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행과 심리치료
김말환 지음 / 민족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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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수행하고 심리치료는 언뜻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선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데,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한테 과연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 '선수행과 심리치료'를 보면서, 물론 선의 방법이 특정한 정신적인 질환에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더라도 어떤 가능성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으로 보인다. 육군 군종법사라는 경력이 말해주듯 많은 사람들(군인들이 많음)과의 상담내용들도 들어 있어서, 이것이 단지 이론으로만 그치지 않고 임상에 의한 경험을 가지고 실례를 들기도  한다. 특히 '안반수의'에 의한 호흡을 직접 사람들이 시행케 하여, 어떤 효과와 결과가 있는 지 데이터를 활용하는 학구적인 면모도 볼 수 있다. 

책의 구성은 크게, 기본적인 선수행과 심리상담과의 관계를 짚어보고 나서, 좀 더 구체적으로 금강경이나 능가경 같은 경전 그리고 안반수의, 달마의 이입사행론, 조사선 그리고 화두라고도 말해지는 선문답과 심리상담의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책 뒤로 가면 십우도 수행 부분이 비중있게 다루어 지고, 마지막으로 최근 선수행과 심리상담의 연구 경향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내용들이 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특정 심리적인 문제에 대해 서구 정신의학이 접근하는 것과 같은 체계적인 면모는 없지만, 분명히 어떤 효과와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분야가 아직 연구 단계임을 감안한다면, 좀 더 전문적이고 깊은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낯설고 드문 성격의 책이지만, 어렵지 않게 서술되어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불교 선에도 우리가 미처 몰랐던 다양한 것들이 있음도 더불어 알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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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지혜로운 삶을 위한 올바른 신행생활 50
남전 지음 / 민족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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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남전 스님이 신문사에 2006년 동안 신행에 대한 질문과 답을 연재한 글들을 정리해서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여러 가지 내용들이 있었겠지만, 불교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중심으로 50가지로 추려냈다. 

남전 스님은 불교에서는 신앙이란 말보다 신행(信行)이 더 어울린다고 한다. 신앙이 맹목적인 느낌이 난다면, 신행은 왠지 스스로를 돌보며 차분한 믿음으로 묵묵히 행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불교에서 신행은 지혜와 공덕을 쌓게 하고 남들한테도 좋은 본보기가 되어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전하는 작은 실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신행은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올바른 신행을 할 수 있는 지침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질문들 중에는 "아 하!"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법한 것들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불교인으로서 직접적으로 와 닿는 문제인 '불자가 되기 위한 조건', '수계법회와 법명을 받아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 '독경의 올바른 방법', '체계적인 경전공부 방법' 등에 대한 물음이 있다. 또한 불교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정말 궁금해 할 문제들로 '가족 간의 종교 갈등', '마음을 비우라는 말과 원력을 세우라는 것이 모순이 아닌가 하는 의문', '불교와 부적, 무속 신앙, 사주와 운세와의 문제', '성형수술' 등이 있다. 그렇다면 남전 스님의 이러한 질문에 어떤 대답을 내놓으실까?

가령, 아이들을 위한 '입시기도'를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입시기도'라는 기복의 기도가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처음에는 자신의 가족을 위하는 기복적인 의미로 시작한 기도가 나중에는 바른 방향으로 이웃과 국가 등으로 나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도재에 대한 것에서도 영가 천도가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아니지만, 공덕과 지혜가 모자라는 불자들에게 있어 좋은 방편임을 말한다(p.116). 이렇게 어떤 문제에 대해 교과서적인 대답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유연하고 긍정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대기설법이 아닐까?

 
그러나 남전 스님이 이 책 곳곳에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요즘 세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것보다 세속적인 복이나 이득을 얻으려는 데 더 관심이 쏠린다는 것이다. 즉 깨달음의 '참맛' 보다 복을 얻는 '단맛'에 몰두(p.30)해 있다는 것이다. 아직 당장은 바른 지혜가 열리지 않아, 불교의 근본과 다소 맞지 않는 것들도 유연하게 용인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그것이 나중에는 벗어 던져야 할 것임을 알고 꾸준하게 정진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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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저미지 않는 그리움은 없다
지원 지음 / 동숭동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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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회색빛 겉(장)이 야무지게 단단하면서 아담한 느낌이 났다.

지원 스님의 소박하고 고요한 느낌의 시 모음인데, 그 안에는 구도의 열정과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엿보인다. 세속을 떠나 수행을 하는 스님이지만, 너무도 인간적인 감정들이 마치 어두운 방에 켜진 희미한 촛불에 모이듯이 조심스럽게 피어오른다. 아마 이런 여리고 섬세한 감정이 있기에 그것들이 적당히 익어 시가 되어 나오지 않았을까. 특히 산사(山寺)의 사계절 풍경이 시에 잘 묻어있어 깨끗한 바람과 공기, 주변 분위기가 눈에 어른거리기도 한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구를 몇 개 적어본다.

