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을유세계문학전집 123
막심 고리키 지음, 정보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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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산업화의 폐단과 그 속에서 의식화되는 노동자의 삶을 어머니라는 한 인물을 통해 그려내고있다.

🔹️그렇다면 왜 어머니인가?

자본주의와 산업화로 인해 주요 노동자들인 남성들의 지친 몸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재충전시켜 다시 사이렌이 울리는 일터로 이 일하는 기계들을 무사히 다시 내보내는 일. 그 일을 위해서 폭력도 무시도 참을 수 밖에 없었던, 자본주의의 피해자에 의해 다시 한 번 피해자가 되는 가장 약자인 어린이와 여성. 그 중에서도 배우지 못했고, 그렇기에 어린이들과는 달리 성장할 가능성으로부터 배제되고, 삶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없던 인물인 가장 낮은 곳에 있던 것이 바로 여성이다. 사람은 보고 느끼고 생각한대로 말하고 판단한다 그러나 경험이 적어 비교대상이 없고, 폭력에 익숙해져 무기력해진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판단하는 것의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들에 의해 사회의 역할을 맡게 됨으로 인해 인식이 깨어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작가는 더욱 극적인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찌보면 가정이라는 것은 사회의 소우주이자 그것의 메타포이니, 가정 내의 약자가 각성하고 의식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사회의 약자가 성장하는 과정의 상징일 수도 있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내의 위치와 사회에서의 성장을 모두 이루어 낸 극적인 성공의 예라고 볼 수도 있겠다.
소설의 1부에서 어머니는 사실상 주체만 바뀌었을 뿐 그녀가 맡은 역할에는 변함이 없었다. 가정의 독재자인 남편을 떠받드는 것 대신 아들을 떠받드는 것으로 대체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점차 아들과 안드레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고 자신의 삶으로 대변되는 수많은 민중의 삶을 깨닫고 그녀는 주체적으로 ’활동‘을, 자신의 신념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제는 종교적 신념이 아닌 정치적 신념을 말이다.

정치적 노선을 떠나서 오늘날 이 소설이 허구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현재에도 진실인, 진실의 은폐와 권력의 남용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곳에서 진실을 알려고 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탄압당하고 재판을 받는다. 이들이 말하는 '진실'과 권력이 보여주는 '진실'의 차이에 가장 무지했던 인물이자 ‘진실’ 에서 가장 멀리 있는 것 같은 인물인 어머니. 외부 이념과 내적 삶의 간극이 가장 큰 인물이 바로 어머니이다. 이 간극은 사람들의 대화로 묘사되는 외부 이념과 어머니의 심리묘사를 통해 점차 좁혀져간다. 외부의 이념과 매일의 삶의 아이러니를 몸소 체험하며 혁명가들의 숙명과 같은 삶의 모순과 갈등을 이해하고 화해해 나가는 내적 성장도 목격할 수 있다. 순수하게 아들을 지키겠다는 내적동기만을 가진 인물이 외부의 상황을 만나 어떻게 성장하는지, 그 과정을 흥미롭게 따라가보면 좋을 것 같다.

더불어 19세기 남성작가가 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삶에 대한 세심한 관심이 돋보였다. 앞서 말했던 것 처럼, 자본주의의 폐단이 노동자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 뿐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여성의 삶에까지 뻗어나갔는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도 함께 느껴보면 좋겠다.

🔹️자본주의의 허상과 억압
소설의 도입부에서는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가져다준 사회의 병폐를 길게 묘사한다. 어떻게 돈의 노예가 되고, 삶을 잃고, 행복을 잃고, 미래를 잃어가는지를 묘사하여 혁명의 필연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성의 삶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피폐했는지 함께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그리고자 했던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고리키가 꿈꿨던 사회주의 유토피아
막심 고리키는 어머니와 같은 민중 한 명 한 명이 의식화되어 결국에는 스스로가 모두를 위한 새로운 신으로 탄생하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결과적으로 그 역시 종래에는 권력자로 변질되었지만 이 시기에 그가 열망했던 세계는 이성에 의한 진실이 통하는 세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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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질문들 - 마거릿 애트우드 선집 2004~202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재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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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질문들>>
마거릿 애트우드 / 위즈덤하우스





📖 이것들은 지난 20년 동안 내가 남들에게 받았던, 그리고 스스로 던졌던 타오르는 질문들 중 일부다. 이 책에 내 답변들이 있다. 아니, 답변의 시도들이라고 해야 할까? 에세이란 결국 그런 거니까. 시도, 노력. (p.17)

📖 소설은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답을 제공하는 것은 지침서들의 몫이다. 대신 소설은 질문을 던진다. (p.560)

이는 마거릿 애트우드가 2004부터 2021년까지 했던 강연들과 에세이 등을 모아 펴낸 산문집 <<타오르는 질문들>>의 문장들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책에 자신의 작품들, SF문학, 페미니즘, 정치, 기후위기, 사회 등의 다양한 현상에 대해 썼다. 그 이유는 ‘우리의 개인사는 바깥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상호작용 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이 모든 것들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쓰기의 힘은 바로 이런 끊임없는 질문이 아닐까?

