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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2 ㅣ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평점 :
<행성>은 전작 <문명>에서 이어지는 내용이 너무 암담해서 시작이 힘들었다. 전작에서 이미 쥐가 거리 위를 장악하고 악랄하게 공격하는 풍경에는 좀 면역이 되었지만, 전작에서 품고 온 희망이 좌초된 것이 너무나 쓰라렸고, 나로서는 더 나쁜 것만 보이며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행성1>을 반 이상 읽는 내내 작가가 파괴한 것들에 미련을 두며 이야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 수준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유약함과 현실도피(읽지 말까..)의 마음을 하드캐리한 캐릭터는 역시나 바스테트였다. 바스테트 덕에 <행성>의 모든 상황은 돌파구를 찾았다. 읽어 갈 수록 인간은 결코 하지 못했을 일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나는 인간이라서 유약하고 도피에 익숙했던 것 뿐이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일부러 모든 것을 파괴하고, 결코 해결하지 못할 것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p. 114
내가 해결책을 찾아내지 않으면 우리 고양이들과 인간들이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지구상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전작 <문명>은 인간의 문명과 지식의 우월함이 기저에 흐르고 있었다면, <행성>은 <문명>과 주제와 지향점을 달리하는 소설로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인간 종의 절멸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행성>은 고층 빌딩의 위의 도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 또한 행성으로 명명 한 듯 하다. 소설은 지구를 버리고 우주까지 뻗어나가지는 않았지만, 인간이 수 많은 종의 하나 인 것 처럼, 지구 역시 수 많은 행성의 하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을 하게 한다.
인간이 갑자기 사라지면 지구에 벌어질 일에 대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내용이 의미심장하다(물론 상.절.지.백은 항상 의미심장한 내용 뿐 이다). 한 달 후,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아 방사능이 누출되고 6개월 뒤 위성의 추락은 멸망의 모습이지만, 식물들이 자라고, 5년 뒤 부터는 생물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2백년, 5백년… 1억년 뒤에 지구상에 플라스틱 조차 분해된다면, 행성 입장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일 듯도 하다.
<행성>은 1억년 뒤 지구를 바라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암담한 상황이 쉬이 타개되지 않는다. 바스테트도 몇 번 실패한다. 바스테트는 무모하고 순진 무구해 보이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103번째 대표단의 자격조차 따내기 힘든 방편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스테트는 제3의 눈을 가져 여느 인간보다 명석하고 상절지백의 확장판을 동글로 연결하여 인류의 모든 지식에 접근 가능한 바, 인류 전체의 지식을 넘어서는 ‘인간 보다 우월한 고양이’이다. 그런 바스테트의 방안이 순진하기만 할 리 만무하다. 103번째 대표단의 자리를 요구하는 겸손함의 미덕도 갖춘 완벽한 존재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행성 후반부는 바스테트가 길어올린 가치들, 그리고 인간이 하지 못한 선택들을 곱씹으며 마무리하게 된다. 초반의 상실감을 회복시켜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선물도 나온다. 그리고 행성 표지의 고양이가 당연히 바스테트라고 생각했다면, 놀랄 일도 나온다.
📑p. 293
결국 인간들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됐어. 과정이 달라지지 않으면 결과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말이야.
결말을 받아들이며, 바스테트의 염원인 고양이가 집필하는 고양이의 역사도 응원해 본다. 글의 재미와 이야기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애정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행성>, 기대 한 만큼 재미있고 신나게 읽고 마무리 할 수 있었던 책♡
꼭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해서 지원 받았으며 진심을 담아 정성껏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더 좋은 서평을 쓸 수 있도록 열독하겠습니다. 서평이 힐링♡
결국 인간들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됐어. 과정이 달라지지 않으면 결과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말이야. - P293
내가 해결책을 찾아내지 않으면 우리 고양이들과 인간들이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지구상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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