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글쓰는 행위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한다. 쓰는 것 만이 자기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하고, 존재하기에 쓴다. 정제되지 않은 글 같아 보이는 그의 글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서, 처참한 기억과, 온전한 정신, 파괴된 의식과 평온한 행위 사이에 더 없이 솔직한 사다리들을 끈기있게 놓는 과정과 같다.
그는 집을 사지 못하고, 단호히 안 돼! 라고 말 할 수 밖에 없는 문제 앞에, 평범하게 살아낼 수없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살아내기에, 그의 글을 통해 사는 방법을 새롭게 배울 수 있다. 그의 아내였던 유대인 여자는 아우슈비츠를 거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그녀는 그의 글을 통해서 비로소, 유대인으로 사는, 종종 얼굴을 진흙 속에 처박고 있게 되는 그런 존재의 부정을 뚫고 살아내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결국 그를 떠나는 데, 이 책의 후반부에 떠나기 전 작가가 아내가 한 말을 옮겨온 부분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에 대한 연민, 동정, 그리고 안타까움, 답답함, 믿음, 존경심,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가 맞서려고 하는 고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속 시원히 드러난다. 작가의 언어를 통해 살아낼 수 있었고, 작가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아내였던 그녀를 통해, 이 책의 모든 논의는 휘저어지고, 훨씬 더 굳건히 다져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