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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다시 뛰자! -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산다
강정훈 지음 / 두란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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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여름성경학교를 교회 내에서 진행해 보려고 여름성경학교 교사강습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생각에 미치지 못하는 참여자 수에 경악했다. 많은 교회가 주일학교를 없애고 아동부를 성인부와 통폐합한다는 소리를 말로만 들었지 실제 피부로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아동부였을 때와 내가 아동부를 이끌어야 할 때는 판이해졌다. 침체되고 정체된 느낌에 돌파구를 찾고자 했지만, 막연할 뿐 답이 없어 답답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최전방의 교사는 다시 뛰어야 한다. 근데 어디로, 어떻게 뛰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혹여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게 되었다.





* * *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위기에 빠진 주일학교의 원인과 현황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채롭고 구체적으로 잘 조명한 점에 있다. 작가가 <교사의 벗>이라는 월간지 발행인이라 그런지 몰라도, 근거 자료가 무척 많다. 약간 하나의 흐름으로 매끈하게 통일되지 못한 느낌도 있지만, 되도록 다각도에서 조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원인 중에서도 특히, '세속화'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왠지 투자 대비 결과가 좋지 못해 주일학교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교회, 입시를 신앙보다 우선시하는 학부모와 아이들, 온몸으로 주일학교에 헌신하기보다는 왠지 뒤로 빼기만 하는 교사(나). 남 탓만 하기에는 내가 감당했어야 할 몫이 분명히 보여 괴로웠다. 방법은 과연 없는가.



작가는 교회 밖으로 나간 어린이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교회 안의 어린이들부터 먼저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우선, 담임 목사부터 교육에 헌신해야 하며, 예배 지도자가 영성교육을 해야 하고, 교사가 성령충만하며, 전교인이 목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내 입장에서는 영성교육과 성령충만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에 따르면 영성교육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끄집어내어 사람을 만드는 것(p.96)이고, "예수님을 닮도록 하는 것(p.96)"이다. 남을 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보이신 여러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성교육은 성령충만할 때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 분명하게 알게 되고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설교를 할 때에도 무엇을 중심으로 해야 하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 시간 생생하게 역사하시는 삶의 체험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삶과 괴리된 곳에 존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성경의 인물에 빗댄 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공과공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의 하나님'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p.158)". 그러기 위해서 학생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의 학생에게 어떠한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나는 이 표현이 너무 맘에 들었는데, 인용해 보겠다. "모든 교사는 그때마다 공과 집필자가 되고 새로운 공과를 만드는 창작자, 성경 해설자가 되어야 한다(p.158)." 교사는 외운 것을 읊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새롭게 재창조까지 해야 하는 극한 사명이다! 그렇지만! 그래서! 성령님만을 의지하게 된다. 내 자아는 없어지고 내 입을 도구 삼아 온전히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랄 수밖에 없게 된다.

아이들의 삶에 하나님을 심어주려면, 아이들을 알아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알바 교사'였다. 아이들은 익명성을 요구하며 다가오지 않고, 거절의 제스처가 명확하다. '알바 교사'라면 같이 상관하지 않으려고 했겠지만, 진정한 교사는 성령충만함으로 그 견고한 진을 뚫고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헌신하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자세로는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내 등 뒤 너머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나 때문에 하나님을 못 만난다면 나는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 * *



영성교육과 성령충만과 관련하여 명쾌하게 정리된 부분이 있어 부분 인용해 본다.

"교회교육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중 성령 사역이다. 성부 하나님은 교육의 대상이다. 성자 하나님은 교육의 내용이다(p.237)."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을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 앞에 큰일을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을 누가 가능하게 할까? 바로 성령이다 … 성령의 역사와 도움 없이 교회교육은 불가능하다(p.238)."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의 갈망이 이 책을 완독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스스로 교사로서의 자질이 의심되고, 기술적으로 부족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을 따라와주지 않고, 오히려 노력하는 자신을 배척하여 상심하고 낙담한 교사가 있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를 이 책을 통해 배웠으면 좋겠다.

우리는 단순한 성경 스토리텔러가 아니고, 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오늘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슴에 불이 지펴져야 하고, 그 불을 아이들에게 옳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처음을 이 책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세 가지 원칙을 알아낸 것 같다.

하나, 우리는 늘 '영과 육'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있고, 예수님을 좇아 '영'의 선택을 하게 하는 교육을 하게 해야 한다는 것. 둘, 그러한 '영'의 예민함은 성령님과 동행할 때 가능하다는 것. 셋, 따라서 나의 삶 역시 그러해야 하며, 나를 좇아오는 아이들의 삶 역시 그러할 수 있도록 성령충만한지 늘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마지막으로 인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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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대화법 - 유쾌하게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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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말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본인은 상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생각보다 그 마음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기 마련인데, 이러한 오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대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화의 노력 자체가 상대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없다면 억하심정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듯싶은데, 그 방법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긍정의 대화법은 이런 의문에 대한 좋은 해답을 준 것 같다. 책표지에 써진 '매력경영 시대, 말솜씨는 권력이다!'라는 말처럼 통통 튀는 말솜씨로 유쾌, 뭉클, 상큼한 '자석형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긍정화법을 감정의 변화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시스템화하고, 화자와 청자의 스타일을 유연하게 파악하여 접근하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었다.

