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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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를 펼치자마자 길게 이어지는 문장이 페이지를 꽉 채우고 있고, 등장인물도 사건의 전개도 없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어떻게 읽어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어쨌든 한 글자 한 글자 읽었다. 읽을수록 드러나는 방향성이 있고 그의 논의는 촘촘한 그물이 되어 독자를 완전히 매료시킨다.


존재 자체에 대한 의구심, 본능을 지배하는 의식, 어린시절, 기숙학교, 기차간에서 마주친 아이가 셋인 가족의 얼굴 등 모든 장면은 작가의 의도 대로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존재와 필연적인 모든 행위에 괴로워한다. 미처 제대로 형성되기 전에 철저하게 무너진 정신의 자립 과정은 지난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작가는 세상의 수 많은 회피 방법에 조금도 가까이 가지 않은 채, 그 만의 방법을 개발하고 관철시키고자 한다. 그의 무기는 단연코 글쓰기이다.



물론 나는 애써야만 할 것이다, 나는 살아 있고, 그리고 글을 쓰고 있으니까, 두 가지 다 발버둥이다, 사는 것은 오히려 눈이 먼 발버둥이고, 글을 쓰는 것은 보려는 발버둥이다, 글을 쓰는 것은 살아가는 것과는 다른 발버둥이다,

67p


그는 글쓰는 행위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한다. 쓰는 것 만이 자기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하고, 존재하기에 쓴다. 정제되지 않은 글 같아 보이는 그의 글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서, 처참한 기억과, 온전한 정신, 파괴된 의식과 평온한 행위 사이에 더 없이 솔직한 사다리들을 끈기있게 놓는 과정과 같다.


그는 집을 사지 못하고, 단호히 안 돼! 라고 말 할 수 밖에 없는 문제 앞에, 평범하게 살아낼 수없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살아내기에, 그의 글을 통해 사는 방법을 새롭게 배울 수 있다. 그의 아내였던 유대인 여자는 아우슈비츠를 거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그녀는 그의 글을 통해서 비로소, 유대인으로 사는, 종종 얼굴을 진흙 속에 처박고 있게 되는 그런 존재의 부정을 뚫고 살아내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결국 그를 떠나는 데, 이 책의 후반부에 떠나기 전 작가가 아내가 한 말을 옮겨온 부분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에 대한 연민, 동정, 그리고 안타까움, 답답함, 믿음, 존경심,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가 맞서려고 하는 고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속 시원히 드러난다. 작가의 언어를 통해 살아낼 수 있었고, 작가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아내였던 그녀를 통해, 이 책의 모든 논의는 휘저어지고, 훨씬 더 굳건히 다져진다.




무척이나 강렬했던 작품이다. 존재하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 이어지는 삶과 악의적으로 되풀이되는 무익한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살고자 하는 욕망과 행복하고 싶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간단히 보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임레 케르테스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를 통해 살아가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 더욱 철저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민음사 제공 도서

더 좋은 서평을 위해 늘 열독♡ 서평이 힐링♡







물론 나는 애써야만 할 것이다, 나는 살아 있고, 그리고 글을 쓰고 있으니까, 두 가지 다 발버둥이다, 사는 것은 오히려 눈이 먼 발버둥이고, 글을 쓰는 것은 보려는 발버둥이다, 글을 쓰는 것은 살아가는 것과는 다른 발버둥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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