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철학 - 실체 없는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사는 법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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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풍가는 날 아침마다 불안했다. 다른 날과 다르게 김밥 도시락을 가지고 낯선 곳으로 가는 것에 대한 불안이었다. 나중엔 김밥만 봐도 불안했다. 소풍이 아닌 날 김밥을 먹어도 체했다. 그런 나를 위해 엄마는 더 이상 소풍날 김밥을 싸주지 않으셨지만, 어쨌든 김밥은 소풍날의 불안감을 상기시켰고, 불행히도 소풍은 김밥 없이도 불안했다. 바보같은 놀이였다. 다행히 김밥에 대한 미움은 점차 사라져서, 김밥을 좋아하게 된 지는 꽤 되었다.


내가 아직도 김밥을 꺼려했다면, 기시미 이치로의 <불안의 철학>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을 것이다. 어린 날 소풍의 설렘을 불안으로 명명하며 엄한 김밥을 미워하는 식의 왜곡은 생활 전반에서 부지 불식간에 나타날 수 있었다. 어리광과 취향, 예민함과 신중함과 같은 탈을 쓰고 더 나은, 더 자유로운 선택을 쉬임없이 방해하고 있었다.




'트라우마'를 부정하는 기시미 이치로는 언뜻 공감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김밥을 잘 못먹어. 어렸을 때 부터 그랬어.

그래서 우리 엄마는 소풍날 김밥 대신 다른 걸 싸주셨어"

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김밥에 대한 불안감의 원인인 소풍에 대한 불안에 깊이 공감하며, 소풍 같은 비 일상적인 상황에 대해 두려움이 있다고 알려주는 식의 소소함은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공감은 소풍과 같은 상황을 나열하여 어쨌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비일상에 대한 두려움 극복을 위한 연습을 해 보고, 김밥도 먹어보는 식의 접근을 할 뿐이다.


반면, 기시미 이치로는 "김밥은 맛있습니다. 소풍은 신나게 갈 수 있습니다."라고 산뜻하게 말해주는 편이다. 이러한 접근은 언제든 간단하게, 단숨에 맛있는 김밥을 먹으며 행복해 해도, 우연한 기회에 문득 소풍을 즐겨도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처방이다.


참 쉽죠? 같은 당황스러운 터치가 아니다. 알프레드 아들러 또한 제1자 세계대전 이후 신경증을 앓는 군인들을 치료하면서 <'트라우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전쟁 후 트라우마를 굳이 겪어내지 않을 수 있는 것 처럼, 일상의 불안을 불식시키고 완벽하게 해소하는 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기시미 이치로는 <불안의 철학>에서 누구보다도 깊은 공감능력을 가지고 불안만을 직접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기시미 이치로의 책은 늘 그렇듯, 사실 무척이나 다정하다.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수 많은 작은 사다리를 놓아주는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이다. 결코, '그런건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하고 돌아서는 사람이 아니다. 기시미 이치로 스스로도 죽음에 대한 불안을 깊이 느끼는 사람인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서문에서 자신이 느끼는 만큼의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데 놀랐다는 말은, 그런 그에게 불안을 극복할 용기를 배우고 싶게 한다.


다시금 김밥을 내 선호 음식 리스트에 당당히 넣고, 소풍 같은 나들이는 언제든 환영하는 활기를 누리며, 일상의 불안들도 산뜻한 마음으로 풀어낼 수 있게 하는 책 <불안의 철학>. 코로나 이후 일상으로의 복귀와 또 다른 변화들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꼭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해서 지원 받았으며 진심을 담아 정성껏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더 좋은 서평을 쓸 수 있도록 열독하겠습니다. 서평이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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