지 쓸쓸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날은 어느 평일의 새벽이었는데, 그 날도 그 전날도, 나는 회사에서 점심도 혼자 먹고,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왠일인지 남편과도 다정한 말을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는데, 이렇게 매일 쓸쓸했구나, 싶었다.

큰 주제라면 병원 비리에 얽힌 흥미롭고 미스테리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도 열심히 따라가며 읽었지만, 주제 이외에 정신 없이 너무 많은 것을 느끼는 바람에, 더욱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대부분의 것을 이해하고 허용적인 무주, 달관하면서도 끊임없의 고뇌하는 그의 쓸쓸함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더 좋은 서평을 위해 늘 열독♡ 서평이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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