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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 1984books
“내 첫사랑은 누런 이빨을 가지고 있다.”
책은 이렇게 강렬하게 시작한다.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그녀의 첫사랑. 늑대.
서커스단 틈에서 나고 자란 소녀는 늑대를 애인으로 친구로 여기며 늑대의 영혼을 닮는다. 늑대가 죽자 개양귀비꽃이 핀 황무지에 묻었지만, 서커스는 황무지에 머물 수 없다. 그러므로 늑대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황무지를 떠나 가출한 소녀가 헤매다가 우연히 만난 아주머니는 오늘은 ‘프륀 아망동’인 소녀를 집에서 쉬게 해준다. 그 집은 슈베르트의 노래소리가 새처럼 파닥파닥 날아다닌다.
거실에서 바그너를 틀면 <라인의 황금>이 여기저기 설치한 스피커를 통해 방들과 서재와 거실을 가득 채운다. 그녀가 말한다. 이렇게 난 음악 속에서 걷고, 먹고, 자고, 움직여. 다른 사람들은 집에 고양이나 남편이 있지만 내겐 바그너, 라벨, 슈베르트가 있어. 고양이처럼 어디에나 가볍게 존재하는 거지.
이때부터였을까, 소녀는 가출하고, 세상 속에서 그리고 사람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그녀에게 재앙은 비, 학교, 사랑. 그것들은 그녀가 갖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소녀는 더욱 가벼워질 수 있었고 더 가벼워지기를 바랐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자유이며 성장이다.
종달새는 깃털과 노래의 떨림 속에서 온전한 자신이 될 권리를 누리며 땅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철창 뒤에서 졸고 있던 늑대는 나였다. 창공에서 작고 조용한 환희로 몸을 떠는 종달새는 바로 나다.
어제는 철창, 오늘은 하늘. 나는 발전하고 있다.
소녀가 다른 사람들이 품은 사랑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그녀는 사라진다. 사라지기 위해 글을 쓴다. 잉크가 아닌 가벼움으로. 그리고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수호천사>>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그녀의 직감은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다.
소녀는 사랑으로부터 배우지만 사랑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 분명한 무언가를 향해 갈 수 있도록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그로써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관계로 나아가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러나 슬프지 않다. 나는 괴물에게서 나중에 더 완벽히 연주하기 위해 연주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더 이상 사랑받지 않아도 되도록, 그리고 종국에는 감정을 넘어선 그 너머 다른 곳, 감정과는 다른, 필시 사랑이 분명한 무언가를 향해 갈 수 있도록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그녀가 내 오른쪽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다. 아름다움이 내 오른쪽 어깨에 기대고 있다. 쭈글쭈글한 얼굴 위로 떠오른 미소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
책을 덮은 후의 나는 안다. 늑대가 그녀의 눈동자를 지나 어린 소녀의 마음속에 슬그머니 스며들어 구멍을 파고, 소굴을 짓고, 은신처로 삼아 가르쳐 준 것은 자유와 가벼운 마음이라는 것을. 그것이 그녀의 삶 자체라는 것을. 뤼시의 수호천사는 그녀 앞에 열린 작은 ‘틈새’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고 자유를 향해간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짜 단어를 찾을 수 있을까? 자신들의 인생에서 갖지 못했기에 단어 목록에 없는 유일한 언어. 자유라는 단어를.
가끔은 일단 저질러야 한다. 이해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 일을 왜 했는지 깨닫게 된다.
나는 가벼움이 프랑스, 파리에만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부러웠다. 하지만 뤼시의 말처럼 가벼움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한 게 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그걸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나에게 부족했던 것이지.
고양이처럼 어디에나 가볍게 존재하기 위해 나는, 왜 나의 마음이 무거운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지, 어떻게 가벼워지고 싶은지 자문해본다.
나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직 완전히 그렇지는 않지만 그 마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내 마음은 티타티티타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