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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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은 주인공 주인공에 맞춰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라스꼴리니꼬프의 일거수 일투족과 그의 생각을 끊임없이 서술한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법학과 대학생이었던, 잘생기고 똑똑한 청년으로, 타지인 대학교 근처에서 더이상 학교도 다니지 않고, 돈벌이로 하던 과외도 그만둔 상태이다. 그의 심리 상태는 소설 분위기 전반을 지배하는데, 모든 사람의 생각과 심리가 그러하듯 여러가지 상념이 떠오르고, 생각 속에서 이것 저것을 연결시키므로 다소 혼란스럽다. 그의 생각 중 일부는 매우 선량하고, 상당부분 논리적이며, 시종일관 괴로워한다.

그 중 나는 그가 타인의 희생 위에 살아가야 하는 것을 못 견뎌하는 것에 특히 공감했는데, 없는 형편에 자신에게 돈을 보내주는 어머니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을 오빠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기에 하려는 여동생 소식에 의식의 통제권을 상실할 정도로 괴로워하는 마음이 복합적으로 다가왔다.

문득, 그는 왜 생각만 하고 제대로 먹지도 않고,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으며 쏘 다니기만 하는지 답답하기도 했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이 되지 않아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거라며, 평면적인 잔소리를 발동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황 그대로 가감없이 통채로 와닿기도 했다. 나에게도 고시촌 생활이, 직장 없이 방황한 휴학기간과 졸업 후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다 사기 취업으로…이후 생략)

그는 많은 시도를 했을 것이다. 친구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똑똑한 대학생활을, 과외 활동을 논문을 쓰기도 했고, 그것들에 매몰되기 직전에 발을 뺀 상태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의 친구 라주미힌 역시 그에게 번역일을 나누려 하면서, 그 일은 돈이 되지만 저열하고 일을 주는 사업가 또한 존경할 수 없다는 식의 환멸을 이야기한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그에게 최선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다수는 그러면서도 과외 또는 번역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어머니와 가족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더 나은 직장으로 옮겨가며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의 희노애락을 흉내내며 살아갈지 모른다. 하지만, 라스꼴리니꼬프는 모든 것을 의식이 이끄는 방향에 내맡긴다.

거리를 쏘다니고, 어떠한 생각에 사로잡혔다가, 술주정뱅이의 일장 연설에서 인생의 모순에 공감하고, 길거리 논쟁에서 영감을 받고, 우연치 않게 들은 타인의 약속을 계시처럼 느끼며 등 떠밀리듯 범행을 저지른다. 그의 의식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동인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은 형법의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법학과인 그는 법철학 전공이었을까), 그는 고의적인 계획 범죄의 증거가 될 만한 준비물을 척척 꺼낸다. 그렇게 아주 계획적인 의도적인 살인과, 부수적인 범행들을 벌인다.

상권은 범행 이전과 범행, 그리고 그 직후의 심리와 과정을 밀도있게 서술한다. 나는 숨을 못 쉬며 읽고, 읽다가 그의 의식의 흐름을 되집기 위해 몇 장씩 다시 읽고, 공감하며 읽고 분노하며 읽었다. 무엇 하나 빠뜨릴 수 없었다. 멍청한 범행과 시덥잖은 장물들, 아니, 어쩌면 엄청난 장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대담한 행동과 의도적인 망각들을 그와 같이 열병에 시달리듯 읽었다.

상권 말미에 등장하는 그의 논문과 묘령의 상인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하권에서는 그로부터의 논의가 계속 될 듯 하다.



ps. 상권에서의 ‘죄’는 의외의 곳에서 논쟁이 된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나 ‘극빈은 죄악’이라는 마르멜라도프,
자비롭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오시지도 않는다는 마르멜라도프의 아내 까쩨리나 이바노브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고 하는 사제.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왜 죄가 되고 벌은 어떤 벌이 마땅할 지, 하권을 읽으면 알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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