범종각
추녀 밑에 걸린 눈썹달
겨울바람에 떨고 있다.
(시 참회 중 p.30)


눈 오는 밤
멍든 가슴을 채운다.
잃어버린 체온을 찾아
어두운 밤에 눈을 감는다

접어 두었던
목쉰 노랫가락,
나의 시여 눈물이여.
(시 유산 중 p.63)

'유산'은 지원 스님의 시인으로서의 내밀한 모습이 슬프고 고독한 빛깔로 참참히 가라앉아 있다. 이 작은 책자에 실린 시들에는 또한 시인의 짧은 소감이 있어 다시 한번 시를 음미할 수 있는 여운을 준다. 그리고 책표지도 그렇지만, 책 안에도 통칙 스님의 이쁜 판화그림들이 있어 눈까지 청명하게 해준다.  

여름에 멀리 여행을 갈적에 가지고 다니면서 급하게 목적지에 닿기를 기다리기보다 판화와 어우러진 시를 감상하면서 눈과 마음을 식히기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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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1
원오극근 지음, 석지현 옮김 / 민족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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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이란 책 이름은 심심찮게 들어왔다. 그리고 여태 그냥 선(禪)에 대한 책이겠거니 하고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어중간한 생각들은 확연하게 사라졌다. 

일단 <벽암록>의 '벽암(碧巖)'이란 말이 어찌 생겨났는지가 궁금하다. 책의 해설(벽암록 1권)을 참조해 본다면, 당나라 시대 (지금은 노천온천으로 유명한) 영천원의 선사 협산선회(峽山善會)에게서 나온 말이라 한다. 어떤 승이 협산선회에게 "어떤 것이 협산의 경지(峽山境)입니까?라고 묻자, 협산선회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잔나비가 새끼를 안고 푸른 봉우리 뒤로 돌아간 다음 / 새는 꽃을 물고 날아와 푸른 바위(碧巖) 앞에 떨어뜨리네."

정말 어떤 경지가 느껴지는 선문답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보이듯 선의 언어는 글자 그대로 해석되어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즉 깨달은 사람들의 말(선문답)에는 문자해석이 불가능한 활구(活句)가 있는데, 해석이 가능한 말과 이중적으로 섞여 있어 초심자가 섣불리 접근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하 흔히 선(禪佛敎)이 문자를 부정한다고만 알고 있다(불립문자). 그러나 불립문자의 선이 아닌 '문자선(文字禪)'도 있다고 한다. 벽암록이 바로 이 언어, 문자를 끝까지 밀고 올라 가 최후의 경계에서 그 아찔함을 경험케 하는 새로운 차원의 경지를 담은 강도 높은 문자선일지도 모른다. 즉 무조건 언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정면 돌파해서 그 최후에 일격을 가해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벽암록>이 제대로 완역되어 나온 것은 처음이라 한다. 장장 10년에 걸친 역자(석지현)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특히 책을 보면서 어려운 한자들을 우리말로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역자의 정성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한자가 어려운 사람은 (한자로 된) 원문을 일단 비켜가서, 우리말 번역과 해설만으로 어느 정도 음미할 수 있으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벽암록 1>은 총 100칙 중에서 1칙에서 20칙까지를 담고 있다. 이를 잠시 살펴보면,

1칙에서는 우리가 익히 들어 왔던, 달마대사와 양무제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는 '확연무성(廓然無聖)'이 활구가 아닐까. 11칙에서는 기상이 드높은 황벽선사의 선문답을, 12칙에서는 그 유명한 "마 삼 근(麻三斤)"이 나온다. "어떤 것이 부처냐"는 질문에 대한 동산의 대답인데, '마삼근', 이 말을 통해 부처를 드러냈다고 흔히 떠도는 소리는 옳은 해석이 아니란다. [평창번역]에 보면 "언어는 다만 도를 담는 그릇이거늘 옛사람(동산)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고 오로지 글자풀이만을 하고 있으니.."라며 따끔한 질책을 하고 있다.     

13칙 '파릉의 은완리성설'에서는 아주 멋진 구절이 나온다. 바로 '은완리성설(銀椀裏盛雪, 은그릇 속에 눈이 가득 담겼다)'라는 부분인데, [본칙과 착어해설]( p.348)에  보면, 이것을 '백마가 갈대꽃 속으로 들어가는군'으로 비유한다. 즉 백마도 흰색, 갈꽃도 흰색이므로 백마가 갈대꽃 속으로 들어가면 둘이 다 희어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백마는 어디까지나 백마고, 갈대꼿은 갈대꽃인 거다. 

