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 살인자의 성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5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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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인 근교에 사바네타라고 불리던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어."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점잖은 문법학자의 서술로 꽉 차 있다. 은밀한 뒷골목에서부터 도시의 번화가, 알려진 곳과 숨겨진 곳을 방문하며 그들의 은어와 조직, 사회, 경제, 종교 문제, 정치적 문제를 불쑥불쑥 이야기한다. 수다스러운 콜롬비아 아저씨는 180여 페이지의 분량 내내 장도 절도 없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청부 살인자인 어린 소년을 애인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가 소설 전반을 흐르는 사건이나, 콜롬비아의 모든 것을 폭로하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인 듯하다.



콜롬비아는 지역마다 성당이 있고, 청부 살인자들은 성모의 스카폴라를 옷 안에 걸친다. 하지만 카롤릭은 전혀 도움되는 방식으로 기능하지 않으며, 무의미하다. 그는 자선 행위 또한 오히려 악행이라고 비난한다. 주인공은 TV와 라디오를 싫어하고 신문을 비웃으며 멀리하는데, 도로의 택시 운전사가 라디오를 피하지 못해 여러 번 화를 낸다. (그리고 택시기사들은 보통 죽임을 당한다.) 그는 길거리에서 사람이 죽어도 놀라지 않고, 시체를 인형이라 부른다. 하지만 하늘의 별을 보며 사라진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고, 다친 개를 죽여야 할 때 심하게 동요한다.

그의 비난은 섬세한 은유 대신 자조 섞인 신랄한 풍자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종횡무진하기에, 심각한 상황이 가볍고 통쾌하기까지 하다. 고차원적인 비난이라기 보다는 유머에 가깝게 느껴진다. 모든 것을 속 시원히 알려주는 덕분에, 그들의 법칙이 잔인할 지라도, 단순하고 명쾌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법칙을 이렇게나 잘 알게 되다니, '어쩌면 나도 콜롬비아에서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싶은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책장을 덮으면 상상만으로도 버거운 나라다.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인권 유린에도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태연한 척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책을 신나게 읽을 때와 한 발 떨어져 생각할 때의 괴리감은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준다.

내가 믿는 현대 사회는 전 세계적으로 인권 및 사회 경제적 지표들이 과거에 비해 개선되고, 어느 나라에 가든 중산층 이상의 삶은 거의 유사할 정도로 획일화되고 있다. 유사한 직장, 주거, 복지, 의료 및 높은 수준으로 통용되는 가치는 낙관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부 살인자의 성모>는 너무나 선명하기에, 안전해 보이는 세계를 유리장에 전시된 가짜 세계로 느껴지게 만든다. 대중이 낙관하는 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각 나라는 저마다의 폐단을 끌어안고 있으며, 일부는 더욱 동떨어진 작동원리가 유지되고 있다.

콜롬비아 메데인의 거리 한 가운데로 안내하며 모든 것을 솔직하고 완벽하게 폭로하는 소설 <청부 살인자의 성모>는 사실을 드러내는 정직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중간에 읽다가 덮어두거나 던져버릴 수도 있고, 소리 내어 읽다가 불현듯 웃음이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어쨌든 뇌리에 강력히 남을 책인데, 어쩌면 그 안에서 계속 길을 헤메거나 푹 빠져들 지도 모른다. 마치 제대로 된 여행 같다. 매료될 수밖에 없는 저자의 사실을 전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감탄했던 책, 그리고, 콜롬비아처럼 더운 날, 서늘하게 읽기 제격인 책이다.


#책잘알 #지인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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