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열린책들 세계문학 243
앙드레 지드 지음, 김화영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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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것으로 책을 한 권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들려주는 내용은, 내가 있는 힘을 다하여 그것을 살아 내다 보니 그만 정신적으로 진이 다 빠져 버린 그런 이야기다.

11p | 좁은 문 : 열린책들 세계문학 243 | 앙드레 지드 | 김화영 역 | 열린책들

진이 다 빠질 각오하고 읽어야 한다 (의뢰로 재밌다)

12살의 주인공 제롬과,

2살 연상의 사촌누이 알리사

이들은 아직 시험 당하지 않고,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고,

부도덕한 상처를 받지 않고

의도적으로 실수하지 않을 수 있는

충분히 어린 나이였다.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며 말씀을 묵상하고

시를 사랑하는 이들은

완벽하게 순수하고, 그래서 용감하다.

이들과 같은 고민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 나는 이 책이 어려웠었다.

막연히 동경하기도 했다.

이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보이고 동경의 대상이 될 정도로 나는 무지했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이번에는 이들과 같은 고민을 지나쳐, 고민 자체를 잊은 때

이 책을 다시 읽으니 .....

초반과 중반에는 사실 너무 유치하고 답답하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읽기에 재미 있기는 했다.)

지지부진한 엇갈림에 답답해 하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하여튼 답답하고, 머리가 저절로 도리질을 쳤다.

하지만 후반부까지 내달아 읽고서는 그들의 고민의 진정성이 와닿았고,

고뇌에 몰입하게 되었다.

(고구마를 요령껏 배 터지게 먹은 후였다)

아마도, 지나쳐 잊었던 고민들이 그제야 생각났던 것 같다.



하나님께 종교인으로서 매달려 본 사람을 알 것이다.

신을 향한 절박한 마음과 절실한 기도제목으로 간구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자 하는 갈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그리고 신의 응답이 얼마나 놀랍도록 선명한지,

하지만 의심하는 순간, 그 선명했던 응답은 순식간에 불확실해지고,

결국은 믿음의 부족에 스스로를 자책하며 절망하게 된다.

나를 속이지 않으면서, 선명한 응답속에서 확신을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의 지난 상황들과 억지로 끼워맞춰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의 심정과 이들의 순수한 사랑의 고통은 결국 같은 것이라는데 와닿고 보니,

소설은 훨씬 깊이있게 다가왔다.

저자 앙드레 지드 역시 그러한 강렬한 고뇌로 인해 정신적으로 진이 빠져버렸고-

어떤 시대에는 종교적 확신과 합리주의 간의 갈등이 모든 문제의 기저에 있었다.

좁은 문에 주인공 제롬과 알리사가 종교적 열광의 주체라면,

제롬의 친구 아벨과, 알리사이 동생 쥘리에트는 결을 달리하는 인물들이다.

나는 특히 쥘리에트를 새롭게 발견했다.

쥘리에트는 제롬과 알리사의 마음을 확인하고, 이해했다.

자신에 대해 스스로 결단력을 발휘한 쥘리에트.

쥘리에트는 혼절할 정도로 거부감을 갖다가도

결국은 원만하게 모든 사건에 순응한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냈고

취향마저도 상황에 맞춰 나갔다.

쥘리에트는 사랑의 실패자도 아니고

비겁한 도망자도 아니다.

그녀의 선택은 주도적이고 가치가 있는 선택이었다.

시대적 한계 속에서 그녀 스스로 쟁취한 삶을 살았다.



고전은 역시, 그냥 고전이 아닌걸 깨닫는다.

읽으면 읽을 수록 다방면의 주제를 입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혼의 사랑, 신에 대한 갈망, 영적 결합, 희생정신을 주요 골자로 하여,

주변의 인물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으면서 무심히 보여주는 <좁은 문>

앙드레 지드가 보여주고자 했던 진정함, 명철함, 자유로움의 사상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더 좋은 서평을 쓸 수 있도록 열독하겠습니다. 서평이 힐링♡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것으로 책을 한 권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들려주는 내용은, 내가 있는 힘을 다하여 그것을 살아 내다 보니 그만 정신적으로 진이 다 빠져 버린 그런 이야기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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