많은 질문들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타올랐던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SF / 디스토피아
애트우드 소설의 장르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애트우드의 말에 따르면 ‘장르소설’은 “매일의 수레바퀴가 일으키는 일상의 모래먼지에 우리의 코를 쑤셔 박는 대신 우리에게 유희를, 불온한 도피주의를 제공한다.”(p.29)고 한다. 경기가 호황일 때 사람들은 유토피아 소설을, 불황일 때는 디스토피아 소설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애트우드는 “일어날 가능성이 다분한 불쾌한 미래에 대한 책들을” 쓴다. “우리가 그런 미래를 현실에 허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p.645)

그녀가 늑대인간, 뱀파이어, 좀비의 계보를 바라보는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좀비는 기억과 예지가 없기에 암울한 과거와 혼란스러운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 대신 ‘걱정, 의심, 불안 등의 정신적 고통 없이 영원히 현재에 머무’를 수 있는 ‘기묘하게 축복받은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기후위기
이 문제에 대하여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며 공적 노력과 정치적 의지의 촉구이다. 그리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잊은채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이원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말한다. 그리고 다른 재앙들과 달리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있지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번역
<번역의 땅> 2014
📖 어느 작가의 작품을 다른 언어권의 독자가 조금이라도 파악할 기회는 오로지 번역가에게 달려 있습니다. 번역가의 임무는 정확한, 또는 충분히 정확한 텍스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나아가 흥미진진하고, 웃기고, 가슴 아픈 곳들을 똑같이 흥미진진하고, 웃기고, 가슴 아프게 옮기는 것입니다. (p.341)

★실존주의
시몬 드 보부아르에 대한 이야기도 새로웠다. 양대 세계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은 프랑스의 실존주의자들을 바라보는 캐나다인의 모습과 그 반대의 입장에 대해 모두 공감이 가게 묘사되어 좋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철학은 뜬구름잡는 소리’라는 편견은 실존주의자 철학을 만나면서 산산조각 났었는데, 그 이유도 애트우드가 너무나 잘 설명해주고 있어 그녀의 말을 빌려 옮겨본다.

📖 오만한 무시! 세련된 경멸! 프랑스 스노비즘만한 스노비즘도 없다. 특히 좌파의 스노비즘. (...) 거기서 마침내 <제2의 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 이 시점에서 내 두려움의 일부는 연민으로 대체됐다. (p.617)

📖 우리가 보부아르에게서 발견하는 준엄함, 냉혹함, 실존의 추한 면에 대한 서슴없는 시선을 프랑스가 겪은 시련과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양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그에 따른 궁핍, 위험, 불안, 정치적 내분, 배신을 겪는 것은 지옥을 통과하는 것과 같았고 당연히 개인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따라서 우리 어머니에게는 냉철한 시선이 결여돼 있었다. 대신 어머니는 소매를 걷어붙인 쾌활함, 징징대지 않는 현실성을 체화했다. 이런 면모가 20세기 중반의 파리지앵들에게는 무례하리만큼 순진해 보였을 것이다. 존재의 가혹함에 압도당한 적이 있는가? 끝없이 산 위로 밀어 올리지만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시시포스의 바위에 직면한 적은? 정의와 자유 사이에서 실존적 갈등에 허덕여보았는가? (p.619)

★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치우치지 않은 저자의 균형잡힌 시선이 좋았던 부분이다. 그리고 아무런 해설도 남겨놓지 않은 셰익스피어와 달리, 작가에게 직접 듣는 <시녀 이야기>의 설명도 매우 좋았다.

