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혁명 - 시대를 앞서간 천재 허균의 조선개혁 프로젝트
정경옥 지음 / 여우볕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허균'의 일반적이지 않은 행보 때문이었다. 명문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서 정치적으로 탄탄대로의 길을 갈 수 있는 충분한 입지에 놓여있음에도, 정치적 약자인 서자의 편에 섰다는 점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뭔가 남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에서 독백조로 전해지는 허균의 생각과 느낌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서자 출신이라 정치적 불구로 판명된 사람이라도 명문의 실력자라면 스승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리고 스승의 의지가 있다하더라도 쉽지 않았을 여성의 교육 기회가 제공되었던 것, 이런 것들은 사실 허균 집안의 관대한 분위기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한 관대함과 포용성이 '본성'에 충실하고자 했던 허균의 존재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부모가 죽었는데도 기생을 끼고 놀았다는 허균에게 사람들은 천하의 불효자라고 책망했고 정치적 생명이 끝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죄'가 되었다. 유교의 사상이 '선'이 되는 세상에서 허균의 행적은 '죄'였다. 허균의 시선을 따라, 생각을 따라 나가는 독자들은 허균의 고독과 애잔함을 공감하기에 이러한 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판단하기 때문에 슬픈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부당하다고 하기에는 예외가 너무 많아질 것 같다. 실제로는 자유로운 영혼의 허균보다는 패륜아가 더 많을 테니 말이다.

  사람들은 그를 '다르다'고 말했다. 다르기에 '괴물'이라 말하고 경계했다. 그러한 그들에게 허균은 얼마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을까? 조선의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여자 빼고, 서자 빼고, 오직 몇몇의 집안에 의지해서 얼마나 인재를 얻을 수 있냐고, 백성의 편에서 일하려고 해도 처벌할 수 없는 관리의 입장을 도대체 누가 이해할 수 있냐고, 아무리 에둘러 말하려고 해도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얼마나 될까.

  오히려 시야가 좁았다면 그는 무난하게 벼슬을 하고 무난하게 인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서 중상모략을 하고 당하면서 인생의 끝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시야가 넓었기에 모략을 넘어선 혁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섣불리 나서지 말고 심신수양을 하라던 사명대사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허균은 '작은형'의 모습에서 그 인생의 말로를 예측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설령 세상이 변하지 않더라도 전진했을 것이다. 긴박하게 혁명의 물고를 트려고 하는 순간, 순간이 묘하게 '뜻하는 바가 무엇이든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괘와 맞물려갈 때도 그가 초조하게 전진할 수밖에 없던 그의 운명이 애석하고 안타깝다.

  그리 크지 않은 책을 훑어보면서 '슬픈 혁명'이라는, 직설적이고 감상적인 표현이 수묵화의 표지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본 목차에 울상이 되고 말았다. '작은형'과의 이별을 통한 그의 의지, 그러나 이를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는 세상, 칼을 뽑지만 한여름 밤의 꿈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혁명, 시대를 앞서간 그의 담담한 독백이 그의 잔인한 운명의 저주와 얽어져 눈물이 났다. 소통이 되지 않는 세상과의 단절, 그 속에서 고뇌하고 발버둥쳐야 했을 그가 너무 불쌍했다. 그리고 사실은 나도 불쌍한 것 아닌지 몰라 답답했다. 나는 순응해야 하는가, 혁명을 해야 하는가, 나는 소통에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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