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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는 죄가 없다 - 우리가 오해한 신화 속 여성들을 다시 만나는 순간
나탈리 헤인즈 지음, 이현숙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6월
평점 :
이 책은 연필을 들고 읽기를 추천한다.
책 곳곳에 놀라움, 깨달음, 충격, 풍자, 유머, 통찰이 즐비하다.
여기저기 표시하다보면, 수확이 쏠쏠하다.
생각할 거리를 수 없이 던져준다.
들고다니면서 간간이 치열하게 읽다보니, 책이 너덜너덜해졌다.
내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렇게 좋아했던가 싶다.
열 가지 챕터 중, 중심이 되는 인물을 전혀 모르겠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이야기일 수록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각 챕터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에서 시작해서,
신화의 줄거리를 속속들이 소개할 분 아니라,
더욱 흥미로운 세계를 보여주며~
뒤집었다, 엎었다, 충격에 빠뜨렸다가, 건져주고-
생각할 거리를 마구 던져주며,
더 깊이, 더 많이 생각하게 해준다.
6장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몰라도 좋다.
챕터를 다 읽고 나면 이미 그녀를 어느 이야기에서보다 잘 알게 될 것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고대 세계에서,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나쁜 아내이자 최악인 아내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부당한 취급을 받고, 침묵을 강요당하고, 하찮은 대접을 받은 딸들에게 그녀는 영웅과도 같은 존재다. 아이가 죽었을 때 침묵하기를 거부하고, 모든 울분을 속으로 삭이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을 여성이니까.
모든 챕터를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챕터를 시작하기 전, 심호흡 하고 치열하게 읽어야 하니 주.의.요.망.
이 책은 폭로로 시작해서 폭로로 끝나니, 속이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뒤섞인 인물과 시대, 원전과 변형자, 핵심에서 멀어진 이야기.
왜곡된 진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반복되고 유명해진 이유까지,
모두 버무려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리를 담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판도라는 죄가 없다>를 읽어본다면,
본성에 가 다은 이야기의 조작이 얼마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자행되었는지
가늠할수록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아주 커다란 케이크에 비유해 보고 싶다.
황홀하게 맛있는 겹겹의 페스트리 케이크다.
이 책은 커다란 케이크에서 떼어낸 조각 열 개와 같다.
조각 자체는 전체 케이크에 비해서 아주 작다. 열 명의 여인들.
하지만 페스트리의 단면을 보면, 겹겹이 쌓인 층이 황홀하다.
온갖 진귀한 재료가 시대별로 차곡차곡, 여러명의 작가들을 만나 시럽에 푹 절여져 있는 놀라운 조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는 누가 언제 각색한 케이크 윗 부분일까.
아마도, 위에 흩뿌려진 크럼블 정도가 아닐까?
위에서 보고선, 신화를 알았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스 로마신화는 탐구하고 또 탐구해도 끝이 없을 것 같다.
그 탐구가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은 실로 깊이 파헤쳐두었다.
방대한 사료의 양과 포화상태가 될 정도의 정보를 담고 있다.
정연하게 짜집기해서 틀속에 가두지 않고, 작가가 챕터별로 자유롭게 풀어냈다.
이만큼 드러내야 비로소 드러나는 진실이 있다.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다시 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원재료가 아닌가.
그동안 시대적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각색되어 온 맥락을 걷어내고,
새로이 발굴해 나가야 할 원재료이기도 하다.
파헤칠 만큼 파헤친 후에 다시 써나가야 할 부분이 너무도 많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고대 세계에서,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나쁜 아내이자 최악인 아내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부당한 취급을 받고, 침묵을 강요당하고, 하찮은 대접을 받은 딸들에게 그녀는 영웅과도 같은 존재다. 아이가 죽었을 때 침묵하기를 거부하고, 모든 울분을 속으로 삭이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을 여성이니까.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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