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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한 마리는 기쁨 - 두 아버지와 나, 그리고 새
찰리 길모어 지음, 고정아 옮김 / 에포크 / 2022년 6월
평점 :
어느 날 우연히 까치 한 마리를 키우게 된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처럼 시작한 찰리 길모어의 <까치 한 마리는 기쁨>은 평범하지 않은 저자의 솔직하고 치열한 언어의 특별한 에세이집이다.
우연히 까치 한 마리를 키우게 된 것도 평범하지 않게 여겨질 만도 하지만, 찰리 길모어의 인생에 그 정도는 아주 평범한 일화에 불과하다. 친부 히스코트(Heathcote Williams)는 영국의 시인, 배우, 정치 활동가 및 극작가이고 양아버지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는 영국의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 라이터이다. 유명한 아버지를 둘이나 둔 찰리 길모어는 대학시절 전몰 위령비인 세너태프의 영국 국기에 매달리는 등의 난동을 부린 대가로 1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한다(실제 감옥에서는 4개월을 보내고, 이어서 가택 연금의 기간을 보냄).
스스로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걸었던 찰리 길모어는 <까치 한 마리는 기쁨>에서 두 아버지와 까치,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한다. 까치라는 미지의 생명체를 돌보면서, 같은 까마귓과의 새를 키웠던 친부를 추적하고, 그와 닮을까 두려운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한다. 양부인 데이비드 길모어는 비중이 많이 적지만 여러모로 완벽한 양부로서의 역할을 맡아준다. 하지만 양부만으로는 찰리 길모어의 결핍은 해소되지 않았고, 친부의 풀리지 않는 의문은 성인이 된 후에도 약한 부분을 자꾸 잡아챈다.
나는 아이가 아니다. 스물 일곱 살이고 결혼도 했다. 내 말뜻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책임감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돌보는 일도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아이를 돌보겠는가? 나에게 아이를 버리는 유전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 갑자기 미쳐버리는 성향이 핏속에 흐르면? 히스코트의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리고 나 자신의 실수를 반복한다면? 물론 이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정확히 말할 수 없는 것들이고, 어지러운 소음 때문에 제대로 생각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 소음은 야나와 나 사이가 아니라 내 안에서, 내가 부닥친 뜨거운 공포에서 온다. 공포가 내 얼굴에 그려진 모양이다.
새끼 까치는 어엿한 반려 동물로 집안을 장악해나간다. 먹을 것과 자기 자리를 요구하고, 자기와 시간을 보내기를 강요한다. 까치에 맞춰지는 여러가지 것들이 흥미롭다. 처음에는 여자친구(곧 결혼하게되는) 야나가 주체적으로 까치를 돌보지만, 찰리가 점점 많은 부분을 맡는 것도 볼 수 있다. 까치와 함께 찰리는 회복의 주파수를 찾아가는 듯하다.
새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즐거움이다. 우울한 사람이 명백하게 좋은 일을 하는 방법이다. 통제력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세상에 약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 구멍 난 곳을 메우는 방법이다. 동물과 교감하는 일은 사람에게 좋다. 심장 박동 수를 줄여주고,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고,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262p
한편으로는 찰리 길모어가 생부에 집착하는게 힘겹게 보이기도 했다. 그냥 앞으로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토록 간절하게, 최선을 다해서 부딪힌 만큼 그가 확실히 벗어나고 마침내 얻어낸 것들도 있었다. 그 과정이 독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위로가 되어준다.
친부와 양부 모두 유명인이라서 그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뿐더러, 찰리 길모어도 유명인인 덕분에, 그와 까치 벤젠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어서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벤젠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 컸다!!)
https://youtu.be/y6Ab2yirSlc
물론 작가의 인스타도 있음.
https://www.instagram.com/charliegilmour/
이 책에 기대했던 것들 - 부모로 인한 결핍을 극복하는 방법, 다른 생명을 돌보는 것의 경이로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더불어 나쁜 부모와 좋은 부모, 그리고 부모가 나쁘거나 좋거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생명, 익숙한 애완동물이 아닌 까치라는 미지의 생명을 통한 애착과 배움의 영역을 넓혀갈 수도 있었다.
또 하나 기대하지 못했던 내용으로서 한 사람의 의식 구조, 연약한 정신을 단련시키는 방법, 책임감을 키워나가는 힘겹지만 제대로 된 투쟁에 대해서도 추적할 수 있었다.
흥미롭고도 완벽했던 에세이, 그리고 수많은 문장들을 길어올릴 수 있었던 멋진 책이었다.
제대로 날아오르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꼭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해서 지원 받았으며 진심을 담아 정성껏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더 좋은 서평을 쓸 수 있도록 열독하겠습니다. 서평이 힐링♡
나는 아이가 아니다. 스물 일곱 살이고 결혼도 했다. 내 말뜻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책임감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돌보는 일도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아이를 돌보겠는가? 나에게 아이를 버리는 유전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 갑자기 미쳐버리는 성향이 핏속에 흐르면? 히스코트의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리고 나 자신의 실수를 반복한다면? 물론 이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정확히 말할 수 없는 것들이고, 어지러운 소음 때문에 제대로 생각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 소음은 야나와 나 사이가 아니라 내 안에서, 내가 부닥친 뜨거운 공포에서 온다. 공포가 내 얼굴에 그려진 모양이다. - P123
새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즐거움이다. 우울한 사람이 명백하게 좋은 일을 하는 방법이다. 통제력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세상에 약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 구멍 난 곳을 메우는 방법이다. 동물과 교감하는 일은 사람에게 좋다. 심장 박동 수를 줄여주고,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고,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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