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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사 108 장면
박금표 지음 / 민족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인도'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카레, 요가, 카스트제도, 힌두교 그리고 최근 IT분야에서의 두드러진 활동 등이 먼저 생각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빠질 수 없는 것은 영국 식민지 시기 간디와 같은 사상가의 비폭력 저항과 종교 분쟁에 따른 분리 독립이 있다. 나라가 워낙 크고(당연 인구수도 많다) 역사가 길다보니 문명국가로서의 황금빛 시기와 외세 침략과 그로 인한 민중들의 아픔 등 다양하고 거대한 흐름이 공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인도의 역사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보려고 마음을 먹어도, 괜히 인도라는 그 거대한 크기에 겁을 먹고 선뜻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얼마나 두껍고 또 얼마나 복잡한 내용들이 즐비할 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기 때문이다.
<인도사 108 장면>, 이 책은 그러한 부담감을 덜고 좀 더 수월하게 인도 역사를 훑어 볼 수 있게 만든 책으로 보인다. 인도의 고대문명에서 현대까지 연대순으로 시간적 연속성을 갔지만, 또한 108개라는 주제들로 나뉘어져 있다(108개의 각 주제들은 독립적인 장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읽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앞에서부터 끝까지 봐도 될 거 같고, 또는 관심 있는 주제들을 짚으며 봐도 될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주제들은 인도사에서 꼭 알아야 할 역사적인 것은 물론, 우리의 호기심을 끌 만한 내용들도 담고 있어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
이 책의 처음에는 인도는 물론 세계사에서 최초 문명에 속하는 '인더스 문명' 이야기가 나온다. 이 시기(기원전 3000년 전)에 이미 목욕탕과 하수도 그리고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놀랄만한 일이다. 저자는 유럽의 목욕탕이 생기게 된 원인이 위생과 깊은 관련이 있는 데 반하여, 인더스 문명 시기의 목욕탕은 종교, 의례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본다. 이렇게 이 책의 서술 방식은 '역사적 사실'의 객관적 전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주관적 해석'도 조심스레 넣어서 경직된 느낌을 덜어주고 있다. 아마 여기에 독자의 나름대로의 생각을 덧붙인다면 더 좋은 독서가 될 것이다.
인더스 문명에는 또 하나 진귀한 작은 유물이 있다. 바로 도장이다. '인더스 인장'이라고도 불리는데, 간단한 그림과 몇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문자가 아직도 해석이 안되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외 또 흥미로운 주제들을 살펴 보면, 유럽쪽에서 밀려오는 아리아인들과 토착민(드라비다인?)들과의 힘겨루기와 그 과정에서 생겨난 베다 경전이라던가 신분 계층 그리고 다른 나라나 지역과는 차별성을 갖는 인도의 창조 신화가 있다. 여기에는 절대신, 즉 창조주 개념이 없고, 무(無)나 알에서 만물이 생겨났다는 관념이 우세하다.
[9] '카스트 제도의 원형 바르나'에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 '카스트 제도'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책에 따르면, 카스트(caste)라는 말은 포르투갈이 인도에 들어온 이후에 생겨난 근대 언어라고 한다. 인도어로는 바르나(varna)라 하며 브라만, 크샨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이렇게 4개의 계층과 그외 3000에서 4000개에 이르는 혈연 동족 집단인 자띠(jati)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14] '벌레도 죽이지 말자-자이나교'에서는 다른데서 볼 수 없었던 '자이나교 심볼'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심볼 모양이 사뭇 신기했다. 그리고 [25]에서는 그리스가 인도를 지배한 시기에 그리스 왕과 불교 수행자 나가세나와의 대화를 담은 책 <밀린다팡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고 보니 인도는 아리아인의 침입과 그리스, 이슬람,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등 정말 여기저기 외세의 침략이 끊이질 않았던 거 같다. '힌두교와 불교의 한판 승부'라는 제목을 가진 [33]에서는 아쇼카 왕 시기에 그렇게 번영했던 불교가 굽타 시대 이후에 쇠약해지고 힌두교가 다시 강성해진 이유를 나름대로 따져 보고 있다.
[49]도 재미있는데, 인도에서는 같은 카스트기리만 식사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행 비행기 안에서 식사 메뉴는 단 두 가지인데, 채식주의자용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힌두교인으로서의 인도의 문화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53]은 '영어'와 관련된 내용이다. 인도의 공용어는 18개에 달한다고 한다. 각 언어들은 서로 통역이 없으면 소통이 불가능한데, 영국 식민지 시절에 영어가 보급되면서 인도인들에게도 하나의 '공통의 언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어를 가지고 인도인들은 독립운동의 공용어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의 '영어'의 묘한 운명이 아닐까?
[70]과 [73]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간디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우리가 막연히 간디의 행동들에 대해 '평화'와 '비폭력'으로만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정치적인 복잡함이 얽혀 있었다. 간디의 소금 투쟁은 영국으로부터 인도 민중에게 소금을 돌려주는 상징적인 행위였지만, 그것이 무슬림 세력을 위축시켜 나중에 분리 독립의 빌미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간디의 단식은 결국 불가촉천민이 카스트 제도로부터 자유를 획득할 기회를 막은 원인이 되었고, 그래서 불가촉천민의 대표자 암베드카르는 이를 '야비한 단식'이라고 폄하했다고 한다. 좀 씁쓸한 대목이다. 그리고 [80]에서는 타고르와 그가 우리나라를 위해 쓴 시 '동방의 등불'의 탄생 일화가 실려 있다. 미처 몰랐던 이야기라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했다. [85]에서는 암베드카르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에서 실제적으로 불가촉천민이 제대로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자, 1956년 10월 14일 나그푸르에서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 60만 명과 함께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을 했다고 한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 안에 가려진 또 하나의 저항 운동인 불가촉천민의 힘겨운 모습이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점점 근대를 지나 현대로 넘어오기 시작한다.[97]에서는 전에 뉴스에서 자주 등장했던 카슈미르 분쟁에 대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지리한 힘겨루기가 나오고, [103]은 인도의 핵실험에 관한 이야기다. 1974년 5월 18일에 인도에서 핵실험을 감행했는데, '미소 띤 붓다(Buddha is Smiling)'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마침 이 날이 인도의 석가 탄신일이었던 것이다. 핵실험과 붓다라니... 참 희한한 만남이고,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104]와 [106]은 현대 인도인들의 능력과 그것을 가능케 한 교육열에 대한 것들을 담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의 인도인들의 성공은 뛰어난 기술력과 언어의 문제, 즉 능통한 영어구사에도 있다고 저자는 보는 거 같다. 마지막 [108]은 '한국과 인도'라는 제목을 가졌다. 당연히 우리와 인도를 함께 짚어보는 내용도 필요했을 것이다. 정확하게 역사적 사질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이미 고대에 김수로왕과 허왕후에서부터 우리나라와 인도의 인연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작의 애틋함과 긴 시간에 비해 그 이후로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지는 못하다. 그래도 최근에 경제를 중심으로 인도와 협력과 교류가 이루어진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인도사 108 장면>를 훑어 보았는데, 다시 한번 인도라는 나라가 갖는 다양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잠재된 힘들을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파노라마를 108 번의 눈 깜빡임을 통해 바라 본 거 같기도 하다. 더운 여름, 열기의 나라 인도를 이렇게 감상하는 것도 '이열치열' 여름나기 독서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