17칙과 20칙은 역시 1칙과 비슷하게 달마대사와 관련된 공안이다. 17칙에서는 '조사서래(祖師西來, 달마가 서쪽(인도)에서 오다)를 묻고, 20칙에선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묻는다. 그러나 이것을 물은 용아는 스승 취미와 임제에게 얻어맞는다. 그러나 우리는 왜 임제가 후려갈겼는지 정확히 알 도리는 없다.

19칙의 제목은 '구지 화상의 한 손가락'이다. 구지 화상은 어떤 물음에도 다만 한 손가락만을 세웠다고 한다. 이를 구지 화상의 '구지 활구'라 한다는데, 뭔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렴픗이 우리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독특한 경지가 느껴진다.  

이렇게 벽암록의 전혀 새로운 언어들을 (아직은 겉읽기겠지만) 보면서, "이런 언어의 세계도 있구나!"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그냥 선승들의 선문답을 깨달음을 빙자한 언어유희로 치부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그 내막을 모르고 섣불리 판단해선 안되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벽암록에는 반어적인 표현도 풍부하게 나온다. 그래서 부정적인 표현이 정말 비난의 뜻을 품을 때가 있고, 대긍정을 반어적으로 드러내기도 하므로 언뜻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그래도 해설에서 잘 짚어주니까 그런대로 일단 따라갈 순 있었다. 

<벽암록>, 이 책은 한번 읽고서는 도저히 끝낼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가 가진 수준에 맞게 열리는 오묘함이 있는 듯 하다. 그러므로 오래도록 곁에 두고 되도록 자주 그 언어의 아찔함, 그 푸른 경계를 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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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사 108 장면
박금표 지음 / 민족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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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카레, 요가, 카스트제도, 힌두교 그리고 최근 IT분야에서의 두드러진 활동 등이 먼저 생각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빠질 수 없는 것은 영국 식민지 시기 간디와 같은 사상가의 비폭력 저항과 종교 분쟁에 따른 분리 독립이 있다. 나라가 워낙 크고(당연 인구수도 많다) 역사가 길다보니 문명국가로서의 황금빛 시기와 외세 침략과 그로 인한 민중들의 아픔 등 다양하고 거대한 흐름이 공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인도의 역사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보려고 마음을 먹어도, 괜히 인도라는 그 거대한 크기에 겁을 먹고 선뜻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얼마나 두껍고 또 얼마나 복잡한 내용들이 즐비할 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기 때문이다. 

<인도사 108 장면>, 이 책은 그러한 부담감을 덜고 좀 더 수월하게 인도 역사를 훑어 볼 수 있게 만든 책으로 보인다. 인도의 고대문명에서 현대까지 연대순으로 시간적 연속성을 갔지만, 또한 108개라는 주제들로 나뉘어져 있다(108개의 각 주제들은 독립적인 장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읽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앞에서부터 끝까지 봐도 될 거 같고, 또는 관심 있는 주제들을 짚으며 봐도 될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주제들은 인도사에서 꼭 알아야 할 역사적인 것은 물론, 우리의 호기심을 끌 만한 내용들도 담고 있어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 

이 책의 처음에는 인도는 물론 세계사에서 최초 문명에 속하는 '인더스 문명' 이야기가 나온다. 이 시기(기원전 3000년 전)에 이미 목욕탕과 하수도 그리고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놀랄만한 일이다. 저자는 유럽의 목욕탕이 생기게 된 원인이 위생과 깊은 관련이 있는 데 반하여, 인더스 문명 시기의 목욕탕은 종교, 의례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본다. 이렇게 이 책의 서술 방식은 '역사적 사실'의 객관적 전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주관적 해석'도 조심스레 넣어서 경직된 느낌을 덜어주고 있다. 아마 여기에 독자의 나름대로의 생각을 덧붙인다면 더 좋은 독서가 될 것이다.

인더스 문명에는 또 하나 진귀한 작은 유물이 있다. 바로 도장이다. '인더스 인장'이라고도 불리는데, 간단한 그림과 몇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문자가 아직도 해석이 안되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외 또 흥미로운 주제들을 살펴 보면, 유럽쪽에서 밀려오는 아리아인들과 토착민(드라비다인?)들과의 힘겨루기와 그 과정에서 생겨난 베다 경전이라던가 신분 계층 그리고 다른 나라나 지역과는 차별성을 갖는 인도의 창조 신화가 있다. 여기에는 절대신, 즉 창조주 개념이 없고, 무(無)나 알에서 만물이 생겨났다는 관념이 우세하다. 