대개 화법책은 이것, 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읽다보면 진이 빠지고, 어디부터 실천해야 할지 모호할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은 일목요연하게 키워드 몇 개로 묶어놓아 제시했다는 점이 장점인 것 같다. 마음가짐(태도)과 지식에서부터 실제적인 연습, 실천에 이르기까지 긍정화법이 단순한 기술이나 기능이 아니라 전인적인 사고 패러다임의 전환임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또한 화법유형을 4가지로 분류하여 긍정화법의 스타일을 제시하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에니어그램의 몇 유형과 겹쳐보이기도 했다. 화법은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하는 소통인 만큼 성격심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는데, 이 부분을 잘 짚어놓은 듯싶었다. 더구나 화법 중에서도 웃음을 짓게 하는 유머는 혼자 하려고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리액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유형별로 제시했다는 점이 초보자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될 것 같다.

실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사례도 14개로 분류하여 제시하면서, 어떤 마인드로 어느 정도의 대화 정도면 good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 설명해 놓았다. 각 장의 처음에 나와 있는 사례에서 주인공이 한 말은 문제 형식으로 나와 있는데, 그 대답은 박장대소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유쾌ㆍ뭉클ㆍ상큼한 답안들이다. 품위 있고 향기 나는, 철학과 사색이 있는 유머의 모범 답안들이었다.

덧붙여 곳곳에 삽입된 유머 모음은 실실거리는 실소를 짓게 하기도 하고, 깔깔거리는 박장대소를 터뜨리게 하기도 했다. 말짱 꽝이 아닌 말짱이 되자는 식의 말장난 같은 맞춤형 키워드가 대구를 이루며 불쌍한 중생(?)의 실천을 독려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실전에 써먹고자 할 때 흔들리지 않는 이론들이 몇 가지 키워드로 응축되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두운, 각운을 잘 쓴 것 같다.

이 책을 읽다보면 긍정화법을 몸소 실천하는 듯한 작가의 말솜씨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고 만만하게 느껴졌다. 작가는 묻는다. 당신의 주전공이 무엇이냐고, 만담, 순간적인 위트, 유명인 성대모사, 익살스런 표정 중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어디냐고. 일단 거기서부터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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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혁명 - 시대를 앞서간 천재 허균의 조선개혁 프로젝트
정경옥 지음 / 여우볕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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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허균'의 일반적이지 않은 행보 때문이었다. 명문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서 정치적으로 탄탄대로의 길을 갈 수 있는 충분한 입지에 놓여있음에도, 정치적 약자인 서자의 편에 섰다는 점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뭔가 남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에서 독백조로 전해지는 허균의 생각과 느낌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서자 출신이라 정치적 불구로 판명된 사람이라도 명문의 실력자라면 스승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리고 스승의 의지가 있다하더라도 쉽지 않았을 여성의 교육 기회가 제공되었던 것, 이런 것들은 사실 허균 집안의 관대한 분위기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한 관대함과 포용성이 '본성'에 충실하고자 했던 허균의 존재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부모가 죽었는데도 기생을 끼고 놀았다는 허균에게 사람들은 천하의 불효자라고 책망했고 정치적 생명이 끝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죄'가 되었다. 유교의 사상이 '선'이 되는 세상에서 허균의 행적은 '죄'였다. 허균의 시선을 따라, 생각을 따라 나가는 독자들은 허균의 고독과 애잔함을 공감하기에 이러한 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판단하기 때문에 슬픈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부당하다고 하기에는 예외가 너무 많아질 것 같다. 실제로는 자유로운 영혼의 허균보다는 패륜아가 더 많을 테니 말이다.

  사람들은 그를 '다르다'고 말했다. 다르기에 '괴물'이라 말하고 경계했다. 그러한 그들에게 허균은 얼마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을까? 조선의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여자 빼고, 서자 빼고, 오직 몇몇의 집안에 의지해서 얼마나 인재를 얻을 수 있냐고, 백성의 편에서 일하려고 해도 처벌할 수 없는 관리의 입장을 도대체 누가 이해할 수 있냐고, 아무리 에둘러 말하려고 해도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얼마나 될까.

  오히려 시야가 좁았다면 그는 무난하게 벼슬을 하고 무난하게 인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서 중상모략을 하고 당하면서 인생의 끝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시야가 넓었기에 모략을 넘어선 혁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섣불리 나서지 말고 심신수양을 하라던 사명대사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허균은 '작은형'의 모습에서 그 인생의 말로를 예측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설령 세상이 변하지 않더라도 전진했을 것이다. 긴박하게 혁명의 물고를 트려고 하는 순간, 순간이 묘하게 '뜻하는 바가 무엇이든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괘와 맞물려갈 때도 그가 초조하게 전진할 수밖에 없던 그의 운명이 애석하고 안타깝다.

  그리 크지 않은 책을 훑어보면서 '슬픈 혁명'이라는, 직설적이고 감상적인 표현이 수묵화의 표지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본 목차에 울상이 되고 말았다. '작은형'과의 이별을 통한 그의 의지, 그러나 이를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는 세상, 칼을 뽑지만 한여름 밤의 꿈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혁명, 시대를 앞서간 그의 담담한 독백이 그의 잔인한 운명의 저주와 얽어져 눈물이 났다. 소통이 되지 않는 세상과의 단절, 그 속에서 고뇌하고 발버둥쳐야 했을 그가 너무 불쌍했다. 그리고 사실은 나도 불쌍한 것 아닌지 몰라 답답했다. 나는 순응해야 하는가, 혁명을 해야 하는가, 나는 소통에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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