내가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한다. 고발자들의 눈에 착한 페미니스트란 어떤 페미니스트일까? (p.513)

여성의 시민권과 인권이 존재하려면 우선 시민권과 인권부터 있어야 한다. 여성의 투표권이 있으려면 우선 투표권이 있어야 하듯이 말이다. 오직 여성만 그런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어야 착한 페미니스트일까? 당연히 아니다. 그것은 남성만 그런 권리를 가졌단 과거 상황의 동전 뒤집기에 불과하다. (p.514)

우리 대부분은 이중으로 부자유하다. 우리의 ‘할 자유’는 승인과 감독을 받아야 하는 것들에 한정돼 있고, 우리의 ‘하지 않을 자유’는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 많은 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다.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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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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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해서 기다리고 받은 책. 벽돌책이지만 내용이 흥미롭고, 내가 좋아하는 여성작가들의 계보를 한 권에서 여러 시각으로 비교해보며 만나볼 수 있게되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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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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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해서 기다리고 받은 책. 벽돌책이지만 내용이 흥미롭고, 내가 좋아하는 여성작가들의 계보를 한 권에서 여러 시각으로 비교해보며 만나볼 수 있게되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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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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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 1984books

“내 첫사랑은 누런 이빨을 가지고 있다.”
책은 이렇게 강렬하게 시작한다.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그녀의 첫사랑. 늑대.

서커스단 틈에서 나고 자란 소녀는 늑대를 애인으로 친구로 여기며 늑대의 영혼을 닮는다. 늑대가 죽자 개양귀비꽃이 핀 황무지에 묻었지만, 서커스는 황무지에 머물 수 없다. 그러므로 늑대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황무지를 떠나 가출한 소녀가 헤매다가 우연히 만난 아주머니는 오늘은 ‘프륀 아망동’인 소녀를 집에서 쉬게 해준다. 그 집은 슈베르트의 노래소리가 새처럼 파닥파닥 날아다닌다.

거실에서 바그너를 틀면 <라인의 황금>이 여기저기 설치한 스피커를 통해 방들과 서재와 거실을 가득 채운다. 그녀가 말한다. 이렇게 난 음악 속에서 걷고, 먹고, 자고, 움직여. 다른 사람들은 집에 고양이나 남편이 있지만 내겐 바그너, 라벨, 슈베르트가 있어. 고양이처럼 어디에나 가볍게 존재하는 거지.

이때부터였을까, 소녀는 가출하고, 세상 속에서 그리고 사람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그녀에게 재앙은 비, 학교, 사랑. 그것들은 그녀가 갖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소녀는 더욱 가벼워질 수 있었고 더 가벼워지기를 바랐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자유이며 성장이다.

종달새는 깃털과 노래의 떨림 속에서 온전한 자신이 될 권리를 누리며 땅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철창 뒤에서 졸고 있던 늑대는 나였다. 창공에서 작고 조용한 환희로 몸을 떠는 종달새는 바로 나다.

어제는 철창, 오늘은 하늘. 나는 발전하고 있다.

소녀가 다른 사람들이 품은 사랑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그녀는 사라진다. 사라지기 위해 글을 쓴다. 잉크가 아닌 가벼움으로. 그리고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수호천사>>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그녀의 직감은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다.

소녀는 사랑으로부터 배우지만 사랑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 분명한 무언가를 향해 갈 수 있도록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그로써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관계로 나아가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러나 슬프지 않다. 나는 괴물에게서 나중에 더 완벽히 연주하기 위해 연주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더 이상 사랑받지 않아도 되도록, 그리고 종국에는 감정을 넘어선 그 너머 다른 곳, 감정과는 다른, 필시 사랑이 분명한 무언가를 향해 갈 수 있도록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그녀가 내 오른쪽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다. 아름다움이 내 오른쪽 어깨에 기대고 있다. 쭈글쭈글한 얼굴 위로 떠오른 미소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

책을 덮은 후의 나는 안다. 늑대가 그녀의 눈동자를 지나 어린 소녀의 마음속에 슬그머니 스며들어 구멍을 파고, 소굴을 짓고, 은신처로 삼아 가르쳐 준 것은 자유와 가벼운 마음이라는 것을. 그것이 그녀의 삶 자체라는 것을. 뤼시의 수호천사는 그녀 앞에 열린 작은 ‘틈새’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고 자유를 향해간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짜 단어를 찾을 수 있을까? 자신들의 인생에서 갖지 못했기에 단어 목록에 없는 유일한 언어. 자유라는 단어를.

가끔은 일단 저질러야 한다. 이해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 일을 왜 했는지 깨닫게 된다.

나는 가벼움이 프랑스, 파리에만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부러웠다. 하지만 뤼시의 말처럼 가벼움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한 게 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그걸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나에게 부족했던 것이지.

고양이처럼 어디에나 가볍게 존재하기 위해 나는, 왜 나의 마음이 무거운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지, 어떻게 가벼워지고 싶은지 자문해본다.

나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직 완전히 그렇지는 않지만 그 마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내 마음은 티타티티타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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