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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상과 서양철학 ㅣ 깨달음총서 31
에드워드 콘즈 외 / 민족사 / 1990년 2월
평점 :
절판
불교사상에도 서양철학과 비교할 만한 사유들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다만, 불교가 인간 구원을 위한 종교성이 있기에, 객관적인 사유를 추구하는 '이론으로서의 철학'만을 분리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즉 불교에는 서양철학과 같은 (불교)철학과 종교로서 구원의 문제, 그리고 믿음, 초월적인 것들이 총체적으로 공존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서양학자들에 의해 불교가 연구되면서, 불교에서 서양 철학과 유사한 흐름들이 있음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것이 다만 원시적 형태가 아니라 고도화된 사유체계임이 드러나자, 그것을 서양철학과 비교하고픈 유혹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비록 겉이 비슷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이 진정 같은 것을 지향하는 사상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책, <불교사상과 서양철학>의 편역자(김종욱)도 그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즉 이 책은 서양사상과 불교를 비교하면서, 어느 쪽의 우월함을 밝혀서 자만을 갖기 위한 것도 아니고, 또한 단순히 서로 비슷한 것들을 나열하면서 지루한 겉무늬만 구경하는 것으로 끝내서도 안될 일이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과거와 현재에 동양과 서양이 이루어 낸 사유들을 진지하게 비교해서, 미래에 더 긍정적인 인간을 위한 사유를 이끄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교작업에서 어떤 시행착오를 감수하더라도 그러한 작업은 필요한 일이다.
불교학의 거장 에드워드 콘즈가 '불교철학과 유럽철학의 유사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시작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이어서 앞서 우리가 유희했던 부분을 다루는 '불교철학에 대한 사이비 유사성들'이 역시 콘즈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다루어진다. 그리고 서양철학과 빈번히 비교되는 있는 중관과 유식이 이어진다. '초기 희랍철학과 중관학과', '중관학파와 서양 근대철학', '윌리암 제임스와 유가행철학' 그리고 '유가행불교와 훗설에 있어서 일자와 다자의 문제'라는 글이다. 중관학은 논리와 실재와 관련해서 자주 서양철학과 비교되고 있으며, 유식은 이 책에서 보이듯, (현상) 경험과 자아 문제, 특히 훗설의 현상학과의 관련성이 연구되는 실정이다.
보통 비트겐슈타인도 중관학과 연구되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는 특별하게도 '선'하고 관련된 '비트겐슈타인과 선'이란 글이 보인다. 부록으로는 이 책의 편역자의 '용수와 칸트에 있어서 자유의 문제'가 실렸다. 여태 서양학자들의 글이었다면, 국내학자의 시각은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역시 국내불교학 연구의 수준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책 말미에는 '불교와 서양철학의 비교연구 문헌목록'을 첨부해서 좀 더 심화된 학습을 위한 참고자료를 제공한다.
불교와 서양철학을 비교하는 책들은 더러 있지만, 전문성을 지닌 학자들의 글을 모았다는 점과, 단순한 비교에 머물지 않고 진지한 비판의식도 아울러 갖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을 유달리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