[9] '카스트 제도의 원형 바르나'에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 '카스트 제도'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책에  따르면, 카스트(caste)라는 말은 포르투갈이 인도에 들어온 이후에 생겨난 근대 언어라고 한다. 인도어로는 바르나(varna)라 하며 브라만, 크샨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이렇게 4개의 계층과 그외 3000에서 4000개에 이르는 혈연 동족 집단인 자띠(jati)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14] '벌레도 죽이지 말자-자이나교'에서는 다른데서 볼 수 없었던 '자이나교 심볼'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심볼 모양이 사뭇 신기했다. 그리고 [25]에서는 그리스가 인도를 지배한 시기에 그리스 왕과 불교 수행자 나가세나와의 대화를 담은 책 <밀린다팡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고 보니 인도는 아리아인의 침입과 그리스, 이슬람,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등 정말 여기저기 외세의 침략이 끊이질 않았던 거 같다. '힌두교와 불교의 한판 승부'라는 제목을 가진 [33]에서는 아쇼카 왕 시기에 그렇게 번영했던 불교가  굽타 시대 이후에 쇠약해지고 힌두교가 다시 강성해진 이유를 나름대로 따져 보고 있다. 

[49]도 재미있는데, 인도에서는 같은 카스트기리만 식사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행 비행기 안에서 식사 메뉴는 단 두 가지인데, 채식주의자용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힌두교인으로서의 인도의 문화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53]은 '영어'와 관련된 내용이다. 인도의 공용어는 18개에 달한다고 한다. 각 언어들은 서로 통역이 없으면 소통이 불가능한데, 영국 식민지 시절에 영어가 보급되면서 인도인들에게도 하나의 '공통의 언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어를 가지고 인도인들은 독립운동의 공용어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의 '영어'의 묘한 운명이 아닐까? 

[70]과 [73]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간디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우리가 막연히 간디의 행동들에 대해 '평화'와 '비폭력'으로만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정치적인 복잡함이 얽혀 있었다. 간디의 소금 투쟁은 영국으로부터 인도 민중에게 소금을 돌려주는 상징적인 행위였지만, 그것이 무슬림 세력을 위축시켜 나중에 분리 독립의 빌미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간디의 단식은 결국 불가촉천민이 카스트 제도로부터 자유를 획득할 기회를 막은 원인이 되었고, 그래서 불가촉천민의 대표자 암베드카르는 이를 '야비한 단식'이라고 폄하했다고 한다. 좀 씁쓸한 대목이다. 그리고 [80]에서는 타고르와 그가 우리나라를 위해 쓴 시 '동방의 등불'의 탄생 일화가 실려 있다. 미처 몰랐던 이야기라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했다. [85]에서는 암베드카르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에서 실제적으로 불가촉천민이 제대로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자, 1956년 10월 14일 나그푸르에서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 60만 명과 함께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을 했다고 한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 안에 가려진 또 하나의 저항 운동인 불가촉천민의 힘겨운 모습이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점점 근대를 지나 현대로 넘어오기 시작한다.[97]에서는 전에 뉴스에서 자주 등장했던 카슈미르 분쟁에 대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지리한 힘겨루기가 나오고, [103]은 인도의 핵실험에 관한 이야기다. 1974년 5월 18일에 인도에서 핵실험을 감행했는데, '미소 띤 붓다(Buddha is Smiling)'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마침 이 날이 인도의 석가 탄신일이었던 것이다. 핵실험과 붓다라니... 참 희한한 만남이고,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104]와 [106]은 현대 인도인들의 능력과 그것을 가능케 한 교육열에 대한 것들을 담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의 인도인들의 성공은 뛰어난 기술력과 언어의 문제, 즉 능통한 영어구사에도 있다고 저자는 보는 거 같다. 마지막 [108]은 '한국과 인도'라는 제목을 가졌다. 당연히 우리와 인도를 함께 짚어보는 내용도 필요했을 것이다. 정확하게 역사적 사질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이미 고대에 김수로왕과 허왕후에서부터 우리나라와 인도의 인연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작의 애틋함과 긴 시간에 비해 그 이후로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지는 못하다. 그래도 최근에 경제를 중심으로 인도와 협력과 교류가 이루어진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인도사 108 장면>를 훑어 보았는데, 다시 한번 인도라는 나라가 갖는 다양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잠재된 힘들을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파노라마를 108 번의 눈 깜빡임을 통해 바라 본 거 같기도 하다. 더운 여름, 열기의 나라 인도를 이렇게 감상하는 것도 '이열치열' 여름나기 독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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